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초이 이병헌이 말했다.
진실을 묻고 싶지만 물어볼 수 없는 관계.
서로 알고 있지만 드러낼 수 없는 존재의 여운을 표현하기에 적절하다.
우리들은 항상 여운속에 살아야 그 순간이 길어진다. 망설임 없이 내 뱉는 <사랑해>라는 표현도 진심이지만 헤어지는 차창밖으로 엄지와 새끼손가락을 뻗은체 <전화할께>라는 재스처를 남기는 것이 더욱 애절하다.
사랑을 시작하고 시들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수 있다. 마음을 모두 확인했기 때문이 아닐까?
서로의 마음을 들킨듯 하지만 확실치 않은 시간 속에서
만남은 언제나 더 설레이는 법이다.
여운이다. 아쉬움이고 그리움이다.
이젠 들켜버릴 마음조차 없는 불혹의 아저씨라는 것이 침통할 뿐...
유진초이는 사랑을 선택했다.
무엇이 옳은 선택인지는 누구도 단정지을 수 없다.
누군가는 이런 사랑을 하고 있을 것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상상도 하지 못하는 사랑일 것이다.
사랑을 선택한 유진초이는 미국의 국적을 잃으면서도 다시 애신의 곁으로 가고
결국 그녀의 길을 막는 장애들을 끌어안고 사라진다.
물러선다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다.
더욱이 스스로를 포기하면서까지 지킨다는 것은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랑, 그 이상의 무엇일 것이다.
나는 누구보다 자기애가 투철하여 사랑을 위해 나를 포기할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나를 희생할 용기가 없었으니
어쩌면 지금까지 내가 한 것은 사랑이 아니었을까...?
극중 유진초이는 위기의 순간에 한 발의 총알을 아주 잘 사용한다.
한 번은 이동매의 패거리들에게 둘러 쌓였을때 대사관 방향으로 탕!
일본에서 쫒기고 있을 때 미군 대사관 유리창을 향해 탕!
그리고 마지막에 애신을 위해 또 한 번 탕!
마지막 한 발은 오롯이 애신만을 위한 총성이라 더욱 마음이 아팠다.
<하나> 라는 것은 극적인 요소에 언제나 등장하는 소재가 되고
선택을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감정을 극대화 시킨다.
그 때 인물의 선택이 시청자의 마음을 쥐고 흔드는 것이다.
그런데! 꼭 그래야만 했을까?
굳이 한 발의 총알을 열차의 마지막칸까지 들어가서 쏴야 했을까?
인질을 붙잡고 일본군만 마지막 칸에 밀어 넣었어도 되지 않았을까 싶지만
아마도 그렇다면 감동은 반감 되었을 것이다.
주인공은 언제나 주인공답게 사라져줘야 하는 것이다.
<러브>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함께해보자는 애신에게 유진초이가 한 대사이다.
고애신 : 아녀자라 안 되는 것이오? 내 총도 쏠줄 아는데?
유진초이 : 사랑은 총쏘는 것보다 어렵고 그 보다 더 위험하고 그 보다 더 뜨거운 것이오!
사랑을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많은 감정과 알수 없는 깊이로 사람을 힘들게 하는지 말이다.
사랑에 빠져 아름다움만을 느껴본 사람은 진정한 사랑을 모른다고 감히 말하고싶다.
< 사랑의 완성은 이별 >이라는 말이 있듯이 사랑은 헤어짐 뒤의 그리움과 아픔까지 포함되는
어렵고 복잡한 감정이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가슴을 통제 할 수 없는 현실에 맞닥들여지게 되므로
총쏘는 것보다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현실에서 사랑의 완성은 결혼이다.
결혼이라는 선택의 오점을 남기지 않기 위해 우린 그렇게 믿고 살고있다.
하지만 10년 쯤 지나면 혼란스러워진다. 과연 사랑은 존재하는지, 다른 모습으로 변한 것인지
아니면 잃어버렸는지 전우애로 버티고 있는 질긴 인연인지...
그러다보면 마치 내 안에 있어야 할 사랑이라는 아름다운 가치를 놓친 것만 같은 불안감이 밀려온다.
서둘러 사랑의 정의를 재정비하고 드라마에 몰입한다.
그렇게 나는 내안의 <사랑>이란 감정을 지키며 살고 있다.
드라마를 보며 눈가가 촉촉해지고,
코가 시큰해지는 것이 바로 뚜렷한 증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