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한 동료의 컨디션은 어디까지 배려해줘야 할까"
임신은 절대적으로 축복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예비 엄마'로서 받는 것이고, '직장인'에게 임신은 슬프게도 주변에 양해를 구해야 하는 다소 미안한 이슈일 수 있다.
임신 8주부터 시작된 '입덧'으로 음식 냄새만 맡아도 토하고 10분 이상 걸으면 현기증이 나 주저앉아야 했던 컨디션이었지만, 임산부를 위한 단축 근무제는 쓸 생각조차 못했다. 부서에 아이를 셋이나 낳고 육아휴직도 세 번이나 쓴 선배가 있었지만, 단축 근무제는 생소해할 만큼 회사에 제도를 이용하는 사람은 없다시피 했다. 어찌어찌 단축 근무제를 쓴다고 해도 내가 적게 일함으로써 내 일이 동료에게 전가될 수 있다는 부담과 미안함이 크게 느껴졌다.
임신 사실을 동료에게 알리는 건 꽤 어려운 일이었다. 임신은 분명 축복받아야 할 일이지만, 어쨌든 같이 일하는 동료에게 나의 임신 소식은 몇 개월 뒤 인력 공백이 생긴다는 의미이기도 했고, 막달이 될수록 몸이 무거워지니 현장 취재나 취재원과의 회식 자리에 전처럼 참여할 수 없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물론 나의 임신에 대해 부정적인 말을 얹은 동료는 없었고, 오히려 임신 사실을 알렸을 때 진심 어린 축하를 받았다. 또 내가 임신해 있을 때 사내엔 이미 여러 명의 임산부가 있었기에 특별히 회사 사람들의 눈치를 봐야 할 처지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일할 때마다 자꾸 위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동료들이 혹여 임산부인 나를 배려해줘야 한다는 부담을 가질까 두려웠고, 또 임신하기 전과 똑같은 컨디션으로 일하고 싶은데 그게 맘처럼 쉽지 않아 힘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임산부라고 특별 대우하지 않고 전과 다름없이 나를 대해줄 때 고마움을 느꼈고, 모순이지만 임산부임에도 배려해주지 않아 서운하기도 했다.
"임산부가 이런 데 와도 돼요?"
두툼한 외투를 입어도 가릴 수 없는, 얼핏 봐도 임산부임이 확연한 임신 8개월 차에 뻗치기(취재 대상을 무작정 기다리는 취재 기법) 취재를 나갔던 적이 있다. 팀원들 모두 동원될 만큼 출입처 내 중요한 일정이었지만, 무거운 배를 이끌고 뻗치기 현장에 가는 건 사실 달갑지 않았다.
여러 매체 기자들과 취재원이 모두 모인 그곳에서 나의 존재는 숨기려 해도 자꾸 눈에 띄었다. 배불뚝이 나를 보고 "아니, 어떻게 임산부가 여기까지 왔어요?"라는 질문을 계속 받으니 현장에 있는 게 괜히 머쓱했다. 육체적으로 힘든 건 둘째였고 그냥 거기 그 자리에 내가 있다는 것이, 배가 나온 임산부가 지나가는 기업인을 보고 달려들어 질문하고 있다는 것이, 나는 물론 보는 사람까지도 불편하게 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냥 내 일을 하는 것뿐인데, 스스로 떳떳하지 못하고 자꾸만 위축됐다.
회사에서 임산부인 나를 배제하지 않고 취재 현장으로 보낸 것이 막달 임산부지만 끝까지 나의 쓸모, 내 역할을 인정해 주고 필요로 해준 것 같아 고마웠다. 그렇지만 나는 어쨌든 막달 임산부인데 다른 동료들과 너무 똑같이 대하는 게 아닌가 싶어 서운함도 느꼈다. '아니 그래서 뭐 어떻게 해달라는 것인가' 싶은 이 아이러니는 임신한 동료의 컨디션을 대체 어디까지 배려해 줘야 맞는 것인지 임산부인 나조차 잘 모르겠다는 뜻이다.
분명한 건 임산부로 일하는 동안 동료들에게 임신했다고 일을 설렁설렁한다는 인식을 주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보다 더 악착같이 일하려 했고, 툭 치면 쓰러질 것 같은 컨디션에도 현장 취재에서 빠지지 않으려 했다. 임신 전과 후 동료로서 일하는 데 차이가 느껴지지 않도록 똑같은 1인분, 제 역할을 다 하고 싶었다.
이런 나의 태도는 오롯이 책임감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보다는 임산부에 대한 나의 잠재의식이 더 영향을 미친 것 같다. 회사생활 7년간 단 한 번도 임산부 동료와 일해본 적 없었고, 임산부 동료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몰랐다. 그럼에도 내 잠재의식 속 일하는 임산부는 똑같은 1인분을 다하지 못할 것이고, 조직 입장에서 득이 아닌 실로 여길 것이란 편견이 있었다. 그래서 병적으로 '나의 쓸모', '내 역할'에 임신 전보다 더 집착했다. 불편한 소리 듣기 싫어서.
임신한 동료의 컨디션을 배려해주는 건 마땅한 일일까, 그렇다면 어디까지 배려해줘야 맞을까. 그 복잡한 기준을 분명히 세우는 일은 일하는 임산부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올바른 의식을 형성하는 것부터 시작돼야 한다. 그래야 임산부 단축 근무제 등 일하는 임산부를 위한 정책이 임산부의 당연한 권리로 인식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