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헉, 두 줄이다."
얼떨떨했다. 거창한 계획을 한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아예 예상 밖의 일도 아니었다. 혹시나 뭐가 잘못된 건 아닐까, 좀 저렴한 제품을 샀는데 정확도가 떨어진 건 아닌지 이런저런 생각에 여분의 임신 테스트기를 꺼냈다. 그 자리에서 두 번을 시험해 보니 두 번 모두 두 줄이 서서히 나타나는 걸 보고 '진짜 임신인가?' 마음이 달뜨기 시작했다.
곧바로 산부인과에 전화했다. 마감시간이 30분 남았다며 얼른 오라는 말에 서둘러 병원을 찾았다. 산부인과에서는 아기집을 보기 위해 초음파부터 해보자고 했지만, 아쉽게도 아기집은 보이지 않았다. 아직 너무 일러 아기집이 안 보이는 것 같다며 임신을 확인하기 위한 피검사를 권했고, 다음 날 결과를 알려주겠다고 해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지방 출장을 갔던 남편은 저녁 8시가 되어서야 집에 도착했다. 이 사실을 어떻게 말해줘야 할지 고민하다 그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 마음에 몰래카메라부터 켰다. 집에 와 늦은 저녁을 먹는 남편에게 할 말이 있다며 괜히 장난을 치다가 아주 담백하고 차분하게 '임신'을 말했다.
"나 아기 가진 거 같아."
남편은 연신 "진짜야?"라고 물었고, 장난기 많은 나는 "장난이야. 정말 믿었어?" 하며 몹쓸 연기를 몇 번 해준 뒤, 병원에 다녀온 기록을 보여줬다. 화들짝 놀란 남편은 밥 먹다 말고 일어나 나를 힘껏 안았다. 아직 아기집도 보기 전이고 피검사 결과도 나오기 전이지만, 임신테스트기 두 줄에 우리는 괜스레 눈시울을 붉히며 엄마아빠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다음 날 병원에서 '피검사 결과, 임신이 맞다'는 확인 전화를 받았다. 아기집이 보이려면 며칠 있어야 하니 사흘 뒤 초음파 보러 병원에 오라는 얘기를 들었다.
피검사 결과는, 전날 확인했던 임신테스트기 두 줄보다 더 강력하게 내가 임신했다고 확인시켜 주는 것만 같았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내가 정말 임신을 하긴 했구나.'
"코로나 양성입니다."
초음파 보러 가기 전날, 코로나에 걸렸다. 코로나19 확산 2년 반 동안 천하무적 한 번도 걸린 적 없었는데 어떻게 임신하자마자 코로나에 걸릴 수 있는지.
처음엔 임신 초기 증상인 줄만 알았다. 온몸이 독감 걸린 것처럼 쑤시고, 열나고, 아팠다. 임신한 몸으로 약도 마음대로 먹을 수 없어 일단 쉬면서 몸이 괜찮아지길 기다렸지만, 열이 너무 심해 온몸이 뜨거웠고 오한까지 났다.
밤새 고열에 시달렸는데 초보 아빠엄마는 고열이 태아에게 치명적이라는 사실도 모른 채 오한이 나니 이불로 온몸을 꽁꽁 싸맸고 그저 고통을 감내하고만 있었다. 집에 체온기도 없던 때라 그날 밤 열이 대체 몇 도까지 올랐는지 모르지만, 그저 몸이 밤새 불덩이였다는 기억만 선명하다.
불안했다. 무서웠다. 뒤늦게 인터넷 여기저기 뒤적이다 보니 고열이 태아에게 치명적이라는 걸 알게 됐다. 눈물을 머금고 결국 새벽에 응급실을 찾았다. 그제야 지난밤 내가 겪은 것들이 임신 초기 임산부들이 겪는 예사 증상이 아닌, 코로나 증상이라는 걸 알게 됐다.
후회가 밀려왔다. 무지함이 이렇게 원망스러울 수 없었다. 고열과 태아의 상관관계를 전혀 생각하지 못한 채 밤새 끙끙대기만 했다니, 자책이 밀려왔다. 혹시라도 우리 아기 잘못되면 어떡하지, 겁이 났다.
응급실에서 지나가는 의사를 붙잡고 "아기 괜찮을까요"라고 물었지만, 그 누구도 괜찮을 거라는 위안이 되는 말은 해주지 않았다. '지금은 아무도 알 수 없겠지' 싶으면서도 불안한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임신인 걸 먼저 알고 아팠기에 애먼 약을 먹지 않았다는 것과 또 지금이라도 열을 가라앉혔으니 다행이라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날 오후 초음파를 보러 병원에 갔다. 다행히 코로나 자가 격리가 없어진 뒤라 코로나 환자임에도 진료를 볼 수 있었다. 아주 작은 점, 자세히 봐야 알 수 있을 만큼 작디작은 아기집을 겨우 보고 나왔다.
며칠간 끙끙 앓았고, 코로나 후유증이 찾아왔다. 후각과 미각을 잃은 것이다. 먹는 즐거움이 사라지니 모든 의욕이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고된 일주일을 보낸 후 코로나 바이러스는 내 몸에서 어느새 사라졌다. 바이러스가 지나간 자리엔 '입덧'이 찾아왔다.
입덧은 임신 후 처음 겪은 '변화'였다. 그 변화를 통해 그간 아주 익숙하고 당연하게 여겨왔던 임신과 출산에 대해 내가 이토록 무지했구나 깨달았다. 아주 가까운 엄마를 비롯해 친구들 또 선배들의 임신과 출산을 익히 보고 들어온 만큼, 그것에 대해 이미 너무나 잘 알고 또 그것이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었다. 아주 큰 오해였다. 직접 겪어보니 뱃속에 아기를 품고 낳는 일은 절대 당연한 것이 아니고 간절하고 치열하게 버티고 인내하고 이겨낸 결과물이었다. 고달프고 때론 잔인하기까지 한 임신과 출산에 대해 미리 알았더라면 내 인생에 '두 줄'은 그어질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