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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비 Sep 10. 2019

존재론적 외로움

사람은 원래 외롭다

황량한 길을 혼자 걸어간다면 어떤 기분일까?

                                        

수선화에게, 정호승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의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7박 9일간의 런던, 파리 여행을 마치고 도착한 스위스 인터라켄.


그 곳에서 난 갑자기 엄습한 외로움과 두려움에 어찌할 줄을 몰랐었다.


푸르른 들판과 드높은 산맥과 만년설들이 나를 반겨주고 있는데, 도무지 힘이 나지가 않았다. 거울 속 내 모습은 너무나도 외롭고 처량한, 이국에서 온 방랑자에 불과하였다. 그 모든 위대한 자연이 주는 경이로움, 새로움이 안겨주는 설렘은 외로움 앞에 산산조각 난 채 맥을 못 추었다.


누군가가 함께 하면 달랐겠지만, 정신없는 수다 속에 잊을 수 있었겠지만, 한번씩 그런 외로움과 마주할 필요도 있는 것 같다. 고독이 자라는 순간이 성숙의 시기라고 했던 릴케의 말마따나.


대학생 때, 피아노를 전공했던 나는 악기 연주를 언제나 오롯이 혼자서만 해야했다. 그 시간들이 즐거우면서도, 멜로디에 나를 맡긴다는 게 행복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혼자서라는 생각에 지독히 외롭기도 했었다. 차라리 밴드를 하거나 합창이나 교향악단을 하면 여럿이서 함께 할 수 있을텐데, 왜 외로운 악기라는 피아노를 택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그 때부터 나는 이미 사람은 원래 외로운 존재라는 걸 절감한 것 같다. 이십대 초반이라는 어린 나이에. 그런 외로운 감정을 이역만리 이국땅에서 다시 한 번 느끼게 된 것이다.


알프스 산의 위대함 앞에 마음이 겸허해진다


영국에는 외로움 담당 장관이 있다고 한다. 사회적 단절로 인한 정신적 고통이 매일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것만큼 건강에 해롭다는 연구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그만큼 국가적으로 외로움과 소외, 단절로 인한 사람들의 고통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마주친 외로움은 조금 다른 차원의 것이 아니었나 싶다. 이 글의 제목 그대로, 존재론적 외로움. 사람을 만나야만, 어울려야만 해소되는 그런 외로움이 아닌, 인간 고유한 존재로서 마주친 외로움. 나는 이것을 다시 외로움이 아닌 고독이라 명명하고 싶다.


중요한 건, 릴케의 말마따나 외로움이 아닌 고독과 마주하는 것 아닐까. 외로움을 두팔 벌려 마주할 때, 더이상 외로움은 외로움이 아닌, 홀로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고독으로 멋지게 승화하는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외로움을 당하는 게 아닌, 고독을 선택하는 자만의 여유..


신은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지만, 내가 맞닿을 수도 없지만, 정말 너무나 위대한 존재. 지상의 많은 것들을 누리게 해 주신 만큼 참 많은 형벌도 안겨주신. 하지만 그 형벌마저도 아름답게, 멋지게 승화시키길..


더욱더 겸허해질 필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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