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을 줄여볼까요? 이에 대해 불편하지는 않으세요?”
지난 월요일. 이제는 한 달에 한 번만 가는 정신건강의학과 선생님의 말이었다. 처음 그 병원을 방문했을 때가 5월 중순이었으니, 벌써 항우울제와 항불안제를 먹은 지 6개월도 더 지났구나.
“저는 좋아요. 요즘 별 탈 없이 지내거든요.”
병원 진료가 끝나고 또다시 한 달치 약을 받았다. 정확히는 28일분. 이번에는 항불안제를 완전히 없애고, 소량의 항우울제만 받았다. 아직 약봉투를 쥐고 병원을 나오지만, 그럼에도 내가 대견스러웠다. 그래도 잘 버텼구나. 또 한 번 버텼구나. 잘했다. 스스로를 칭찬하면서 병원을 나왔다.
그날 서울에는 별 볼일이 없었다. 집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기 전 친구와 간단한 식사와 커피를 마신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친구들을 제외하고는 딱히 서울에 두고 온 것은 없었다. 마음 편안히 다시 본가로 돌아왔다.
그날 저녁에는 넷플릭스에서 보던 드라마를 마무리 지었다. \<자백의 대가\>라는 작품이었다. 순수하고 꾸밈없던 주인공이 딸과 자신의 진실을 위해 평생 할 수 없었던 — 좋던 나쁘던 — 일을 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어떤 이야기는 보거나 듣거나 읽으면 내가 겪은 시간들을 되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다. 물론 내가 드라마처럼 일어날 수 없을 것만 같은 일을 겪은 것은 아니었지만.
드라마를 끝내고 나서야 침대에 누웠다. 묘한 불편감과 생각에 잠에 쉽게 들지 못했다. 나는 몸을 뒤척거리면서 머리로는 과거를 자꾸 뒤적거렸다. 내가 왜 서울에 갔는지. 무엇 때문에 나를 그 지경까지 몰아세웠는지. 그 정도면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왜 갑자기 눈물이 터진 건지.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올해의 시간들에 고통을 느꼈다. 그러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잠들었다.
다음 날. 일어나 커피를 마셨다. 간단하게 사과 하나와 아몬드 몇 알을 아침으로 먹었다. 그리고 글을 쓰려 자리에 앉기 전에 전날 병원에서 받은 항우울제 한 알을 먹었다. 오전에는 글을 쓰다 정오가 되면 점심을 먹는다. 그리고 또 글을 쓰다 운동을 하러 간다.
더 이상 내 일상에는 아침마다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 사람들 사이에 끼여 출근하는 일은 없었다. 아침마다 했던 나의 자존감을 해치던 회의도. 점심시간이 부족해 패스트푸드점으로 달려가 먹던 햄버거도. 피곤함을 이기려고 하루에도 서너 잔을 마시던 맛없는 회사 커피도. 퇴근하고 싶어 상사를 힐끗 보던 눈치도 없어졌다.
그동안 나는 무엇을 지키고 싶어 내 일상에 이런 것들을 끼워놓았을까. 챗바퀴를 도는 안정감이었을까. 아니면 조금씩 티끌처럼 늘어나는 재산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모두가 사는 비슷한 삶을 위한 욕심이었을까.
지금은 그 무엇이든 다 포기한 채 딱 몇 가지만 쥐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느낀다.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은 개중 하나도 포기하지 않고 모두 안고 가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병이 나고 죽지 않으려 발버둥 쳐보니 알겠다. 그런 선택과 관념들이 나를 곧게 세운 다는 것도 이제는 알겠다. 어른이 된다는 건 가장 소중한 것을 위해 그렇지 않은 모든 걸 포기하는 것이다.
한번쯤은 이런 깨달음이 필요했다. 내가 믿고 살아왔던 생각들을 완전히 부숴버리고 일상을 산산조각을 내어 이전의 삶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게 하는 사건들. 그 와중에 내가 진심으로 소중하게 생각하는 일과 사람들을 찾고, 그 지점으로 다시 방향키를 돌려 앞으로 나아가는 일들이 필요했다. 언제까지 그 방향이 옳은지 알 수 없지만 당분간은 그곳을 향해 갈 거라는 용기가 필요했다. 그렇다면 용기를 내야지. 요즘 자주 되뇌는 말이다.
이 글을 쓰는 오늘은 이번 연도 마지막 토요일이다. 이제 나에게 소중한 것들만 손에 꼭 쥔 채 나머지 것들은 지난 시간 너머로 보내주어야겠다. 지난 일들은 아주 가끔씩, 어쩌다 한번쯤만 뒤적거려야겠다. 이제는 내게 소중한 것들만 보고 듣고 만나고 사랑하고 살아야지.
- <무너진 나를 재건축합니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