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대접 : 요리하는 삶을 살고 싶어서요.
오늘이 기념비적인 날이 될 수 있을까? 한 달 전, 나의 첫 독립출판물 <퇴사 사유서>의 크라우드 펀딩을 마무리 짓고 한숨을 돌리던 때 찾아온 한 마음이 있었다. 엄마께 요리해 드리고 싶은 마음. 정확히는 엄마께 식사를 대접해 드리는 아들의 삶을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지난 한달동안 진지하게 고민했고, 그 끝에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남았다. 그 마음을 진심으로 받아들인 오늘부터 일기 같은 기록을 남겨본다.
<퇴사 사유서>와 단편으로 연재했던 <무에서 살고 있습니다>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나는 지난 3월, 자신만만하게 회사에서 퇴사했다. 그 후 해보고 싶었던 요리 영상을 만들었고 틱톡과 인스타그램에 올려 인기를 얻으면 새로운 삶의 길이 보일 줄 알았다. 퇴사 후 초반 두어 달 요리 콘텐츠를 이틀에 한 번 만들어 올렸지만, 팔로워는 350명이 채 안 되었고 좋아요도 게시물당 100개를 채우지 못했다. 크리에이터로서의 성공은 짧은 기간 바짝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니었으나, 두어 달 크리에이터로 살아보니 그새 흥미가 떨어져 내 길이 아님을 느꼈다. 그러다 <퇴사 사유서> 펀딩과 출간에 집중하면서 결국 요리 콘텐츠는 흐지부지 중단되었다.
그래도 틱톡, 인스타그램에 콘텐츠를 올리던 요리 크리에이터의 삶은 좋은 경험이었다. 물론 요리 크리에이터라고 하기엔 요리 학원 근처는커녕 쿠킹 클래스도 제대로 들어본 게 없지만 말이다. 애초에 남들보다 요리를 잘해서 요리 영상을 찍은 게 아니라 요리를 좋아해서 시작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나는 요리하는 걸 소소하게 좋아한다. 내가 착착착 재료 준비를 해서 조리하면 내 입맛에 맞는 음식을 양껏 먹을 수 있다는 게 좋다. 먹는 걸 워낙 좋아하니 이게 일석이조가 아니겠는가. 해를 거듭할수록 요리에 대한 실력도 관심도 늘었고 이제는 스스로 ‘그럴싸한’ 요리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그럴싸함’의 범주는 라따뚜이나 루꼴라 페스토를 집에서 만들거나 계란 프라이가 올라간 소고기 강된장 비빔밥을 해 먹는 것이다. 그렇다 한들 자격증도 없고 적문적인 경험도 없으면서 ‘엄마께 요리해 드리기’라는 주제로 삶을 살아보는 프로젝트를 한다고? 스스로 해먹을 정도의 소소한 실력으로 엄마께 요리해 드리면 ‘아들아, 국이 짜구나’ 소리나 들을 테지만,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이유는 한 달이 지나도 엄마께 요리로 대접해 드리고 싶은 마음에 흔들림이 없었기 때문이다.
엄마께 대접 하고 싶다. 그것도 아주 잘해드리고 싶다. 엄마는 내 평생 나에게 요리해 주시는 삶을 살아오셨으니, 반대로 내가 엄마께 말이다. 엄마는 얼마나 많은 날을 나에게 요리해 주셨을까? 엄마가 해주신 끼니를 모두 셀 수나 있을까? 그러나 나는 여태껏 나를 위해서만 요리해왔다. 어쩜 그렇게 스스로 해 먹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는지 이제 와 반성해 본다. 나를 위해서만 요리하던 관행을 깨고 이제는 누군가를 대접할 수 있는, 성숙한 어른이 되고 싶다. 그리고 만약 누군가에게 대접하게 된다면 그 첫 대상은 엄마여야만 한다. 나의 무의식이 그렇게 말했다. 이를 그저 엄마께 요리해 드리고 싶은 마음이라고 밖에 표현하지 못하겠다. 이 마음만 믿고 엄마께 대접해 드리는 삶을 살아보려 한다.
이 다짐을 한 오늘은 특별한 날이다. 마음을 행동으로 바꾸려 마음먹은 날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요리 계획도 세워야 하고 기록도 해야 하고 실제로 요리도 완성해야 한다. 새로운 프로젝트이자 삶을 시작하는게 설레지만 걱정되고, 재밌지만 고생할 것 같은 기분이다. 이 마음을 갖고 프로젝트를 실행해 보기로 한다.
PS. 오늘부터 이 프로젝트를 ‘엄마께 식사 대접’이라고 명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