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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비 Nov 26. 2022

보이지 않는 아이에서 보이는 아이로

토베 얀손의 <보이지 않는 아이>


"보이지도 않는데 그게 무슨 소용인지 잘 모르겠어요."


"다들 알겠지만 너무 자주 겁먹으면 잘 보이지 않게 되잖아요."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 아주머니가 잘못 돌봐주는 바람에 닌니가 겁먹었어요. 제가 그 아주머니를 만나봤는데 정말 끔찍하더라고요. 괄괄한 성격이라면 차라리 이해하겠지만, 왜 그런 거 있잖아요. 그 아주머니는 쌀쌀맞게 빈정거리더라고요."



 핀란드의 국민작가 토베 얀손의 1962년 발표 작품, 연작소설 <보이지 않는 아이> 속 표제작 <보이지 않는 아이>에서 무민 가족과 투티키가 나누는 대화이다. 이 단편소설을 읽고 있자니, 조금씩 다시 트라우마가 시작되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교통사고처럼 피할 수 없었던 운명, 열아홉 살 어린 나이에 먼 타지에서 대학생활을 시작한 나에게 다가온 여러 충격적인 경험들, 감당하기 힘들었던 그 모든 것들을 혼자서 버티고 버텼던 이십 대의 아픔들이 다시 생생하게 느껴졌다. 


 지금도 자주 듣는 말이지만, 그 당시에도 귀엽다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다. 그렇게 모두의 관심이 쏟아졌지만, 개중에는 질시하는 이, 신포도 이론처럼 깎아내리려는 이, 별의별 인간군상이 다 있었다. 그렇게 한꺼번에 나에게 육탄 폭격이 날아왔고, 나는 숨을 곳도 참지 못한 채 무차별적으로 화살을 받아내며 피를 흘리고 내동댕이쳐졌다. 나는 어떤 책에서 그것을 '인격살인'이라고 부른 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살아 숨 쉬지만, 내 영혼은 그렇게 차디차게 난도질을 당했다. 


 그럴 때 내게 힘이 되었던 건, 나처럼 죽을 만큼 힘들었던 시련을 겪고 극복해낸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고 박완서 작가, <유리알 유희>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헤르만 헤세, 소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의 주인공 카야의 이야기가 큰 힘이 되었다. 우리는 위대한 인물들이 내놓은 결과물만 보고 칭송하지만, 그들의 처절한 고통과 시련은 감춰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그들이 그런 존경받는 위치에 오르기까지 꽤 많은 인생 경험이 필요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생에는 행복과 불행의 총량 법칙이 정해져 있다고 한다. 내가 수많은 인생을 살아본 것도 아니고, 세상 모든 사람을 만나본 것은 아니어서 확신할 수 없지만, 책이나 영화와 같은 간접적인 체험으로 생각해봤을 때 어느 정도는 공감하는 말이다. 이와 비슷한 예로, 우리나라의 전래동화는 대부분 권선징악의 주제를 담고 있는데 이것 또한 인생의 진리 같다. 슈퍼히어로와 빌런의 대결도 같은 맥락이지 않을까.


 다시 토베 얀손의 <보이지 않는 아이>로 돌아오면, 주인공 닌니는 잘못된 돌봄과 상처로 자신의 모습을 잃어가서 무민 가족의 눈에 보이질 않는다. 그런 닌니를 미이는 계속 조롱하고 흉을 본다. 닌니는 그럴수록 더 상처 입고 자신을 드러내기를 꺼려한다. 무민 마마가 외할머니의 비망록에서 찾은 민간요법의 약을 처방하자 점차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지만 한계가 있었다. 그런 닌니가 투명인간에서 자신의 모습을 완전히 회복한 건, 용기를 내 화를 낼 때였다. 언제나 겁에 질려 두려움에 떨던 닌니가 무민 마마를 골려주려던 무민 파파의 꼬리를 깨물어버린 것이다. 통쾌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나도 언젠가부터 화를 내기보다 참는 순간이 많아지고 점차 나를 잃어간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닌니처럼 적당히 표현하는 힘을 길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자처럼 또는 투명인간처럼 보이지 않는 아이는 가슴을 아프게 하지만, 자신의 색깔을 맘껏 드러내는 아이는 세상을 기쁘게 한다. 억압과 통제와 세상의 모든 폭력으로부터 한 사람 한 사람의 고유한 빛깔을 지켜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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