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되어보니 알게 된 것들(1)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일 거야."
막달이 되자 유독 힘들어하는 내게 엄마는 말했다. 몸은 무겁고 가슴은 답답하고 소화력은 달리고, 출산에 대한 두려움까지 몰려와 결코 쉽지 않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아니 버티고 있었다. 그런 내게 엄마는 삼십 년도 더 된, 나를 처음 품에 안던 순간을 떠올리며 당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해 줬다. 280일, 임신 기간 느꼈던 모든 고달픔이 아기를 낳는 순간 다 잊힐 것이며 심지어 아기를 품에 안으면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은 엄청난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 좀만 참고 견뎌보자고.
"정말 그 정도로 행복하다고?"
"그래, 그렇다니까."
출산 예정일을 하루 앞두고 진통이 시작돼 다음 날 제왕절개로 아기를 낳았다. 수술 시 하반신만 마취해 뱃속에서 아기가 나온 순간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응애" 하는 아기의 울음소리를 듣는 순간, 울음이 터져 나왔다. 이 울음은 280일이라는 길고 긴 레이스를 무사히 완주해 드디어 아기를 만났다는 안도의 울음이자 머릿속으로 수백 번 그렸던, 아기를 만나는 기적 같은 순간 감정이 벅차올라 나온 울음이었다.
행복하고 설렜다. 이 작고 소중한 아기를 위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제왕절개 다음 날, 밤새 보고 싶었던 아기를 만나기 위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신생아실에 다녀왔다. 수술 후 처음 몸을 일으켜 세우려니 아주 미세한 움직임에도 수술 부위가 타들어가는 것처럼 아팠다. 고작 여기서 저기인데 침대 난간에 걸터앉기까지 무려 30분이나 걸렸다. 엄청난 통증을 뒤로하고 몸을 움직여 한걸음 한걸음 내디뎠던 것은 엄마로서의 강한 의지였다.
그렇지만 출산 후 내가 느낀 감정은 엄마가 말해줬던,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은 행복' 그것은 아니었다.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행복이란 그 어느 것도 부러울 것 없을 때, 더할 나위 없는 완전한 행복과 만족을 느낄 때 쓸 수 있는 말인 것 같다. 하지만 아기를 낳는 순간 행복, 설렘뿐 아니라 걱정, 두려움도 동시에 찾아왔다. 또 수술 후 밑이 축축하고 찝찝한 데다 수술 부위는 불에 타는 듯 아프니 내 몸이 만신창이가 된 것 같았다. 이 몸이 임신 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회복에 대한 막막함도 있었다.
'나는 이러한데, 우리 엄마는 나를 품에 안는 순간 그 무엇도 부러울 것 없는 세상 가장 큰 행복과 만족을 느꼈구나. 나는 엄마에게 그런 존재였구나.'
"세상을 다 가진 기분, 알게 해 줘서 고마워 아가야."
엄마가 된 지 겨우 며칠 만에 그 어마어마한 모성애가 다 생길 수는 없는 법이다. 다행히도 아기와 함께 하는 시간이 쌓이고 이름만 엄마가 아닌 진짜 엄마가 되어가며, 그때 엄마가 내게 해줬던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어렴풋이 깨닫고 있다.
새벽에 "으앵"하고 아기 우는 소리에 잠이 깨면 천근만근 몸을 이끌고 아기에게 달려간다. 그렇게 울다 내 품에서 잠든 아기를 보고 있으면 몸은 힘들어 얼른 눕고 싶은데 그 모습이 너무 예뻐 나도 모르게 아기에게 얼굴을 비빈다. 어쩌다 낸 나의 소리나 우연히 지은 내 표정에 아기가 까르르 웃을 때면 어떻게든 그 소리와 표정을 찾아내 반복하며 아기를 웃기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아기가 웃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 무엇도 부러울 것 없는 세상 가장 큰 행복과 만족'이란 게 바로 이것이구나 싶다.
살림에 영 흥미를 못 느끼고 귀찮아만 했던 내가 우리 아기 이유식 만들 때는 설렌다. 얼마나 잘 먹어줄지, 맛있어할지 궁금하고 기대하며 요리하는 나를 발견한다. 맛있다고 또 달라며 입을 쩍 벌리는 모습에 깔깔깔 웃으며 나도 모르게 휴대폰 카메라를 켠다. 귀엽고 예쁜 우리 아기 모습 잊지 말자, 간직하자 매일 다짐한다. 고요히 자는 아기를 보면서 '이 작고 소중한 천사가 어떻게 내 뱃속에 있었을까, 엄마에게 와줘서 정말로 고맙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저 건강하게 내 곁에 와준 것만으로 신통방통하고 기특해 마음이 흐뭇해진다.
엄마가 말한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란 게 어떤 것인지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아기를 낳는 순간 저절로 생길 줄 알았던 모성애는 아기와 함께 하는 시간이 쌓일수록 더 짙어진다. 나는 그렇게 엄마가 되고, 엄마를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