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모성애, 그게 뭔가요"
나는 T형 인간이다. 감성적이기보다 이성적인 면이 강하다. 입덧이 극심했을 때 모성애는커녕 언제쯤 이 고통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을까, 거기에 온 신경을 몰두했다. 산부인과 검진을 갈 때마다 '입덧 때문에 죽을 거 같아요'라는 말에 의사는 '입덧을 한다는 건 아기가 잘 자라고 있다는 증거니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말라'라고 했는데 그 말이 도통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럼 그냥 버티는 수밖에 없는 것인가'라는 반문만 떠오를 뿐이었다.
아기의 태명은 '뚜니'였다. 남편과 나의 애칭에서 따온 이름인데, 남편은 내가 임신하기 전부터 아기가 생기면 태명을 '뚜니'로 하자고 얘기해 왔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뱃속의 태아를 뚜니라고 불렀다. 감성이 발달한 F형 인간 남편은 나와 달리 "뚜니야~ 아빠야" 하며 매일 뱃속 아기에게 인사했고, 아기를 그리워하며 기다렸다. 또 뚜니만 생각하면 매일 울컥한다고 했는데 나는 그 말에 '아, 그런 감정을 느낄 수도 있구나' 생각했다.
내가 아기의 존재를 생각하는 유일한 순간은 병원에서 초음파 할 때였다. 초음파 속 뚜니가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아, 내 배 속에 아기가 있긴 있구나' 새삼 생각했다. 어떤 부모들은 태아의 심장 소리를 들으면 울컥한다고 하던데, 나는 아기 심장 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도 '아, 심장이 엄청 빨리 뛰는구나' 했을 뿐 딱히 감정의 변화는 없었다. 반면 남편은 뚜니의 심장 소리를 듣고 눈물이 나오려는 걸 꾹 참았다고 했다. 그 말에 "에? 눈물까지 흘린다고?"했던 사람이 바로 나다.
임신만 하면 저절로 모성애가 생기는 줄 알았다. 뱃속 아기가 애틋하고 기다려지고 생각만 해도 눈물 날 것 같은, 그런 이상적인 모성애는 드라마 속 이야기일 뿐 내겐 없었다. 아무리 입덧이 심하다고 해도 뱃속 아기보다 임신의 고달픔에 더 몰두하는 스스로를 보고 나는 원래 모성애가 없는 사람인가, 아직 아기를 낳기 전이라 스스로 엄마라는 걸 체감하지 못해 이러는가, 아니면 그냥 내가 이토록 이기적인 사람인가, 헷갈렸다. 임신 중 호르몬의 변화는 감정과 생각을 극단적으로 이끈다. 모성애 없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아직 엄마가 될 준비도 안 됐는데 덜컥 임신부터 했구나'라는 후회어린 생각이 몰려와 괴로웠다.
그랬던 나도 모성애는 있었다
내가 모성애를 느끼기 시작한 건 입덧이 조금 가라앉고, 아기의 존재를 초음파가 아닌 몸으로 확인하면서부터다. 태동을 느끼면서 뱃속에 있는 아기의 존재가 크고 또렷하게 다가왔다. 정확히 5개월 무렵, 여느 날과 다름없이 왼쪽으로 누워있는데 갑자기 뱃속에 뭔가 꼬물거리는 느낌이 확 느껴졌다. 처음엔 태동이라 생각 못하고 '이 느낌은 뭐지?' 싶었다. 그 순간 또다시 꼬물거리는 느낌이 한번 더 느껴졌고 그때 '아, 이게 바로 태동이구나' 직감했다.
태동을 느끼는 횟수가 잦아지면서 자연스럽게 뱃속 태아에 대한 애틋함도 커졌다. 태동이 너무 안 느껴졌던 어느 날, 가슴을 졸이며 동네 산부인과를 찾은 적도 있다. 분명 병원에 오기 전까지 움직임 하나 못 느꼈는데 초음파 속 뚜니는 두 팔과 두 다리를 열심히 휘적이고 입술도 귀엽게 오물거리고 있었다. 뚜니가 건강하게 잘 있다는 걸 확인한 후 가슴을 쓸어내리며 집에 왔다.
그날 이후로 태동에 민감해졌다. 오늘은 얼마나 움직일까, 어제와 뭐가 달라졌나 관심 두고 최대한 아기를 잘 느껴보려 했다. 뱃속에 있는 우리 아기가 나와 함께 건강하게 숨 쉬어주기를 매일 기도했고, 아기를 건강하게 출산하는 것 외엔 다른 바람도 목표도 없었다.
40주에 가까워질수록 아기의 태동은 더욱 크게 느껴졌다. 부푼 배가 울룩불룩 육안으로 태동을 볼 수 있을 만큼 움직였고, 어떤 날은 움직임이 너무 크고 거세 뱃가죽이 욱신거리기도 했다. 그럴 때면 배에 대고 오르골을 들려줬다. 출산을 앞두고 출장에 갔던 남편이 뚜니의 선물이라며 사온, 반짝반짝 작은 별 노래가 아름답게 연주되는 오르골이었다. 그러면 마치 노랫소리에 집중하는 것처럼 아기의 움직임은 그새 고요해지곤 했다. '뱃속에 있는 우리 아가와 내가 소통을 하고 있구나.'
모성애는 아기의 존재를 느끼고 함께 하는 시간이 쌓일수록 두터워진다. 어제보다 오늘 더, 오늘보다 내일 더 아기에 대한 마음이 커지고 깊어질 거라 확신한다.
"뚜니야, 너를 품은 건 280일이지만 너의 존재를 느끼고 너의 소중함을 알고 애틋함을 마음에 새긴 건 우리 아기가 '엄마, 나야'하고 인사해 줬던 그때부터였어. 엄마는 이렇게 너와 함께 하는 시간이 쌓일수록 너에 대한 마음도 더 깊어질거야. 넘치도록 많은 사랑을 줄게 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