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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Feb 29. 2024

놓아주는 것일까, 희미해지는 것일까

제3장. 자살 유가족으로 세상에 나아가며

떠나간 이들을 위하여, 남겨진 이들에게

초안, 날 것 그대로의 문장들



오빠. 오빠 이름이 유독 많이 보이는 동네야. 처음에는 간판에 적힌 오빠의 이름을 보며 너무 마음이 아팠어. 그런데 이제는, 그 간판들을 무덤덤하게 보는 것 같아. 오빠를 놓아주는 걸까, 아니면 희미해지는 걸까.

놓아주는 것일까, 희미해지는 것일까


매달 꿈에 나왔던 오빠.

 내 핸드폰 메모장에는 ‘오빠’라는 폴더가 있다. 꿈에 나온 오빠가 담긴 기록들. 오빠에 대한 거라면 한 줌의 기억조차 흘려보내기가 싫었다. 그래서 오빠가 꿈에 나온 날이면 일어나자마자 정신없이 메모장을 켜서 꿈을 모조리 적어 내렸다. 그렇게 내 핸드폰에는 오빠가 나온 꿈이 담긴 25개의 기록들이 있다.

 오빠가 세상의 곁을 떠난 2020년 11월부터 22년 5월까지, 오빠는 매달 내 꿈에 나왔다. 다른 가족들 꿈에는 얼굴 한 번 보여주지 않았으면서, 내 꿈에는 꼬박꼬박 나타나줬다. 2020년 11월부터 2021년까지 꿨던 13개의 꿈들의 스토리는 비슷했다. 우리의 곁을 떠난 오빠가 시간이 오래 지난 뒤 다시 돌아오는 내용이었다. 오빠는 때로는 범죄자였고, 사이비 종교에 빠진 사람이었고, 돌연 실종된 사람이었고, 그리고 때로는 멀리 출장을 나갔다가 돌아온 사람이었다. 상황은 가지각색이었지만, 그리웠던 오빠가 돌아오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바짝 곯은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장발로 나타나기도 하고, 잔뜩 매서운 분위기를 풍기며 나타나기도 하고. 나는 다양한 모습으로 찾아온 오빠에게 때로는 활짝 웃으면서, 때로는 엉엉 울면서 안겼다. 어떤 모습으로든 돌아와 줘서 정말 고맙다고. 다시는 어디 가지 말라고. 너무 보고 싶었다고. 오빠 품에 안겨본 적이 있었나. 현실에서는 기억도 안 날만큼 가물가물한 품이지만, 꿈속에서의 오빠 품은 너무나도 따뜻했다. 이 품이라면, 잠겨서 죽어도 좋을 만큼.

 오빠가 죽고 나서, 직장 생활을 시작하기 전까진 매일매일 오빠 사진을 꺼내보았다. 내 옆에는 없었지만, 마음속에는 언제나 함께였다. 내 일상 그 어디에도 오빠가 묻어 나오지 않는 곳이 없었다. 하지만, 타지로 이사를 가고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는 그전만큼 오빠를 마음에 품고 살지 못했다. 직장인으로서 첫 발을 내딛는 것, 낯선 지역에서 낯선 장소에서 낯선 이들 속에서 낯선 업무를 하는 것은 정말이지 녹록지 않았다. 혼자였던 수험생활 때와는 달리, 직장에서는 많게는 수십 명의 사람들을 만났다. 온전히 내 마음의 소리에만 집중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 사회에 나가기 시작하면서 오빠는 점점 내 마음속에서 흐려져 갔다.


 그래도 놓치지 않았던 건, 출근길과 퇴근길 버스에서 오빠 사진을 멍하니 쳐다보며 오빠에게 마음속으로 말을 거는 것이었다. 하도 많이 꺼내보아서 너덜너덜해진 카드지갑 속 오빠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오빠와 같은 직렬은 아니었지만, 같은 직업의 길을 걸어가고 있었기에 묻고 싶은 게 많았다. 오빠는, 오빠는 이런 상황에 어떻게 했어? 오빠도 이렇게 힘들었어? 그나마 오빠가 우리 집에서 나랑 성향이 제일 비슷하잖아. 오빠도, 많이 힘들었겠다. 상처도 많이 받았겠지. 현명한 오빠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했을까.

 그래서 그랬을까. 헤어졌던 오빠와의 재회가 주된 내용이었던 지난 꿈들과는 달리, 2022년의 꿈들은 내가 힘들어하는 상황에 오빠가 나타나 도움을 주는 내용들이었다. 내가 근무하는 곳의 상급자로 나와서 내가 힘들어하는 일들을 묵묵히 대신해주기도 하고, 직장에서는 이렇게 해라, 경제적인 준비는 이렇게 해라, 여러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마치, 오빠가 하늘에서 나를 지켜보며 힘든 상황들로부터 나를 지켜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괜히 힘이 났다. 나를 도와주는 오빠가 있다고. 언제나 나를 지켜봐 주는 오빠가 있다고. 처음 내딛는 사회생활은 녹록지 않았고 가시밭길 투성이었지만, 오빠의 존재 덕에 꿋꿋이 걸어 나갈 수 있었다.


 그러다, 그때 당시 사귀던 남자친구의 꿈에 나타난 걸 마지막으로 오빠는 내 꿈에 발길을 끊었다. 날씨가 무척이나 좋은 날이었다고 했다. 한강에서 오빠는 단발머리를 한 채 핑크색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은 여자와 손을 꼭 붙잡은 채 환하게 웃고 있었다고 했다. 주변에는 사람들이 많았고, 기분 좋은 왁자지껄함 속에서 오빠는 너무 행복해 보였다고 했다. 그런 오빠가 다가오더니, 사진을 한 장 찍어달라고 했단다. 사진을 찍어주는 그 사람마저 기분이 좋아질 만한 함박미소를 짓고 있는 오빠와 주변 사람들이 잘 담길 수 있게, 정성스럽게 사진을 찍어줬단다. 다시 핸드폰을 돌려주려는데 그 사람의 손을 꼭 잡으면서 ‘나 알죠?’하고 장난스럽게 웃었다고 했다. 아이보리색 니트에 검은색 블레이저를 입은 오빠, 날씨 좋은 5월의 한강, 각자 행복한 미소를 띠고 있는 주변 사람들까지. 보고 있는 내내 자기도 같이 행복했다던 그 꿈속 오빠.

 그 꿈을 이후로는, 드물게 꿈에 나타났다. 내 꿈에서는 사라졌지만 그 뒤로 가족들 꿈에 종종 나타났다고 했다. 그것도 가족들이 너무 힘들어할 때, 이 쪽으로 가는 거 아니라고. 자기가 안내해 줄 테니까 자기만 따라오라고 길을 안내해 주며.


놓아주는 것일까, 희미해지는 것일까.

 오빠가 내 마음속에서 차지하는 부피가 줄어드는 건 언제나 무서운 일이었다. 아무리 꼭 움켜쥐고 있어도, 시간이 흐를수록 손가락 사이로 빠져가는 모래알 같았다. 그렇게 서서히 내 손안에 빠져나가다가, 어느 순간 손 안이 텅 비어버릴까 두려웠다. 오빠가 없는 일상이 익숙해지고, 오빠가 남기고 간 추억마저 사라져 버릴까 두려웠다. 오빠를 내 몸에 지니고 다니면 오빠를 조금 더 자주, 그리고 오래 추억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추억하고 기억한다는 의미의 憶(기억할 억) 자에 오빠의 이름의 의미를 담은 輝(빛날 휘)를 담은, 오빠를 기억하고 추억한다는 의미의 한자를 새겨 넣은 반지를 하고 다녔다. 처음엔 그 반지를 수시로 보고, 오빠를 추억했다. 하지만 그 반지마저도 익숙해져 버렸다. 오른손 두 번째 손가락에는 언제나 반지가 있었지만, 그것을 보면서 오빠를 추억하는 횟수가 점차 줄어들었다. 오빠를 한 번도 떠올리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그럴수록 두려웠다. 이러다가 정말, 오빠를 잊어버리면 어떻게 하지. 오빠가 없는 일상이 너무나도 당연해져 버리면 어떻게 하지.

 손 안에서 빠져나가는 오빠의 존재감을 보며 혼란스러웠다. 남은 자들이 고인을 계속 붙잡고 있으면, 고인이 승천하지 못하고 이승에서 떠돌게 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걸 생각하면, 나는 오빠를 천천히 놓아주고 있는 것이었다. 오빠가 더 이상 이승에 떠돌지 않고 영혼들이 가야 하는 세상으로 갈 수 있도록. 그러다가도, 이렇게 놓아주다 보면 오빠를 완전히 잊고 살아갈 날이 오는 건 아닌가, 내 삶에 찾아와 나와 함께 해주었던 오빠의 존재가 희미해져 버리는 건 아닌가, 두려웠다. 오빠를 생각하는 시간이 짧아질수록, 오빠를 생각하는 횟수가 줄어들수록 혼란스러웠다. 놓아주는 건지, 희미해지는 건지 답을 내릴 수 없었다. 혼란스러운 시간이 길어질수록 죄책감만 늘어났다. 오빠에게 미안했다. 그래서, 차마 오빠를 떠올릴 수도, 입에 담을 수도 없었다.

Remember me

 그렇게 갈피를 못 잡고 헤매고 있을 때, 문득 애니메이션 영화 속에 녹아있는 외국 문화에 대해 교환학생들과 인터뷰를 했던 과제가 떠올랐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코코’에 대해, 영화 속 배경인 멕시코에서 온 교환학생과 인터뷰를 했었다. 영화를 보면서 신기했던 건, 죽은 자를 추억하는 ‘축제’가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죽은 자를 추억하는 날은 보통 ‘기일’이나 ‘제사’이다. 그날의 분위기는 대게 침울하고 엄숙하다. 고인을 떠올리며 슬퍼하는 게 우리의 ‘고인을 기리는 날’이다. 그러나 멕시코에서 고인을 기리는 날인 ‘죽은 자의 날’은 핼러윈 같은 축제 분위기였다. 이 날이 되면 고인들이 금잔화 다리를 건너 이승으로 건너오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삶은 꿈에 지나지 않으며, 죽음을 통해 진정으로 깨어난다고 믿었던 아즈텍 원주민들의 생각이 반영된 명절이었다.

 이 기억을 떠올리며 지금의 나와 내 마음속의 오빠에 대해 돌이켜봤다. 더 이상 오빠를 만날 수 없다는 마음에 떠나간 오빠를 생각하면 언제나 슬펐다. 하지만 슬픔이라는 감정에 취해 무너져버릴까 두려웠다. 슬픔을 그저 다짐으로 꾹꾹 눌러 담았다. 나는 무너지면 안 된다고. 떠나간 오빠를 지키고, 남겨진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너지면 안 된다고. 슬픔 앞에 단단해져야 한다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렇게 눌러 담는 게 지쳐만 갔다. 지친 나는, 점점 오빠를 밀어내고 있었다.


 내가 정말 오빠를 위한다면, 오빠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은 ‘행복하게 기억해 주는 것’이었다. 그래야 오빠가 내 안에서 편히, 오랫동안 머무를 수 있었다. 너무나 당연하게 받았들었던 ‘떠나가는 이를 슬픔으로 애도하는’ 것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오빠에 대해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도록, 오빠에 대해 즐겁게 추억할 수 있도록. 오빠가 떠나간 빈자리를 보며 슬퍼하기보다는, 오빠가 하늘에서 새롭게 마련한 보금자리를 축복해 주려고 노력했다. 삼십여 년의 시간 동안 우리 가족에게 선물처럼 내려와, 소중한 기억을 만들어준 오빠에게 감사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오빠가 남겨주고 간 그 추억들을 웃으며 추억하려고 부단히도 노력했다.

 물론, 지금도 오빠를 생각하며 슬퍼하고 눈물 흘리는 날이 종종 있다. 하지만 그런 슬픔의 ‘감정’이 올라올 때마다 마음을 다잡곤 한다. 오빠의 존재를 ‘감정’으로 느끼지 말고 ‘기억’으로 추억하자고. 감정은 잠시 머물렀다 사라지는 구름 같은 존재다. 하지만 기억은 우리의 삶에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는 나무이다. 겨울이 찾아와 잎들이 떨어져 가지가 앙상해진다고 해도 단단히 뿌리내린 나무는 다시 봄을 맞이해 꽃을 피운다. 내 마음속에 존재하는 오빠도 때로는 겨울을 맞이해 앙상해지지만, 그 뿌리만 남아있다면 다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그저, 순환하는 것일 뿐, 오빠에 대한 기억은 단단하게 남아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초조한 마음이 점점 가시는 듯했다. 내 삶이 바쁠 때는 내 안의 오빠는 다시 앙상한 가지만 남는 겨울을 맞이할 테다. 눈발이 내리치는 날에는 본연의 모습마저 눈에 가려질 터였다. 하지만, 다시 여유가 생기면 오빠는 다시 내 안에서 봄을 맞이해 추억이라는 꽃을 피울 터였다. 그러다 여름을 맞이해 내 안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뽐낼 것이며, 가을이 되면 때로는 상실감이라는 쓸쓸함이 불고, 그 바람을 맞으며 오빠가 남기고 간 의미는 영글어 탐스런 열매를 맺을 것이다. 내 안에서 순환하며 사계를 맞이할 오빠를 담담한 마음으로 바라보기로 했다.  

 놓아주는 것도, 희미해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마음의 계절에 따라 외형이 바뀌는 것뿐, 오빠는 언제나 내 안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었다. 언젠가 그 나무가 잘린대도, 밑동이 훤히 드러나 버린대도, 오빠와의 추억은 내 안에 단단히 뿌리내려 나를 구성하고 있을 테니. 지금 내가 할 일은 그저 행복했던 오빠를, 오빠와 함께했던 추억을 기억하는 것이었다. 기억이라는 거름을 주며 그 뿌리가 더 튼튼하게 자라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 마음속 사계를 맞이하는 오빠의 모든 계절을 함께하는 것이었다.

오늘의 글은 디즈니 애니메이션 <코코>의 주제곡, <Remember me>의 가사로 끝내고 자 한다.

Remember me,

though I have to say goodbye

나를 기억해 줘,

비록 내가 작별인사를 해야 하지만

Remember me,

don't let it make you cry

기억해 줘,

울지 마

For even if I'm far away,

I hold you in my heart

내가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마음으로는 널 안고 있어

I sing a secret song to you

each night we are apart

우리가 떨어져 있는 매일 밤마다

나는 너에게 비밀의 노래를 불러

Remember me,

though I have to travel far

나를 기억해 줘,

내가 멀리 여행을 가야만 하더라도

Remember me

each time you hear a sad guitar

나를 기억해 줘,

네가 슬픈 기타 소리를 들을 때마다

Know that I'm with you

the only way that I can be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내가 너와 함께 있다는 것을 알아줘


Until you're in my arms again,

remember me

널 다시 품에 안을 수 있을 때까지,

나를 기억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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