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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의뚜니 Oct 27. 2024

임신한 동료, 어디까지 배려해줘야 하나요?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던 임신과 출산(4)

"임신한 동료의 컨디션은 어디까지 배려해줘야 할까"


임신은 절대적으로 축복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예비 엄마'로서 받는 것이고, '직장인'에게 임신은 슬프게도 주변에 양해를 구해야 하는 다소 미안한 이슈일 수 있다.


임신 8주부터 시작된 '입덧'으로 음식 냄새만 맡아도 토하고 10분 이상 걸으면 현기증이 나 주저앉아야 했던 컨디션이었지만, 임산부를 위한 단축 근무제는 쓸 생각조차 못했다. 부서에 아이를 셋이나 낳고 육아휴직도 세 번이나 쓴 선배가 있었지만, 단축 근무제는 생소해할 만큼 회사에 제도를 이용하는 사람은 없다시피 했다. 어찌어찌 단축 근무제를 쓴다고 해도 내가 적게 일함으로써 내 일이 동료에게 전가될 수 있다는 부담과 미안함이 크게 느껴졌다.


임신 사실을 동료에게 알리는  꽤 어려운 일이었다. 임신은 분명 축복받아야 할 일이지만, 어쨌든 같이 일하는 동료에게 나의 임신 소식은 몇 개월 뒤 인력 공백이 생긴다는 의미이기도 했고, 막달이 될수록 몸이 무거워지니 현장 취재나 취재원과의 회식 자리에 전처럼 참여할 수 없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물론 나의 임신에 대해 부정적인 말을 얹은 동료는 없었고, 오히려 임신 사실을 알렸을 때 진심 어린 축하를 받았다. 또 내가 임신해 있을 때 사내엔 이미 여러 명의 임산부가 있었기에 특별히 회사 사람들의 눈치를 봐야 할 처지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일할 때마다 자꾸 위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동료들이 혹여 임산부인 나를 배려해줘야 한다는 부담을 가질까 두려웠고, 또 임신하기 전과 똑같은 컨디션으로 일하고 싶은데 그게 맘처럼 쉽지 않아 힘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임산부라고 특별 대우하지 않고 전과 다름없이 나를 대해줄 때 고마움을 느꼈고, 모순이지만 임산부임에도 배려해주지 않아 서운하기도 했다.



"임산부가 이런 데 와도 돼요?"


두툼한 외투를 입어도 가릴 수 없는, 얼핏 봐도 임산부임이 확연한 임신 8개월 차에 뻗치기(취재 대상을 무작정 기다리는 취재 기법) 취재를 나갔던 적이 있다. 팀원들 모두 동원될 만큼 출입처 내 중요한 일정이었지만, 무거운 배를 이끌고 뻗치기 현장에 가는 건 사실 달갑지 않았다.


여러 매체 기자들과 취재원이 모두 모인 그곳에서 나의 존재는 숨기려 해도 자꾸 눈에 띄었다. 배불뚝이 나를 보고 "아니, 어떻게 임산부가 여기까지 왔어요?"라는 질문을 계속 받으니 현장에 있는 게 괜히 머쓱했다. 육체적으로 힘든 건 둘째였고 그냥 거기 그 자리에 내가 있다는 것이, 배가 나온 임산부가 지나가는 기업인을 보고 달려들어 질문하고 있다는 것이, 나는 물론 보는 사람까지도 불편하게 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냥 내 일을 하는 것뿐인데, 스스로 떳떳하지 못하고 자꾸만 위축됐다. 


회사에서 임산부인 나를 배제하지 않고 취재 현장으로 보낸 것이 막달 임산부지만 끝까지 나의 쓸모, 내 역할을 인정해 주고 필요로 해준 것 같아 고마웠다. 그렇지만 나는 어쨌든 막달 임산부인데 다른 동료들과 너무 똑같이 대하는 게 아닌가 싶어 서운함도 느꼈다. '아니 그래서 뭐 어떻게 해달라는 것인가' 싶은 이 아이러니는 임신한 동료의 컨디션을 대체 어디까지 배려해 줘야 맞는 것인지 임산부인 나조차 잘 모르겠다는 뜻이다.


분명한 건 임산부로 일하는 동안 동료들에게 임신했다고 일을 설렁설렁한다는 인식을 주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보다 더 악착같이 일하려 했고, 툭 치면 쓰러질 것 같은 컨디션에도 현장 취재에서 빠지지 않으려 다. 임신 전과 후 동료로서 일하는 데 차이가 느껴지지 않도록 똑같은 1인분, 제 역할을 다 하고 싶었다.


이런 나의 태도는 오롯이 책임감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보다는 임산부에 대한 나의 잠재의식이 더 영향을 미친 것 같다. 회사생활 7년간 단 한 번도 임산부 동료와 일해본 적 없었고, 임산부 동료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몰랐다. 그럼에도 내 잠재의식 속 일하는 임산부는 똑같은 1인분을 다하지 못할 것이고, 조직 입장에서 득이 아닌 실로 여길 것이란 편견이 있었다. 그래서 병적으로 '나의 쓸모', '내 역할'에 임신 전보다 더 집착했다. 불편한 소리 듣기 싫어서.


임신한 동료의 컨디션을 배려해주는 건 마땅한 일일까, 그렇다면 어디까지 배려해줘야 맞을까. 그 복잡한 기준을 분명히 세우는 일은 일하는 임산부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올바른 의식을 형성하는 것부터 시작돼야 한다. 그래야 
임산부 단축 근무제 등 일하는 임산부를 위한 정책이 임산부의 당연한 권리로 인식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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