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분만 할 거야?"
주변에 임신 사실을 알릴 때마다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 중 하나는 "자연분만 할 거야?"라는 것. 태명이 뭔지, 계획 임신이었는지, 성별은 나왔는지와 함께 많이들 궁금해했던 것이 바로 분만 방법이었다. 그 질문을 들을 때마다 "일단은 자연분만을 생각하고 있다"라고 답했다. 그러면 "오~ 대단한데?"라며 자연분만에 대한 의지를 높이 사는 말들이 돌아왔다. 요즘은 자연분만이 충분히 가능한 조건임에도 제왕절개를 선택하는 산모가 많다 보니 자연분만을 시도하겠다는 것 자체가 어느새 대단한(?) 일이 된 모양이다.
사실 나는 자연분만에 대한 의지가 강했다기보다 자연분만에 대한 호기심이 더 강한 편이었다. 자연분만 시 산모가 느끼는 진통이 대체 어떤 것인지 궁금했고, 그 산고를 겪고 생명이 탄생하는 숭고한 순간을 맞아보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다. 그래서 '일단' 자연분만을 하겠노라 선언하긴 했지만, 아직 겪어보지 못한 엄청난 진통을 생각하면 과연 내가 자연분만을 할 수 있을까 두려움이 앞섰다.
그래서 내심 산부인과를 찾을 때마다 어쩔 수 없이 이런 방법으로 분만을 해야 한다는, 나의 선택에 의해서가 아니라 의학적 판단에 의해 내 분만 방법이 결정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의학적 판단에 의해 분만 방법이 결정된다면 그건 제왕절개일 테니, 어쩔 수 없이 제왕절개를 해야 하는 상황을 기대했던 것 같다.
그럼 그냥 제왕절개를 선택하면 되는 문제인데, 왜 그렇게 망설였을까. 괜히 주변에 자연분만 할 거라고 선언했고 대단하다는 말까지 들었으니 자연분만을 시도하지 못할 이유가 없는 상황에서 오직 산모의 마음대로 제왕절개를 선택하는 게 괜히 머쓱했던 거 같다. 그래서 더욱 선택을 병원에 돌리고 싶었던 게 아닌지. 그러나 병원에서는 내 경우 자연분만을 시도하지 못할 특이사항이 없다고 했고, 그렇게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모든 것이 자연분만에 맞춰 진행됐다.
"그냥 수술할게요, 제발요"
'일단 자연분만을 해보겠노라' 분명 마음먹었는데, 예정일이 다가올수록 겁이 나고 두려웠다. 대체 얼마나 아플까. 미지의 영역인 그 엄청난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컸다. 또 막달이 되니 초기 입덧 지옥만큼 몸이 고달파 얼른 출산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몸이 무겁고 소화력이 달려 더부룩한 데다 걸을 때마다 밑이 빠지는 느낌까지. 몸 이곳저곳이 불편하니 40주에 가까워질수록 '제왕절개를 선택했더라면 벌써 출산했겠다' 싶은 생각이 자꾸 들었다.
뚜니(태명)의 예정일은 3월 3일이었다. 예정일을 5일 앞두고 마지막 진료를 보러 병원에 갔는데 자궁문이 아직 열리지 않았다고 했다. 남은 기간 동안 '자궁문 열리는 운동', '아기 내려오는 요가' 등 관련 영상을 보며 열심히 따라 했다. 예정일 바로 전날에는 왕복 1시간 거리에 있는 마트에서 장까지 보고 왔다. 집으로 돌아와 바지를 갈아입는데 다리가 후들거려 그대로 주저앉았다. 다리에 알이 단단히 배긴 것이다. 그날 밤 저녁을 먹고 쉬고 있는데 갑자기 느낌이 이상해 화장실에 갔더니 빨간 피를 봤다. 서둘러 병원에 갔더니 진통이 시작된 것 같다며 입원하라고 했다. 그때가 밤 11시였다.
다음 날 새벽까지 약한 진통을 느꼈고, 아침 5시께 되어서야 '아, 이게 바로 그 진통이구나' 싶을 만한 통증이 찾아왔다. 처음엔 자궁을 누가 쥐어짜는 느낌, 그러다가 누가 짓밟는 느낌, 점점 심해지더니 급기야 덤프트럭이 밟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설상가상으로 알 배긴 다리를 움직일 때마다 근육통까지 느껴졌고, 이 와중에 관장하러 화장실까지 들락날락하려니 정말 죽을 맛이었다. 온몸이 그냥 너덜너덜해지는 것 같았다. 그때 심정은 누가 마취총으로 날 쏴줬으면 좋겠다 싶었다.
아팠다, 안 아팠다 진통은 주기에 맞춰 오는데 갑자기 계속 아프기 시작했다. 쉴 틈 없는 고통에 얼른 '무통주사'를 놔달라고 했더니 의사는 무통주사 대신 내진을 했다. 미약하게나 밤새 진통을 했고 아침 5시부터 4시간 동안 진짜 진통의 맛을 봤는데도 자궁문은 겨우 2센티미터밖에 열리지 않았다. 출산하려면 자궁문이 10센티미터는 열려야 한다. 병원에서는 자궁문 열리는 속도가 너무 느려 유도제를 써보자고 했다. 그러면 지금 느끼는 통증보다 2배는 더 아플 수 있고, 그럼에도 진행 상황이 느리다면 최악의 경우 아기는 내일 나올 수도 있다고 했다. 그때가 아침 10시도 안 됐을 때였다.
더 큰 문제는 이토록 죽을 듯이 아픈데 무통주사는 오늘 놔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날이 일요일이었는데 전공의 파업 여파로 마취과 의료진 인력이 부족해 주말에는 수술이 아닌 한 무통주사를 못 놔준다는 것이다. 그 얘기까지 들으니 더 이상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그럼 수술할게요. 빨리요, 빨리."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러자 병원에서는 너무 빨리 제왕절개를 결정하는 것 같다고, 자연분만을 시도해 보자며 엄마와 아기를 위해 최대한 도와주겠다고 계속 나를 설득했다. 조금 덜 아팠다면 든든한 말로 들렸겠지만, 그때는 정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냥 빨리 수술요. 제발요. 못 버틸 거 같아요." 또다시 나를 설득하려 한다면 화가 날 것만 같았다. 그때 남편이 "수술할게요."라고 단호하게 말하자 결국 수술이 결정됐다.
수술실에 들어가자마자 하반신 마취부터 했다. 요즘엔 산모가 출산 후 바로 아기와 만날 수 있도록 우선 하반신 마취만 하고, 출산 후 수면 마취한다. 수술실에 누워 몸을 웅크린 채 마취약이 얼른 몸에 퍼지길, 그래서 이 어마무시한 통증이 빨리 사라지길 간절히 바랐다. 마취약이 서서히 들어가더니 죽겠다 싶었던 통증이 어느새 가라앉았고 이성이 찾아왔다. 그제야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울아기, 엄마가 고통을 못 참아 제왕절개를 하는구나. 미안하다.' 수술하는 내내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옆에 있던 간호사가 내 손을 잡아주며 흐르는 눈물을 연신 닦아줬다.
우느라 정신없는 와중에 배를 손으로 꾹 누르는 느낌이 나면서 뭔가 쏙 빠지더니 이내 "응애"하는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내 안에 있던 작은 우리 아기, 드디어 건강하게 세상 밖으로 나왔구나' 40주간 긴 여정, 미션 클리어 했다는 생각에 오열했고 이내 마취약에 취해 잠이 들었다.
"아기를 품고 건강하게 출산한다는 것 자체로 대단한 일은 없다"
제왕절개 수술 후 몸을 회복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내 경우 이 통증은 자연분만에 비하면 충분히 견딜 만했다. 물론 사람마다 느끼는 게 다르기 때문에 절대 일반화해선 안 된다. 다만 출산 후 '굳이 그 어마무시한 고통을 겪을 필요는 없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분만 할 거야?", "자연분만해야지.", "자연분만이 산모와 아이에게 좋잖아." 이런 얘기들. 누구나 건넬 수 있는 가벼운 말 같지만, 받아들이는 산모에겐 자연분만을 해야만 한다는 압박이 될 수 있다. 출산을 앞두고 자연분만 진통이 두렵다고 하자 남편은 "제왕절개 하고 싶으면 해도 괜찮아."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남편도 내가 자연분만하길 원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자연분만을 시도하다 제왕절개로 아기를 낳아서인지, 출산 후 가족들은 연신 "괜찮다."며 날 위로했다. 괜찮지 않을 이유가 없기 때문에 굳이 괜찮다고 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자연분만에 실패해 어쩔 수 없이 제왕절개를 한 사람이 돼버린 것 같았다. 내가 자연분만을 원했는데 못한 걸로 생각해 건넨 말일 수 있지만, 반대로 제왕절개하려다 자연분만을 했다고 해도 '괜찮다'라는 말이 나올까. 그때는 '잘했다'는 말이 나오지 않을까. 오히려 난 진통을 오래 하지 않고 빠르게 제왕절개를 결정해 참 잘했다고 생각했고, 처음부터 제왕절개를 선택했다면 겪지 않아도 될 자연분만 고통을 구태여 겪었구나 생각했다.
자연분만과 제왕절개. 어느 것이 더 좋고 나쁘고로 나눌 수 없는, 장단점이 서로 다른 분만 방법이다. 그럼에도 주변에선 아주 자연스럽게 자연분만을 권한다. 때론 그게 더 낫다며 설득한다. 나 역시도 임신 기간 동안 '아기를 위해 자연분만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기를 낳는 건 산모다. 출산 고통은 오직 산모가 겪고, 그건 누가 대신 해줄 수도 없는 일이다. 분만 방법은 산모가 전적으로 결정해야 하는 게 맞다. 또 산모의 선택은 그게 무엇이든 존중받아야 한다. 40주 동안 아기를 품고 건강하게 출산한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 대단한 일은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