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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이 Jun 16. 2024

고통을 다루는 방법

지난주에는 명상 집중수련 코스를 마쳤다. 5일간의 과정이었고 하루 12시간의 수련시간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동안 현대 명상에 기반한 수련을 해왔기 때문에 정통 명상을 접하는 것은 처음이었고 그렇게나 장시간 동안 명상을 하기 위해 앉아있어 본 것도 처음이었다. 기대하는 마음으로 신청한 과정이었지만 오랜 시간 앉아 익숙하지 않은 명상을 해나간다는 건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특히 첫날 배운 사마타명상은 기존의 몸의 감각에 주의를 기울였던 수행법과는 달리 다소 관념적인 개념에 집중해야 하는 것이라 더 손에 잡히지 않는 듯한 느낌이었다. 자세는 불편하고 다리는 아프고 마음은 답답하니 이내 명상이 고행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명상을 하다 보면 늘 고요하고 명료한 상태만 유지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통증이, 때로는 졸음이 몰려오고 또 어떤 때는 하기 싫은 마음이 올라온다. 집중수련 첫째 날, 너무 잘하고 싶었던 나는 호흡에 압도되고 골이 아파올 정도까지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원치 않는 경험을 하거나 고통을 마주할 때 많이 하는 반응 중에 하나다. 고통과 맞서 싸우고 저항하는 것. 그날의 수련을 마치고 선생님께서는 내 이야기를 듣고는 명상에서는 힘주어서 버티며 할 것이 없다고, 지나치게 애쓰며 하지 말라고, 어느 순간이든 자신을 잘 돌보면서 하는 것이 수련의 기본임을 꼭 기억하라고 말씀해 주셨다. 다 아는 얘기라고 생각했는데도 힘을 빼는 건 언제나 어렵다.


비단 명상뿐 아니라, 불쾌한 경험을 하거나 고통스러운 순간을 마주할 때의 태도는 어떠한가 생각해 본다. 내가 주로 하는 방식은 최대한 모른 척 회피해 보거나 고통과 눈에 불을 켜고 맞서 싸우는 방법이다. 하지만 정작 고통을 지나는 순간 그보다 더 먼저 해야 할 것은 '있는 그대로 수용하기'이다. 어떻게든 싸워 이겨야 되는 대상으로 여기거나 짐짓 모른 체하고 얼른 지나가 주기를 기다린다고 해서 결코 고통이 경감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증폭될 뿐이다. 긴장을 풀고 '아, 이것이 나의 고통이구나.' 하고 바라봐 주는 태도가 필요하다. 


사진: Unsplash의 Milan Popovic


작년에 마음 챙김 자기 연민(MSC) 프로그램을 이수하면서 배운 자기 연민 브레이크라는 명상법이 있다. 고통의 순간 짧게 할 수 있는 3단계의 명상법인데 여기에서도 가장 첫 번째 단계는 있는 그대로 고통을 허용하는 것이다. 고통을 수용하면서 "이것이 고통의 순간이다. 이것으로 인해 내가 힘들어하고 있구나. 이것이 나의 스트레스다"라고 소리 내어 말해보도록 한다. 고통의 순간 멈춰 서서 이것이 나의 고통이구나 인정하고 수용할 수 있는 틈을 갖는 것이다. 내가 경험하는 고통을 내가 제대로 알아봐 주는 것이 필요하다. 거기서부터 자기 돌봄을 시작할 수 있다. 


<마음에서 빠져나와 삶 속으로 들어가라>라는 수용전념치료 책에서는 기꺼이 수용하는 삶을 설명하며 엠마고모의 비유를 사용한다. 어느 날 당신은 당신의 집에서 파티를 열어 모든 친척을 당신의 집에 초대했다고 가정해 본다. 당신이 사랑하는 몇몇 사람을 비롯해 모든 친척이 다 오기로 했다. 그런데 그중에는 성격이 까다롭고 변덕스러운 고모, 엠마도 포함되어 있다. 누구에게도 친절하지 않고 고맙다는 말도 할 줄 모르는 고모이지만 당신은 누구든 환영한다며 이 파티에 모든 친척을 초대했다. 이때 당신은 엠마 고모가 오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녀가 당신의 집에 들어오도록 하고 안부를 묻고 그녀가 파티에 참석하는 것을 허용하는 수준의 환영은 할 수 있다. 이처럼 불쾌한 경험이나 고통이 찾아올 때 우리는 그것을 원하지 않았지만 그 존재를 인정하고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도록 허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엠마 고모를 맞이하는 것처럼.


만약 내가 원하지 않으므로 엠마 고모가 들어오지 못하게 끝까지 문을 걸어 잠그고 있으면 어떻게 될까? 파티에 초대된 다른 손님들은 물론이고 당신도 더 이상 파티를 즐길 수 없게 된다. 언제 엠마 고모가 문을 열고 들어올지 모르기에 불안하게 문 주변만 서성이고 있어야 한다. 엠마 고모 한 명을 제외시키기 위해 역설적으로 오로지 엠마 고모에게만 매달리고 있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때때로 마주하게 되는 좋지 않은 감정들, 원치 않는 경험들, 나아가 삶의 고통에 놓일 때 이 비유를 생각해 본다. 문을 걸어 잠그고 절대 내 집에는 들어오지 말라고 소리치고 불안해하며 문 주변만 맴도는 것보다 '아, 이것이 내가 경험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구나. 이 경험으로 나는 이렇게 영향을 받고 있구나. 이것이 나의 고통의 순간이구나' 알아차리고 문을 열어 기꺼이 수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  


"기쁨, 우울, 초라함, 어떤 순간적인 자각은 갑작스러운 방문객처럼 우리를 찾아온다.

이 모든 것들을 환대로 맞이하라." - 잘랄 앗 딘 알 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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