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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Mar 07. 2024

오빠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

제4장. 오빠의 자살을 받아들이는 마음가짐(2)

떠나간 이들을 위하여, 남겨진 이들에게

초안, 날 것 그대로의 문장들.

내 삶에 새겨진 오빠의 흔적을 곱씹을수록 후회에 사무쳤던 건, 나는 오빠에게 그 어떤 것도 해주지 않았던 거였어. 정말 아무것도 해준 게 없더라. 그에 반해 오빠는, 알게 모르게 너무 많은 것들을 건네왔었고. 이제는, 이제는 내가 오빠에게 줄 차례야. 오빠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라면 그 어떤 것이라도. 오빠는 그저 받기만 해도 돼. 내가 평생을 갚아도 다 못 갚을 것들을 주었으니.


오빠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


생색을 내지 않던 사람이라서.

 오빠는 아무리 생각해도 살가운 사람은 아니었다. 다정한 사람도 아니었다. 오빠를 떠올렸을 때 바로 생각나는 오빠의 모습은 불퉁했고, 화의 발화점이 낮은 사람이었다. 사람이든, 사람이 아니든 다정한 것들을 좋아하던 나와는 상극이었다. 아니, 상극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천천히 곱씹어보면, 오빠는 천성은 다정한 사람이었다. 아니, 다정보다는 따뜻한 사람이었다. 신경질적이었지만 마음만은 따뜻하던 사람. 그래서 그리도 미워했지만, 결국은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따뜻한 마음을 차가운 말과 행동으로 건네던 사람이었다. 그 차가움을 조금만 견디면, 결국엔 저 밑에 깔린 따뜻함이 차가움을 녹여냈던 사람이었다. 어린 나에게는 그 차가움을 견딜 끈기도, 용기도 없었다. 그래서 알지 못했다. 오빠의 따뜻한 마음을. 오빠가 건넨 마음들 중 그 어느 것 하나 따뜻하지 않은 게 없었지만, 역설적이게도 오빠가 건네던 행동과 말들 중 그 어느 것 하나 차갑지 않은 게 없었다.

 오빠가 떠나고 나니 그 차가움마저 껴안고 싶었다. 오빠의 존재가, 오빠에 대한 기억이 조금이라도 더 내 곁에 머물 수 있다면 그 차가움마저도 기꺼이 견디고 싶었다. 그렇게 오빠의 말과 행동들을 소중하게 마음에 품었다. 오빠의 행동들이 내 마음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 속에 숨겨져 있던 따뜻한 마음이 드러났다. 오빠는, 생색을 내지 않던 사람이었다. 매번 무뚝뚝하고 퉁명스럽게 물어왔다. 뭐 필요한 거 없냐고, 요즘 잘 지내냐고. 그리고는 별거 아닌 것처럼 무심히 본인이 가진 것들을 건넸다. 그저 건네기만 할 뿐, 별다른 말을 하지 않던 사람이었다.

 한 번쯤은 내가 널 위해 이런 것도 해준다며 생색을 낼 법도 한데, 오빠는 언제나 ‘오다 주웠다’식으로 툭 건네고 돌아섰다. 별거 아닌 것처럼 주는 오빠에 나 또한 별거 아닌 것처럼 받곤 했다. 오빠의 마음을 오래 품고 나서야 그가 주던 ‘별거 아닌 것’들의 의미를 알았다. 그가 주던 말도, 마음도, 선물도, 용돈도, 오빠가 주던 것들 중 그 어느 것 하나 별거 아닌 것이 없었다. 그가 떠나자 그가 건넸던 사랑을 알았다. 그의 사랑 방식을 이해하게 되었다. 뒤늦은 후회는 죄책감이 되었다.


 죄책감을 걷어내고자 오히려 볼멘소리를 내었다. 한 번쯤은 생색 좀 내지 그랬어. 한 번쯤은 거드름 좀 피우지 그랬어. 어리석은 나는 보이는 게 전부인 줄 알았어. 나에게 따뜻한 사람은 좋은 사람이고, 나에게 차가운 사람은 나쁜 사람이라며 유치하기 짝이 없는 논리로 세상을 나누었어. 평범하기 그지없는 물건이 ‘선물’이 될 수 있었던 건, 주는 사람의 애정 덕분이라는 걸 몰랐어. 오빠의 사랑을 이해하기에 나는 너무 어렸고, 어리석었던 걸. 그러니까 나보다 어른이었고, 현명했던 오빠는 내게 말해줬어야 하잖아. 내가 널 이만큼 생각한다고, 내가 누릴 것을 포기하며 네게 선물을 주는 것이라고.


관심 없는 사람한테는 하지도 않을 그 잔소리들도, 본인의 시행착오를 막내는 겪지 않길 바라며 해주던 그 조언들도, 동생 잘 챙기라고 언니한테 신신당부하던 그 걱정들도, 알바를 하며 용돈을 벌던 대학생 시절 오빠가 사줬던 그 메이커 운동화도, 다달이 내주던 핸드폰 요금도, 흥청망청 돈을 써대던 내게 보내주던 용돈마저도. 별거 아닌 게 아니었잖아. 나를 향한 소중한 애정들이었잖아. 오빠가 더 좋은 것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고 내게 준 것들이었잖아.  

 사람이 사람을 향한 마음에는, 가격표가 없었다. 그 사랑이 얼마만큼 귀한 건지는 한눈에 가늠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어떤 마음을 주느냐라는 것.

 내가 흘리는 눈물마저 가증스러웠다. 지금 흘리는 눈물이 마치, 죄책감을 덜고자 하는 악어의 눈물처럼 느껴졌다. 지갑 속에 넣고 다니며 매일 보던 오빠의 얼굴마저 쳐다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미안했고, 후회했다. 정신적으로도, 물질적으로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것들을 준 오빠였다. 너무 많아서, 너무 당연해서 인지조차 하지 못할 만큼 많은 것을 주던 오빠였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다. 언제나 나보다 경제적으로 풍족한 오빠였기에 물질적인 선물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언제나 단단하고 이성적인 사람이었기에, 그 어떤 다정한 말도, 위로도, 응원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문득, 유치원 때가 생각났다. 그때의 나는 일곱 살, 오빠는 열다섯 살이었다. 오빠 생일이라고 오백 원, 천 원 푼돈을 모아 캐릭터가 큼직하게 그려진 문구세트를 사준 적이 있다. 오천 원 남짓한, 중학생 남자애가 쓰기에는 유치하기 그지없는 별 거 없는 선물이었다. 하늘색 포장지의 문구세트 속에는 유치한 캐릭터가 큼지막하게 그려진 샤프와 연필, 샤프심, 지우개, 자가 들어있었다. 기억 속 오빠는 그 선물을 받고 고마워했다. 잘 쓰겠다고, 고맙다고. 오빠는 그 자리에서 문구들을 꺼내 필통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나와 함께 문구세트 뒷면에 인쇄되어 있는 종이 인형 만들기를 조립했다. 중학생이던 오빠가, 그 유치한 문구세트가 고마웠던 건 아니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오빠는 어렸을 때부터 일본에서 만든 가격대가 있는 문구류를 사용하던 사람이었으니까. 그저 한참 어린 동생이 자신의 생일이라고 한 푼 두 푼 모아 선물을 준비한 그 ‘마음’이 고마워 눈이 초승달이 되도록 웃어줬을 것이다.

 유치하기 짝이 없고, 실용성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그 문구세트에도 웃어주며 고맙다고 했던 오빠였다. 커서는 선물을 해준 적이 없어서 상상만 해보지만, 성인이 된 오빠도 내가 무슨 선물을 줬든 말갛게 웃어줬을 것이다. 물건의 가치보다 그 물건에 담겨 있는 마음의 의미를 봐줬던 열다섯 살의 오빠처럼. 실은 그간의 나는 오빠에게 줄 무언가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 오빠에게 줄 마음이 없는 무정한 동생일 뿐이었다.

 뒤늦게야 깨달았다. 중요한 건 무엇을 주느냐가 아니라, 어떤 마음을 주느냐라는 것을.




오빠에게 해줄 수 있는 것

 내가 어떤 반응을 보이든, 나와의 관계가 어떻든 끊임없이 무언가를 건네던 오빠였다. 돈이 되었든, 선물이 되었든, 조언이 되었든. 이제는 내 차례였다. 오빠에게 닿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개의치 않고 오빠에게 무언가를 건넬 차례였다. 마음을, 그리고 진심을 준다는 건 그런 거니까. 상대에게 닿지 못한 대도, 상대에게 보답받지 못한 대도, 그 마음을 준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거니까. 수없이 고민했다. 내가 오빠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무엇일까. 떠나간 오빠를 위해 남겨진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답을 찾아 나섰다. 기한은 오빠를 다시 만나는 그날까지.

 가장 먼저 찾아낸 답은 ‘씩씩하게 살아가기’였다. 내가 상실에 대한 슬픔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으면 오빤 분명, 죄책감을 안고 하늘에서도 두 발 쭉 펴고 자지 못할 사람이었다. 오빠가 마음 편히 하늘에서 우리를 지켜볼 수 있도록, 씩씩하게 살아가는 게 내가 오빠에게 해줄 수 있는 첫 번째였다. 강해져야 했다. 씩씩하게 살아가기 위해. 오빠의 죄책감, 그리고 걱정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내 사정을 아는 사람들도, 그리고 모르는 사람들도 나를 보며 단단한 사람이라고 말하곤 했다. 내 단단함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오빠를 위한 것이었다. 오빠가 단단해진 날 보며 마음을 놓을 수 있도록, 가끔 죄책감에 무너져도 단단한 내게 기댈 수 있도록.

 두 번째로 찾아낸 답은 ‘오빠를 웃으며 추억하기’였다. 누구나, 자신의 존재가 타인에게 슬픔이기보다는 행복이길 바랄 것이다. 아프고 슬픈 기억은 나도 모르게 마음속 깊숙이 꽁꽁 감춰두게 된다. 그 기억을 꺼내고 곱씹는 행위 자체가 큰 용기와 에너지를 요하는 일이기에. 반면, 행복하고 즐거운 기억은 사람을 살아가게 만든다. 그리고, 좋을 때나 슬플 때나 힘들 때나 언제고 꺼내보며 힘을 얻는다. 그렇기에 오빠를 웃으며 추억하기로 했다. 그래야 오빠를 자주 꺼내볼 수 있으니까. 자주 꺼내봐야 오래도록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으니까. 오빠와의 기억과 함께 살아가고 싶었다. 오빠를 웃으며 추억하기 시작하자 오빠를 생각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내 삶 곳곳에 묻어있는 오빠와 함께,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었다. 오빠 생일이면 작은 케이크를 사서 촛불을 불어주기도 하고, 오빠의 사진을 책상 앞 벽에 붙여두며 함께 미소 짓기도 하고, 오빠를 새겨 넣은 반지를 보며 오늘을 살아갈 이유를 찾기도 하고.

받는 사랑이 주는 사랑에게

 답을 찾았지만, 그걸 실천해 가는 게 마냥 쉬운 일은 아니었다. 때로는 나약한 내 본성이 불쑥 튀어나와 절망 속에 처절하게 기어 다니기도 하고, 오빠 생각과 함께 덮쳐오는 슬픔이라는 파도에 잠겨 숨구멍이 턱 막히기도 했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었다. 닿을 수 있을지 없을지 기약 없는 마음을 끝없이 퍼올리는 게 쉬울 리가 없었지만, 어렵다고 포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언제나 굳건한 나무처럼, 흔들려도 흔들리지 못해야 했던 오빠에게. 단단해져야 해서 단단해졌지만, 너무 단단해져 버려 덮쳐오는 태풍에 흔들리지 못하고 부러져버린 오빠에게. 이젠 좀 흔들려도 된다고, 오빠를 힘들 게 했던 짐들을 내려놓고 이젠 내게 기대도 된다고 말해줘야 했기에. 언제나 받기만 했던 나였으니까. 받는 사랑이 주는 사랑에게 해줄 수 있는 것들이 고해 저 깊은 곳에 파묻혀 있대도, 이제는 그에게 주는 사랑이 될 수 있었다면 아무렴 좋았다.

오늘은, 다비치의 <받는 사랑이 주는 사랑에게> 가사로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괜찮으니까 이젠 좀 흔들려요. 흔들려도 돼요.

무거운 잎들을 그냥 뭐 바람에게 줘버리면 돼. 비가 내리면 함께 맞으면 돼.

앙상해도 괜찮아요. 무언가를 원해 곁에서 있었던 건 아니죠.

힘들었죠. 아니긴요. 힘들겠죠.

이제 내게 기대요. 이제 받는 법도 배워요.

                          - <받는 사랑이 주는 사랑에게>, 다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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