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덧하다 소변까지 주르륵... 사람 꼴로 살고 싶어요
나에겐 '입덧'에 대해 환상이 있었다. '입덧'이란 말을 떠올리면 한밤 중 남편에게 먹고 싶은 음식을 사다 달라고 부탁하는 장면이 가장 먼저 그려졌다. 하지만 나의 입덧엔 그런 장면이 없었다. 딱히 먹고 싶은 음식이 없었고, 거의 대부분의 음식을 먹지 못하니 그나마 먹을 만한 것을 겨우겨우 떠올려야 했다.
임신하기 전까진 입덧에 대해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이토록 무지했는지도. 그저 드라마에서 임신한 주인공이 음식 냄새를 맡고 혹은 냉장고 문을 열다 "우웩!" 하며 헛구역질하는 것, 그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었다. 그 주인공은 입덧 때문에 밥 대신 딸기 등 과일을 먹으면 속이 괜찮다던데, 그렇다면 입덧을 하면 비싸서 못 먹는 과일을 밥처럼 마음껏 먹을 수 있겠구나 철없는 생각도 잠깐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헛웃음도 안 나오는 기막힌 환상이다.
입덧은 기본적으로 '속 울렁거림' 증상을 동반하는데 뭘 먹으면 토하는 '토덧', 먹지 않으면 속이 울렁거려 살 수 없는 '먹덧'이 있다. 그중 내가 겪은 건 '토덧'이었다. 하루 종일 숙취보다 더 심하게 속이 울렁거려 음식을 입에 댈 수도 없는 생지옥 통증이었다.
처음엔 후각, 미각의 문제인가 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잃어버린 후각, 미각 때문에 입맛이 없는 것인가 싶었지만 그냥 입맛이 없는 거랑 음식에 대한 거부 반응이 생기는 건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배가 너무 고픈데 뭐라도 한입 먹으면 속이 금세 울렁거리고 체한 느낌이 나니 온몸이 저절로 음식을 거부했다. 그럼에도 배가 너무 고파 뭐라도 주워 먹는데 음식 먹는 거 자체가 고역이었다. '맛이 없다' 이 문제가 아니라 그냥 몸이 거부했다.
입덧 기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하루 종일 쫄쫄 굶다 마셨던 '딸기우유'다. 며칠 동안 참외 한쪽, 비스킷 하나, 입덧 증상을 완화하는 레몬 캔디를 먹으며 연명했는데 이렇게 살다 죽겠다 싶어 겨우 생각해 낸 게 시원한 딸기우유였다. 그나마 마실 수 있을 것 같아 늦은 밤 남편에게 사다 달라고 했다. 간신히 한 모금 먹는 순간 숙취로 인한 고통처럼 울렁거림과 체한 느낌이 확 올라와 그대로 뱉어버렸다. 얼마나 서러웠던지, '내가 딸기우유 한 모금도 못 마시는 신세가 되었구나'라는 생각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하루종일 먹은 것도 없는데 헛구역질이 나더니 위액을 모두 쏟아냈던 적도 있다. 뱉어낼 게 없으니 위액까지 나오는구나 싶었고 토하는 그 순간 온몸에 힘이 들어가니 나도 모르게 소변이 주르륵 나왔다. 서글픈 마음에 울음이 터져버렸다.
도통 뭘 먹질 못하니 몸무게는 일주일 만에 3킬로그램이나 빠졌다. 결혼식 때 기를 쓰고 뺐던 그 몸무게가 저절로 돌아온 것이다. 더 고통스러운 건 하루 종일 거의 먹은 게 없으니 뱃가죽이 등에 붙는다는 말이 뭔지 실감했고 그 와중에 속이 너무나 쓰려 잠도 안 온다는 것이었다. 그나마 잠이라도 자면 고통을 잊겠는데 속이 아파 이리 뒤척이고 저리 뒤척이느라 잠을 잘 수 없었다.
어느 날은 웬일인지 유부초밥 몇 개가 꾸역꾸역 속으로 들어갔다. 맛있게 먹어서 만족스러운 것이 아니고, 그저 빈 속을 채웠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끼며 소파에 앉아있었다. '오늘 밤은 속 쓰림이 덜하겠지' 싶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남편이 냉장고 문을 열고 뭘 찾고 있었는데, 냄새가 역해 문을 닫으라고 말하려던 찰나 갑자기 "우웩" 하더니 거실 한복판에 토를 쏟아냈다.
거실에 토를 했다는 것보다 얼마 만에 채운 배인데 이렇게 허무하게 다시 빈속이 됐다는 게 더 환장할 노릇이었다. '하, 이걸 게워내다니' 다시 빈속으로 돌아가 배고픔과 속 쓰림과 울렁거림의 컬래버레이션을 겪어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임신은 분명 축복받아야 할 일이고 행복한 일임이 분명하지만, 내게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고통으로 느껴졌다. 고통이 심할수록 우울함은 더해졌다. 호르몬 탓인지 눈물도 많아져 아침에 일어나 울기를 반복했다. '오늘 하루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 막막함에 눈물부터 쏟아진 것이다.
서러웠다. 사람이지만 사람 꼴로 살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밥을 먹질 못하니 온몸에 기운이 없고 기운이 없으니 씻을 엄두가 안 났다. 샤워하러 들어갔다가 현기증이 나서 도로 나오길 반복하니 집에 있는 동안 폐인이 따로 없었다. 여자도 아닌, 엄마도 아닌, 사람도 아닌 제3의 생명체가 되어 무기력함이 몰려왔다.
이것이 바로 '임신'이라니... 다 알아버렸는데 또 할 수 있을까
못 먹는 것만큼 서러웠던 건 바닥난 체력이었다. 평소 같으면 몇십 분 걷는 건 일도 아니지만, 임신 후 계단 오르기, 10분 이상 걷기, 오래 서있기는 정말 고역이었다. 많지도 않은 지하철 계단을 오르는 중 갑자기 현기증이 나 주저앉은 적도 있고, 10분 이상 걷다가 온몸에 기운이 빠져나간 듯 휘청여 길 한복판에 앉아 쉬기도 했다. 임신 전과 후 체력은 1/10 토막이 나 기꺼이 해내던 것들은 아주 힘겹게 해내야 했다.
어느 날 취재 현장에 갔다가 '이러다 정말 쓰러지겠다' 싶었던 적이 있다. 지하철에서 계속 서있다가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앉지 못하고 곧바로 취재에 나섰던 게 문제였다. 갑자기 현기증이 나면서 속이 답답해져 조금만 더 걸으면 쓰러질 것 같아 서둘러 주변에 의자를 찾아봤지만 마땅한 게 없었다. 있다고 한들 다른 기자들은 모두 현장을 둘러보느라 바쁜데 나만 가만히 앉아 있는 게 이상하게 보일까 두려웠다.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하기 위해 얼른 화장실을 찾았고 비어있는 칸에 조용히 들어가 10분가량을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쪼그리고 앉는 게 산모에게 안 좋은 자세라고 들었는데, 그런 걸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지금 당장 쓰러질 것만 같은 몸을 어떻게 해서든 원상태로 돌려놔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동안 쪼그리고 앉아있으면 이상하게 체력이 보충된다. 배터리 충전하는 것도 아니고, 이 무슨 당황스러운 일인가.
쪼그리고 앉아있던 그때 문득 든 생각은 '내가 또 임신이란 걸 할 수 있을까.'였다. 입덧 그리고 임신, 그 고달픔을 지나오며 자녀계획은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게 됐다. 무조건 외동이다. 모르면 모르는 채로 임신을 겪겠지만, 그 어마무시한 것을 알게 된 이상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임신은 그렇게 나를 바꿔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