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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즈킴 Oct 24. 2019

난임 휴직을 쓸 수 있는 권리

임신이 어려운 세상, 난임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회사에서 가장 친하게 지내는 동료 A가 7개월간 ‘난임 휴직’에 들어간다. 난임 휴직은 규정상 직원이 누릴 수 있는 마땅한 권리로 명시되어 있지만 사실 그의 소식을 듣기 전까지 나는 이러한 제도가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전까지 어떤 여성도 난임 휴직을 신청한 적이 없었고 누구도 이 제도를 쓰라고 독려한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사실 자신이 난임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굳이 공개적으로 밝히고 싶지 않는지도 모른다.) 올해로 서른하나, 결혼 3년 차의 A는 회사 ‘최초로’ 난임 휴직을 쓰는 직원이 됐다. 


처음 A의 난임 휴직을 대하는 회사의 반응은 미숙했다. 규정집에는 ‘신체정신상의 장애로 장기요양을 할 때 휴직을 명해야 한다’고 쓰여 있으며 여기에는 불임과 난임도 포함된다. 휴직기간은 최대 1년까지 보장한다. 하지만 A가 난임 휴직을 문의하자 정작 인사팀은 ‘이런 일은 처음 처리해봐서...’ 당혹스러움을 표하며 ‘3차 병원’의 진단서를 요구했다. 이미 A가 지난 9개월간 난임 전문병원에서 치료 받은 기록을 제출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팀은 반응은 싸늘했다. 


“...그래요? 뭐 휴직을 쓰겠다는데 어떻게 하겠어요. 일단 그렇게 하고 대체 인력은 어떻게 할지 알아보세요.”


그가 속한 팀의 리더에게는 A의 마음이 어떤지, 얼마나 힘든 상황에서 내린 결정일 것인지 따위의 염려는 없는 것 같았다. 어쩌면 이미 두 아이를 가진 40대 후반의 남성인 그에게 난임의 문제는 그리 심각하게 다가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에게는 A가 아이를 갖는 문제보다 A가 떠난 사무실 빈자리를 누가 어떻게 채울 것인지가 급선무였을 테니까. 심지어 그는 A의 결정을 회유한답시고 “월급을 못 받아도 괜찮겠느냐”며 재정적 문제를 들먹였다. 


물론 돈과 커리어도 30대 여성에게 무척 중요한 이슈다. 하지만 ‘임신과 출산’이라는 인생의 새로운 계획을 앞둔 A에게는 자신의 몸을 돌보며 아이를 가지는 일이야말로 무엇보다 중대한 과제였으리라. A는 마지막 순간까지 난임 휴직 1호 직원으로 찍힌 자신의 안위에 대한 걱정과 주변 동료들에 대한 미안함, 그 누구도 자신의 상태를 진심으로 지원해주지 않는 회사에 대한 실망감을 안고 휴직을 떠났다.    




난임은 지금 우리에게 닥친 시급한 문제 


최근 많은 이들이 저출산을 우려하지만 정작 사회적 문제로서 난임이나 불임에 대한 의식과 이에 대한 지원책은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세계보건기구(WHO)는 35세 이하의 여성이 12개월 이상, 36세 이상 여성이 6개월간 피임을 하지 않고 임신을 시도했으나 실패한 경우 난임으로 정의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15∼49세 기혼 여성 1만 여명을 상대로 난임 경험 여부를 알아보니, 12.1%가 아이를 낳고 싶지만 난임으로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연령별로는 35세 이상이 25.3%로 가장 많았으며, 30∼34세가 16.3%, 25∼29세가 11.2% 등으로, 결혼 연령이 늦을수록 난임을 경험하는 비율이 높았다.


정부에서는 시술비를 지원하는 등 난임 부부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려 노력하고 있지만 막상 난임에 처한 부부, 특히 여성이 겪어야 하는 어려움은 단순히 경제적 요인에만 머물지 않는다. 난임 치료를 위해서는 정기적으로, 보통은 일주일에 2번 이상 병원에 방문해 몸 상태를 파악하고 이에 맞는 약물 치료를 받아야 한다. 직장에 다니는 여성이라면 근무 시간의 일부를 쪼개 병원에 다녀올 수밖에 없는 구조다. A 또한 병원에 가기 위해 반차를 내거나 팀장에게 외출 허가를 받아야 했는데 눈치를 보지 않으려 해도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그 상황이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출처 : 서울경제


2018년 개정된 노동법에 따르면 사업주는 근로자가 인공수정 또는 체외수정 등 난임 치료를 받기 위해 휴가를 청구하는 경우, 연간 3일 이내의 ‘난임치료휴가’를 주어야 한다. 또한 교육공무원 등 일부 기관 및 특정 기업에서는 1~2년 이내의 난임 휴직을 보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나와 같이 난임을 위한 휴가 및 휴직 제도를 모르는 이들이 많을뿐더러, 알더라도 이를 실질적으로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보통이다. 이는 난임을 여전히 ‘쉬쉬해야 하는 부끄러운 일’로 여기는 사회적 시선과 난임의 원인을 여성에게만 전가하는 구시대적 발상과도 무관치 않을 것이다. 


남성에게도 난임 치료 위한 동등한 기회 줘야 


과거 난임의 원인으로 보통 ‘원인 불명’과 여성의 ‘나팔관 요인’이 꼽혔다. 그러나 최근에는 산모의 연령 증가를 비롯한 다양한 원인에 따른 ‘배란 장애’와 각종 ‘남성 요인’이 임신을 어렵게 만드는 주된 요인 중 하나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로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난임진단자 가운데 여성이 15만9천635명(66%), 남성이 8만2천257명(34%)이었으며 해마다 남성 난임 환자 수는 늘고 있는 실정이다. 


‘육아휴직’마저 상사의 눈치를 보며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하는 남성들에게 난임 휴직이란 그림의 떡처럼 무용한 것처럼 여겨질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아이를 만드는 일을 여성 혼자 할 수 없듯 남성과 여성이 함께 주체가 되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만 난임의 문제를 좀 더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않을까. 출산을 오로지 여성의 몫으로 남겨둔 채 치료가 부부 어느 한 편에 집중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여성의 생식력은 20-25세에 정점을 이루고 32세 이후부터는 서서히 감소하기 시작해 37세 이후에는 급격히 감소한다고 한다. 물론 40대가 넘어서도 큰 어려움 없이 건강한 아이를 출산해 양육하는 여성들도 많을 것이다. 아직 결혼과 출산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없는 상태지만 나 역시 머지않은 미래에 엄마로서의 꿈을 실현하고자 하는 마음이 크다. 하지만 30대 중반에 선 여성으로서, 임신에 어려움을 겪는 많은 여성과 남성들을 목격하며 새삼 아이를 갖는 일의 숭고함과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난임이 이제 일부에게 국한되지 않는 사회적 문제가 되었다면, 이를 해결하는 논의 또한 개인적 차원을 넘어 사회적 합의와 체계적 지원 아래 이뤄져야 한다. 난임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주변의 눈치를 보며 새로운 마음의 상처를 받기보다는 우리 모두의 배려 속에서 난임 휴직을 비롯한 일련의 제도가 임신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누구라도 마땅히 누릴 수 있는 권리로 자리잡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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