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충전을 위한 쉼이 필요할 때
인생은 노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가슴 뛰게 노는 것이다.
이 세상은 내가 놀기 위해 만들어진 것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노는 사람 앞에서
이 세상이 내 앞에 펼쳐져 있는 것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열심히 놀라는 것
다른 의미가 아니다.
- 허허당 스님 / 그대 속 눈썹에 걸린 세상 -
삶은 늘 치열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나는 문득 TV에서 만난 88세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그는 개조한 봉고차를 타고 전국을 유유자적 누비며 18년간 자유로운 삶을 살아왔다. 차 안에는 잠자리뿐 아니라 냉장고, TV, 식수까지 완비되어, 그가 정차한 곳이 곧 집이 되고, 산은 배경이, 바다는 앞마당이 된다. '행복은 길 위에 있다'는 그의 말은 단순한 여행 이야기가 아니라, 삶을 즐기는 철학이었다. 60평생 공무원으로 성실히 일한 그는 퇴직 후 친구와 시작한 사업이 배신으로 좌절되자, 남은 인생을 ‘놀며’ 보내기로 결심했다. 그의 모습은 바쁜 일상에 지친 나에게 부러움과 동시에 깊은 질문을 던졌다. 나도 언젠가 저렇게 자유롭게 살 수 있을까?
그러나 사회는 쉬는 것을 쉽게 용납하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은퇴 후에도 무언가를 해야 한다'며 일의 가치를 강조한다. 나 역시 평생 일에 매달려온 사람으로서, 쉬는 자신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주변에서는 “당신처럼 부지런한 사람은 놀면 병난다”며 일을 계속하라고 부추긴다. 일을 멈추면 도태되고, 허무해질 것이라는 두려움이 나를 억지로라도 일터로 내몬다.
하지만 아내의 말은 달랐다. 그 단순한 말이 가슴에 와닿았다.
“평생을 일하며 살았는데, 뭘 또 일하려 해요. 그냥 편하게 쉬어요.”
그런데, 정작 ‘편히 쉰다’는 게 뭘까? 일만 해온 나는 쉬는 법을 잊어버린 듯했다.
그러던 중 몸에서 이상 신호가 왔다. 한쪽 머리는 지근거리며 아파왔고, 눈은 침침해져 뜨기 힘들 정도였으며, 잠을 자도 개운하지 않았다. 식사 시간에도 배고픔이나 먹고자 하는 의욕이 없었다. 기업을 경영하며 매출과 직원들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은 지난 몇 달, 나는 내 영혼까지 갈아 넣었다고 느꼈다. 그제야 비로소 깨달았다. 나에게는 쉼이, 그리고 ‘놀 시간’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이런 깨달음은 단순히 일을 멈추라는 신호가 아니었다. ‘논다’는 것은 게으름이 아니라, 삶을 재충전하고 새로운 관점을 찾는 과정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한 부부는 55세에 모든 재산을 정리하고 월 3,000달러 미만의 예산으로 세계를 여행하며 자유를 만끽했다. 그들은 소유를 포기한 대신 모험과 여유를 선택했고, 이는 단순한 휴가가 아니라 삶의 재정의였다. 이처럼 여행과 놀이는 스트레스를 줄이고 새로운 활력을 준다.
또 다른 사례는 퇴직 후 취미와 여가를 통해 균형을 찾은 이들이다. 연구에 따르면, 행복한 퇴직자들은 여행, 자원봉사, 가족과의 시간 등 최소 3~4개의 취미를 즐기며 정신적·신체적 건강을 유지한다. 한 퇴직자는 빠른 속도의 직장 생활을 벗어나 이웃과의 소통과 자원봉사를 통해 예상치 못한 기쁨을 발견했다. 그는 ‘느린 삶’이 가져다주는 연결감과 여유를 통해 더 풍요로운 인생을 경험했다. 과학적으로도 성인기의 놀이는 스트레스 해소, 정신 건강 향상, 심지어 신체적 웰빙을 촉진한다. 이는 일과 놀이가 반대가 아니라 상호보완적임을 보여준다.
이제 나는 그 88세 할아버지처럼, 또는 세계를 누비는 부부처럼, 억지로 일하지 않고 삶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자 한다. 몸의 신호를 무시하지 않고, 쉬는 법을 배우며, 놀이를 통해 잃어버린 에너지를 되찾을 것이다. 인생은 때로는 치열한 노력이 아니라, 자유롭게 노는 순간들로 채워질 때 비로소 빛난다. ‘놀음’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삶의 본질을 깨우는 열쇠다. 나는 이제 그 열쇠를 손에 쥐고,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려 한다.
그냥 논다는 것이 무기력하게 그냥 시간을 흘려 보낸다는 것이 아니다. 규칙적인 루틴이 필요하고, 그 루틴은 유익하고 행복한 것이어야 한다. 잠은 충분히 자고, 아침에 따뜻한 커피에 책을 읽고, 가까운 친구를 만나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하며, 동네 산책, 도서관에서 책 빌려보기, 무료 강습 참여, 그 중에 으뜸은 동네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보내는 독서삼매경 삶이다. 성과가 없어도, 누가 인정해 주지 않아도. 내 삶이 윤택해졌다. 또 다시 일에 쫓겨 삶이 무기력에 빠지기 전에 '놀며' 마음과 몸을 추스르는 쉼있는 생활의 중요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