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하지도, 평범하지도 않은 사람

by 재민

어떤 저울의 양쪽 끝이 특별과 평범으로 표기되어 있다면 나는 어느 쪽에 무게가 실릴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나의 10, 20대를 떠올렸다. 세상물정 모르고 어리숙한, 말하기가 조금 부끄럽지만, 그때의 나는 특별한 사람인 줄 알았다. 아무래도 특이한 이력과 (친구말로는) 10대부터 20대 초반까지 다 끌어다 쓴 행운 덕분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그게 실감이 났다.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중학교 입학식에도 가지 않고 태국으로 떠나 국제학교를 다닌 사람은 학교에 몇 명 없었다. 그리고 태국에서 영국으로 유학을 가는 친구는 더더욱 없었다. 내가 다니던 영국의 한 대학교의 한국인 무리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스트레이트로 입학하는 경우도 거의 없었다. 나는 어떤 모임을 가던지 막내였고 어린 나이에 빠르게 대학교에 입학한 운 좋은 놈이었다.


이런 이력으로 한국에 들어오면 나는 특별한 사람이 되었다. 반은 한국인이고, 사 분의 일은 태국인, 사 분의 일은 영국인. 그래서 가끔은 생각보다 한국어를 잘하시네요, 소리를 종종 듣기도 했다. 그런 말들이 좋았다. 하지만 이런 이력 때문에 몇몇 친구들은 나를 싫어하기도 했다. 그들이 한 험담을 전달받아 듣기도 했고, 대놓고 나를 무시하는 말도 들었다. 대게 지만 잘난 줄 안다는 그런 이야기였다. 사실 험담의 이유 중 나의 싸가지 없음도 한몫을 했다는 것을 인정해야겠다. 그때의 나는 내가 다르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내 마음대로, 아니 마음껏 살았으니까.

학부를 졸업하고 20대 중반에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인턴을 한 적이 있었다. 직원이 나 포함해 딸랑 2명이었던 아주 작은 건축사사무소였다. 그곳의 소장은 성격이 아주 더러운 사람이었는데 — 그 소장이 알고 보니 평범한 수준이었다고 말하면 업계를 욕하는 꼴이 되려나 — 한 번은 인테리어 공사 현장에서 폭언을 끊임없이 퍼붓길래 그 자리에서 때려치우겠다고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소장이 “나는 인터넷에서만 보던 세상 물정 모르는 요즘 애가 내 회사에 있는 줄 몰랐네!”하길래 나도 “저도 인터넷에서만 보던 악덕 고용주가 여기 있는 줄 몰랐네요!”해주었다. 어느새 나는 특별한 아이가 아니라 특이한 아이로 자리를 잡았다.


서른이 되던 해에 나는 메이저 건축사사무소 — 소위 대형이라고 말하는 — 에 입사했다. 신입사원 때는 영국에서 대학과 대학원을 나온 눈에 띄는 이력의 신입 사원이었다. 거기에 소장님께 감히 “주말 출근에 대한 확실한 보상을 해주세요”라고 말하는, 소위 선배들을 놀라게 하는 당돌한 신입이었으나, 조직이라는 큰 파도에서 나는 둥글게 변해야 했다. 회사에서 살아남으려면 사회화가 필요했고, 조직이 띄고 있는 어떤 추상적인 인재상에 나를 스스로 맞춰갔다. 그때부터는 내 저울이 평범 쪽으로 기울어 가는 것을 느꼈다. 시키는 일을 알려주는 대로 하고, 명령을 곧이곧대로 따르고, 나오라면 나가고, 가라면 가는. 권력과 이해관계 속에서 살아내는 사람이 되었다. 이런 것을 사회화라고 부른다면 내가 너무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게 아닌가 종종 친구에게 털어놓았다. 결국 그 회사에서 만 3년을 채우지 못하고 나왔다.



올해 여러 사건들을 겪으면서 저울이 특별과 평범을 왔다 갔다 했다. 남들이 하지 않는 선택을 했다가 버티지 못하고 남들과 같은 선택은 하거나,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그러면서 들었던 두 가지 말이 있는데, 하나는 “너는 어떻게 이렇게 기구하냐”와 “다른 사람들도 다 똑같이 살아”라는 말이었다. 어떤 사람도, 특별과 평범 저울도 나를 정확히 판단할 수 없었다.


나는 1등이나 3등보다는 2등이 좋은. 무채색의 옷을 입으면 컬러로 포인트를 주고 싶은. 남들이 다 하는 것을 하고 싶어 하지만 조금 다른 게 하고 싶은. 안정적이게 살다가도 모험이나 위험에 뛰어드는. 특별하고 싶지만 평범한. 평범하지만 특이한 사람.


애초에 완전히 특별하거나, 완전히 평범한 게 가능한 일이었을까?


특별과 평범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특별하지도, 평범하지도 않은 사람이란 걸 인정해야 했다. 그건 나라는 사람을 인정하는 일이었다. 특별과 평범의 저울에서 내려와 더 이상 나를 재지 않고 살아가는 유일한 일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 때 즈음, 소량의 항우울제를 제외한 모든 약을 끊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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