뺨풍선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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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날았을까 저 아래로 바다가 보였어. 뺨은 서서히 가라앉았고 나는 천천히 바닷가 모래 위로 내려왔어. 맑은 공기와 맨발에 닿는 모래가 시원했어. 이렇게 캄캄한데 마음이 편안하다니 꿈이라도 좋았어. 이대로 시간이 멈추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가득했어.
나는 모래사장에 앉아 파도치는 모습을 한참 바라보았어. 파도가 멀어졌다 다가오기를 반복했어. 나는 파도가 돌아올 때마다 반가운 마음이 들었어. 보드랍고 포근한 기운이 나를 감싸는 듯했거든. 나는 그대로 팔베개를 하고 누웠어. 하늘은 까맣고 깨끗했어. 눈을 감으면 이대로 기분 좋게 잠들 것 같았지.
그런데 저쪽 방파제에서 누군가 이리로 걸어오는 것이 보였어. 어두워서 흐릿하게 보였지만 키가 아주 컸어. 일어나 앉아 자세히 보니 모자를 쓴 웬 남자였어.
‘모자? 설마 아빠?’
갑자기 철썩철썩하는 파도 소리가 뺨을 치는 소리처럼 들렸어. 나는 일어나 무작정 뒤로 돌아 뛰기 시작했어. 무서웠어. 한참을 달리니 숨이 턱까지 찼어. 어디선가 나타난 눈동자가 내 뒤통수를 따라오는 것이 느껴졌어. 어디로 더 도망가야 할지 막막했어. 숨이 가빠 더 달릴 수도 없었어. 나는 자리에 털썩 앉아버렸어. 괴물의 눈동자가 나를 앞질렀다가 천천히 내 앞으로 다가와서는 헉헉대는 나를 비웃었어.
“저리 가! 가라고!”
손에 잡히는 돌멩이 하나를 들어 괴물의 눈을 향해 힘껏 던졌어. 하지만 보기 좋게 빗나갔어. 두 눈은 바로 내 코앞까지 다가왔어. 다시 뺨이 부풀기 시작했어. 나도 모르게 웃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웃을 수가 없었어. 아니 웃기 싫었어. 도저히 웃음이 나오지 않았거든. 나는 뺨을 손으로 움켜쥐며 화를 냈어.
“이 뺨이 또 왜 이래? 다 너 때문이야! 제멋대로 커지고 부풀고! 제발 그만 좀 해! 대체 왜 이렇게 나를 괴롭히는 거야? 여기까지 나를 데려온 건 너잖아! 그래놓고 여기에서 또 부풀면 나보고 뭘 어쩌라는 거야?”
어둠 속에서 무엇인가 반짝 빛났어. 다가가 보니 버려진 낚싯바늘이었어. 뺨을 터뜨리기에 아주 적당했어.
“너는 오늘로 끝이야. 네가 부풀 때마다 느껴지는 아픔도 이제 안녕이다!”
나는 망설임 없이 바늘 끝으로 뺨을 푹 찔렀어. 그러고는 옆으로 당겨 뜯어냈어. 빠르고 날카로운 고통이 뺨을 휘감았어. 손으로 얼른 뺨을 더듬어 보았어. 바람 빠진 쪼글쪼글한 뺨에서 피가 흘렀어.
‘끝난 건가?’
그러나 그것도 잠시, 화가 난 듯 뺨이 더 크게 부풀어 올랐어. 나는 쉴 새 없이 낚싯바늘로 뺨을 뜯어냈고, 이에 질세라 뺨은 쉬지 않고 커졌어. 터지고 부풀고, 터지고 부풀고, 터지고 부풀고. 뺨은 불타는 듯 아팠고 피로 범벅이 되었지만, 소용이 없었어. 나는 낚싯바늘을 힘껏 던져버렸어.
“아파! 아프다고! 진짜 지긋지긋해!”
괴물이 옆에서 나를 쏘아보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어. 나는 괴물에게 소리쳤어.
“왜? 내가 또 한심해 보여?”
모래를 집어서 괴물에게 뿌려대면서 발버둥을 쳤어.
“나 좀 노려보지 마! 이렇게 따라다니지 말라고!”
참을 수 없는 울음이 터져 나왔어. 조용한 바닷가에 퍼지는 내 울음소리가 낯설었어. 울고 있는 내 모습이 창피했지만, 이 울음을 참으면 뺨이 아니라 가슴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어. 나는 악을 쓰며 목이 쉴 때까지 실컷 울었어. 파도는 다가와 내 울음소리를 품었다가, 그대로 안고 가져가 주었어.
울음소리가 작아질 때 즈음 내가 흐느낄 때마다 뺨이 함께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어. 아버지가 화를 낼 때마다 흔들리던 그 모자처럼 말이야.
결국 또 커지고 있는 내 뺨.
나는 웃지 않았어. 부풀지 못 하도록 누르지도 않았어. 그저 뺨의 고통을 가만히 바라보았지. 그리고 그 뜨거움을 가슴으로 느끼고 싶었어. 눈을 감고 뺨을 쓰다듬어보았어. 쓰다듬는 손을 따라 그 부위가 따끔거렸어. 부풀던 뺨이 내 손길이 닿자 잠자코 있었어. 잠시 나를 기다려주는 듯했어. 나는 뺨의 이 풍선이 이제야 나의 일부로 느껴졌어.
“미안해. 너를 부끄러워하고 숨기려고만 했어. 네가 아파할 때마다 외면해서 정말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