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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비 Apr 18. 2021

이생망이라고 외치는 사람들을 위한 책 처방

마법 같은 힐링 도서, 소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어느 순간 멈춰서 되돌아봤을 때 내 삶은 망해버린 것 같다고 느낄 때가 있다. 변변찮은 직장도, 축적해놓은 재산도 없이 하다못해 인간관계마저 엉망인 초라한 내 모습. 머나먼 영국 여왕이 부러워지면서 노쇠한 부모님을 원망하고 떠나버린 첫사랑을 그리워하고 비참한 나를 저주하며 자기혐오에 빠진다. 그리고 여기 또 한 사람이 있다. 소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주인공 노라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서른다섯의 나이에 어머니는 편찮으시고 키우던 개가 교통사고로 죽고 직장에서 해고되는 불운을 연거푸 겪는. 그러다 자살시도를 하는 사람.      


정말로 과거로 돌아가면 행복할까?

 노라는 꿈이 많았다. 수영 선수. 뮤지션. 철학가. 배우자. 여행가. 빙하학자. 행복하고 사랑받는 사람. 그런데 어느 것 하나도 이루지 못했다. 게다가 고양이 주인 역할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정말 자신이 쓸모없고 무가치한 사람으로 느껴져 절망한다. 그리고 밤 11시 22분. 자살을 시도한다. 엥?!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밤 12시, 눈을 뜨니 자신은 도서관에 있었다. 이름하여 자정의 도서관. 삶과 죽음의 경계. 오래전 빙하학자의 꿈을 나눴던 도서관의 사서 엘름 부인이 그 자리에 함께. 엘름 부인은 도서관의 모든 책들은 노라의 인생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제안한다. 이루지 못한 과거로 돌아가 보겠냐고? Why not? 노라는 승낙한다. 과거로 돌아가 전혀 다른 선택을 하고 전혀 다른 삶을 살면 자신이 행복할 것만 같다. 내 인생은 잘못된 선택의 연속인 것만 같다. 되돌리고 싶다.     


첫사랑과 이루어지면 달라질까?

‘댄에게 매정하게 군 게 후회돼.’ ‘댄과 헤어진 게 후회돼.’ ‘시골에서 댄과 펍을 하면서 살지 않는 게 후회돼.’     

 노라는 제일 먼저 첫사랑 댄에게로 돌아간다. 그와 결혼하고 함께 작은 시골마을에서 펍을 운영하는 꿈을 실현시킨다. 현재가 지리멸렬하고 버거운 사람들이 꿈꾸는 과거, 첫사랑과의 행복한 삶일 것만 같은 과거로 돌아갔는데도 노라는 행복하지가 않다. 댄은 그가 기대하던 댄이 아니었다. 그가 머릿속으로 그리던 댄이 아니었다. 결국 그 과거에서 다시 빠져나온다.     


과거에 대한 기억이 정말 사실일까?

 노라는 다시 죽고 싶은 절망감에 빠진다. 엘름 부인은 또다시 제안한다. 또 다른 과거에 가보지 않겠냐고. 노라는 고양이가 살아있던 순간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그리고 자신의 방에서 재회한다. 그런데 이런?! 고양이는 죽어있다. 이게 뭐냐고 절규하는 노라에게 엘름 부인은 말한다. 고양이는 원래 죽을 운명이었다고. 교통사고로 죽은 것도 아니었고 그저 의사가 착각한 것이었다고. 노라와 함께여서 더 오래 행복하게 살았던 것이라고. 그제야 노라는 죄책감에서 벗어난다. 내가 고양이를 잘 돌보지 못해 고양이를 죽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고양이를 진심으로 떠나보낼 수 있게 된다.     


네 원래 삶에서 볼테르는 다른 어떤 생에서보다 오래 살았어. 방금 네가 다녀온 그 생만 제외하고. 거기서는 세 시간 전에 죽었지. 처음 몇 년간 볼테르가 고생하기는 했어도 넌 볼테르에게 최고의 삶을 선물해줬어. 볼테르에게는 그보다 훨씬 더 힘든 삶도 많이 있단다. 정말이야.”     


명예와 성공을 차지하면 인생이 충만할까?

 호주에서의 따분한 인생을 거쳐 노라는 성공한 수영 선수의 삶도 살아본다. 원래의 삶에서는 데면데면했던 아빠의 인정을 받고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수영선수로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삶. 한 회 강연비만 1만 5천 파운드를 버는 삶. 멀어졌던 오빠 조는 자신의 매니저를 하며 만족해하는 삶. 하지만 정작 노라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정신적인 고통으로 꾸준히 상담을 받고 있고 손목에는 자해한 흔적이 있었다. 결코 자신의 인생이 충만하다고,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결국 노라는 수영 선수로 성공한 삶에서도 되돌아 나온다.     


“그리고…… 사실은……그러니까……우리가 가장 큰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사실은 성공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종종 외부적으로 무언가 성취하는 걸 성공으로 보기 때문이죠. 올림픽 메달이나 이상적인 남편, 높은 연봉 같은 거요. 우리 모두에게는 도달하려고 하는 그런 지표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성공은 셀 수 있는 게 아니고, 인생은 이길 수 있는 시합이 아닙니다. 그건 모두……개소리예요, 사실…….”    

 

진짜 행복이란 무엇일까?

 노라는 그 외에도 여러 인생을 드나든다. 빙하학자, 슈퍼스타, 고양이의 죽음을 알린 의사 애쉬와 결혼하는 삶, 동물 보호소에서 일하는 삶, 포도밭을 운영하는 사장, 미혼모,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사진 편집자, 그밖에 셀 수 없이 많은 삶. 그중에서도 애쉬와 함께 결혼하여 딸 몰리를 낳는 삶을 가장 만족해한다. 하지만 그 삶 또한 진정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 삶은 자신의 피아노 제자인 리오를 전혀 만날 수 없는 삶, 그리하여 리오가 불량배가 되는 삶이었다는 사실이 괴로웠다.       


“삶에는 어떤 패턴이…… 리듬이 있어요. 한 삶에만 갇혀 있는 동안에는 슬픔이나 비극 혹은 실패나 두려움이 그 삶을 산 결과라고 생각하기 쉽죠. 그런 것들은 단순히 삶의 부산물일 뿐인데 우리는 그게 특정한 방식으로 살았기 때문에 생겨났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슬픔이 없는 삶은 없다는 걸 이해하면 사는 게 훨씬 쉬워질 거예요. 슬픔은 본질적으로 행복의 일부라는 사실도요. 슬픔 없이 행복을 얻을 수는 없어요. 물론 사람마다 그 정도와 양이 다르긴 하겠죠. 하지만 영원히 순수한 행복에만 머물 수 있는 삶은 없어요. 그런 삶이 있다고 생각하면, 현재의 삶이 더 불행하게 느껴질 뿐이죠.”     


지금-여기서 누리는 행복

 노라가 그 모든 삶에서 벗어나 진정 자신의 삶,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마음먹자 자정의 도서관은 무너져 내리고 엘름 부인도 사라진다. 그리고 노라에게 남은 백지로 이루어진 초록색 책 한 권. 그리고 오렌지색 만년필로 책에 다음과 같이 적는다.     



노라는 살기로 마음먹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노라는 다시 썼다.
노라는 살 준비가 되어 있었다.
여전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살’이라는 단어에 밑줄까지 그었는데도.
이제 사방이 부서지고 허물어졌다.
..중략..
그러니 뭐라고 쓸지 고민하는 건 그만두기로 했다. 대신 짜증이 치밀어서 그냥 제일 먼저 생각나는 문장, 이 요란한 붕괴를 압도할 수 있을 정도로 그녀 안에서 소리 없이 반항하듯 외쳐대는 함성을 적었다.
..중략..
그녀에게 가능한 모든 인생의 씨앗이자 시작인 진실. 예전에는 저주였으나 이제는 축복이 된 진실.
다중 우주의 잠재력과 힘을 간직한 간단한 문장이었다.     
나는 살아있다     


 그렇게 노라는 다시 살기로 마음먹었고 살게 되었다. ‘나는 살아있다.’ 이 마법 같은 문장을 이 글을 읽는 모든 독자 분들이 내 것으로 만들기를, 그렇게 삶의 축복을 누리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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