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은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누군가는 아이들을 고객이라 여기고, 사랑은 그저 ‘연기’일 뿐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마음으로 교단에 선다면 과연 아이들에게 진심이 전해질 수 있을까?
우리는 연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거짓된 사랑을 보여주자는 것도 아니다. 교사는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가정이 있는 교사라면 가장 먼저 사랑하는 존재는 자신의 자녀일 것이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바로 학급의 제자들이 가장 먼저 마음을 주어야 할 아이들이 된다.
아이들을 향한 사랑이 크면, 아이들은 반드시 그에 대한 보답을 준다. 물론 그것이 언제나 오래 지속되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 아이들과의 관계도 일반적인 인간관계처럼 시시각각 변하기 쉽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역동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지 한 해, 우리가 학급을 맡은 그 1년만이라도 아이들과 깊은 애정을 주고받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완벽한 관계가 아닐까? 물론 인간관계란 게 언제나 어렵고 불확실하니, 그렇게 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그동안 경상북도와 경기도를 오가며 여러 학교를 파견 다녔고, 지역과 학교를 자주 옮기다 보니 오래 관계를 이어가는 경우는 드물었다. 가끔은 편지가 오기도 하고, 문자를 통해 소식을 전해 오기도 했지만, 거리가 멀어지면 마음도 점점 멀어지기 마련이었다.
그래도 그 시간 속, 학급을 맡았던 해만큼은 늘 아이들에게 사랑을 많이 받았다.
경산에서 1학년을 맡았을 때, 2년 뒤 한 아이가 이런 편지를 보내왔다.
“선생님과 함께한 시간이 제일 즐거웠어요.”
학부모 민원으로 힘들었던 시기, 다른 학부모들의 응원이 큰 위로가 된 적도 있다.
학교를 옮기려 하자 “가지 말라”며 편지를 써준 아이,
방학 때 집이 감옥 같다며 “선생님 집에 살고 싶다”고 말한 아이,
명절마다 문자를 보내오는 아이,
그리고 내가 스물세 살, 기간제 교사 시절부터 지금까지 SNS를 통해 서로의 일상을 지켜보며 응원을 주고받는 아이까지—
나에게는 참 많은, 소중한 제자들이 있다.
만약 이 관계들이 허울뿐인 피상적인 관계였다면, 나 또한 그 아이들과 마주할 용기조차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때라도 진심을 다해 사랑했기에, 죄책감보다는 뿌듯함이 더 크게 남아 있다.
앞으로도 나는 더 많은 제자들을 진심으로 사랑할 것이다. 그래서 먼 훗날 제자들이 나를 기억할 때, 부끄럽지 않은 어른, 사랑을 많이 주었던 선생님으로 남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