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정신을 지배하지 않게.
오늘 새벽 퇴근하자마자 배송 알바를 했다. 대략 네시반 경부터 두 시간 정도 근무하게 되는데, 오늘은 물량이 많아 트럭기사님이 5시 15분이 되어서야 짐을 내려놓으셨고, 그제야 배송을 시작할 수 있었다.
오늘이 세 번째 날인데, 여느 날과 같지 않았다. 두 번째 출근 때까지는 재미있게 근무했다, 카트에 각 아파트 동마다 15개 남짓 배송물을 싣고 꼼꼼하게 일할 수 있었는데 오늘은 차원이 달랐다. 33층 아파트에 호수는 두 개 밖에 되지 않았지만 엘리베이터가 한 개만 있었다. 카트에 30개 정도의 짐을 실어야 했다. 프레시박스, 무거운 짐, 부피가 매우 큰 박스 등 다양한 짐들. 대형카트 두 개 분량이 넘었는데, 나 혼자 해결하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도전해 보기로 했다.
시간에 쫓기고 엘리베이터 탑승하는 이들의 눈치에 쫓긴다. 게다가 한 호수에서 4개, 8개 주문한 경우도 있어 배송물에 기재된 주소를 한번 더 확인해야 한다. 문제는 30여 개의 짐들에서 내가 원하는 그것들을 찾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정리도 잘하고 이성적으로 민첩하게 움직 일 수 있었는데, 점점 체력이 고갈되고 마음이 급해지다 보니 실수를 연발했다. 짐을 빼놓고 카트에 싣기도 하고, 혹 내가 오배송을 했거나 카트를 움직이며 아예 분실한 것은 아닌지 별의별 걱정과 의심이 들면서 패닉에 빠졌다.
아주 오랜만에 탈진한 기분이 들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고용주인 베테랑 기사님이 와서 내 할당량들을 처리해 주셨다, 아침 7시 배송원칙이 '나 때문에' 깨지게 되어 너무 죄송했다.
그는 나보다 다섯 살 아래인데 내가 사장님이라고 부르는 이다. 나의 고용주이니 난 최선을 다해 소임을 다하고 또 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주의인데- 그가 곤란해하는 모습을 보니 내 마음이 참 안 좋았다.
생각해 보니 '나 때문에' 뭔가 일이 틀어진 것 같거나, 다른 사람이 고통받는다고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가라앉고 바닥이 어딘지 모를 깊은 바닷속으로 침전해 가는 것만 같다. 이 기분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