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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의뚜니 Oct 27. 2024

그땐 몰랐어요 엄마의 그 위대한 마음을

엄마가 되어보니 알게 된 것들(2)

"임산부는 딸인데, 사위를 더 신경 쓰는 거 아니야?"


엄마가 되어보니 엄마를 더 잘 알게 됐다. 3월 초 출산을 앞두고 1월 말 출산휴가에 들어갔다. 몸이 무거워 출퇴근이 힘들었고 자리에 오래 앉아 일하는 게 부담스러워 조금 일찍 휴직을 신청했다. 야속하지만 출산을 앞둔 1~3월은 남편이 가장 바쁜 시기다. 극악무도한 업무량으로 매일 야근에 주말 출근까지 해야 한다. 배가 많이 나와 몸도 무거운데 호르몬 영향으로 눈물이 많아진 딸이 홀로 외로이 막달을 보낼까 걱정이 된 엄마는 한 달간 우리 집에 올라와 나와 함께 생활해 주셨다. 엄마 덕분에 남편이 없이도 심심하지 않은 행복한 막달을 보낼 수 있었다. 


엄마와의 동거는 아주 오랜만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줄곧 서울에 올라와 생활한 터라 엄마와 떨어져 산 지도 어느새 14년이 훌쩍 넘었다. 남편은 밤 12시 넘어 퇴근하는 게 일상이던 때라 엄마와 단둘이 침대에 누워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다 잠들곤 했다. 다음 날에는 맛있는 음식을 해 먹고 가끔 집 앞 카페에 가거나 아기용품을 사러 쇼핑몰에 가기도 했다. 또 머리를 하러 미용실도 같이 갔었고 엄마가 필요한 운동화와 안경을 사러 나가기도 했다. 


더 많은 것을 하고 싶었고 또 해주고 싶었는데 몸이 무거워 체력이 달려 한계가 있었다. 내가 운전이라도 했으면 서울 이곳저곳을 같이 다니며 구경하고 좋았을 텐데 면허는 있지만 운전은 못하는 못난 딸이라 그 점이 가장 아쉬웠다. 


엄마와 사이좋게 지내도 아까울 시간인데, 남편 문제로 자꾸만 갈등이 생겼다. 엄마는 분명 나를 위해 서울로 올라왔는데 나와 생활하는 그 한 달 동안 사위 아침 챙기기에 여념이 없으셨다. 집에서 아침 한 끼 먹고 나가면 새벽에 들어오는 사위가 안쓰러우니 그러는가 보다 했는데 하루종일 사위 아침밥은 뭘 해줘야 할까 고민하는 모습을 옆에서 보고 있자니 괜히 짜증이 났다. 엄마는 분명 날 챙겨주러 온 건데 왜 이렇게 사위 아침에 신경을 쓰는 건지, 어제 먹은 걸 또 먹을 수 있는 건데 매일 새로운 요리를 해주려는 엄마 때문에 마음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이 감정은 정확히 말하면 엄마에 대한 서운함과 미안함이었다. 새벽바람에 일어나 사위 아침밥을 준비하느라 분주한 엄마에게 미안했고, 나보다도 사위를 더 신경 쓰는 것 같아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잠이 쏟아지는 만삭 임산부라 아침잠도 오래 자고 싶었지만, 엄마 혼자서 부엌일 하는 걸 두고 볼 수 없었다. 새벽에 엄마가 깨면 함께 일어나 남편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게 어느새 습관이 됐다. 그러다 보니 괜히 남편에 대한 미운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사실 남편은 아무런 잘못이 없지만, 엄마가 괜히 사위 눈치를 보는 것 같았고 그래서 무리하게 아침밥을 신경 써주는 게 아닌가 싶었다. 일이 바빠 힘든 건 남편이라는 걸 알면서도 괜히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출산하면서 엄마와의 동고동락도 끝났다. 엄마는 다시 고향으로 내려갔다. 남편이 출퇴근하며 먹을 수 있는 밑반찬과 찌개를 한가득 해놓고서.


 

엄마는 다 뜻이 있었구나... 엄마가 되고 그 위대함을 느낀다


아기를 낳고 키우다 보니 그때 엄마가 왜 그렇게 사위 아침밥에 온마음을 썼는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사위 사랑은 장모라더니 우리 엄마가 그런 격인가 싶었는데, 그보다는 훨씬 더 깊은 나에 대한 사랑이었던 거 같다. 엄마가 하지 않으면 만삭인 내가 해야 할 일, 딸의 남편 밥을 챙겨주는 일을 엄마는 내 대신하고 계셨던 것이다. 


우리 세대보다 훨씬 보수적인 환경 속 평생을 가정주부로만 사셨던 엄마에게 아내가 남편을 위해 아침밥을 차려내는 일은 너무나 당연했고 빼먹지 말고 해야 할 아내의 역할이었다. 엄마는 나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그렇게 분주한 새벽을 보내고 있었던 게 아닌지.

 

생각해 보면 엄마는 늘 그랬다. 내가 임신했다는 말에 "우리 딸, 이제 많이 힘들겠구나." 기쁨보다 걱정을 먼저 하셨고 아기를 낳고 "엄마, 우리 아들 예쁘지?"라고 말하니 "당연하지, 우리 딸이 낳은 아들인데."라며 그냥 내 아들이라서 무조건 예쁘다고 해주셨다.

 

아기를 낳고 엄마가 되어보니, 나에 대한 엄마의 깊은 사랑을 더 깨닫게 된다. 내가 우리 아기를 정성으로 품고 손꼽아 기다려왔듯 우리 엄마도 나를 그렇게 품고 기다렸겠지. 아기를 품에 안았던 순간 행복한 눈물을 흘리며 이 아기를 위해서라면 뭐든 다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처럼 우리 엄마도 나를 보며 그런 다짐을 하셨겠지. 아들에 대한 사랑이 커질수록 엄마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 그리고 그 위대함을 느낀다.

 

여전히 엄마는 육아휴직 중인 딸을 걱정한다. 당신 딸이 아기를 보느라 밤잠은 설치지 않았는지, 새벽 수유가 힘들진 않은지, 끼니는 제때 잘 챙겨 먹고 있는지, 남편이 육아를 많이 도와주고 있는지 늘 걱정하고 궁금해하신다. 


우리 집에 올 때마다 두 손 무겁게 음식을 바리바리 싸다 주시고, 남편의 등을 한 번 더 두드려주신다. 아기 보느라 끼니도 제때 못 챙겨 먹을 딸 걱정에 먹기 편한 음식을 만들어오시는 것이고, 나와 함께 사는 남편에게 우리 딸 잘 부탁한다는 진심의 손길일 것이다. 존재만으로 나를 사랑해 주는 부모님의 사랑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으리라, 감사함을 느끼는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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