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슬 Mar 14. 2024

가족을 향한 다짐

제4장. 오빠의 자살을 받아들이는 마음가짐

떠나간 이들을 위하여, 남겨진 이들에게

초안, 날 것 그대로의 문장들


오빠. 오빠가 떠난 이후로 가장 크게 변한 건 가족과의 관계인 거 같아. 오빠로 인해 단절되어 있던 가족들이 다시 하나가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

고마워 오빠. 내게 다시 가족을 선물해 줘서.



겉모습이 아닌, 진심을 보기


 내가 몰랐던 오빠는 가족을 참 좋아했다. 고백건대, 우리 가족은 그리 화목한 가족이 아니었다. 부모님은 감정의 골이 깊었고, 각자의 개성과 성격이 너무 뚜렷한 가족들이기에 모이면 꼭 다툼이 일어났다. 누구 하나는 울거나, 누구 하나는 언성을 높이거나, 결국엔 누구 하나는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리고 마는. 나는 그런 ‘가족’이라는 집합체를 극도로 싫어했다. 가족 개개인에는 나름의 애틋함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개개인이 모여 만든 ‘가족’이라는 집합체는 내게 불행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언제고 도망쳐야 하는.


 내게는 그런 의미였던 가족을, 오빠는 뭐가 그리 좋았는지. 오빠의 지인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했다. 오빠가 살아생전 가족을 참 좋아했다고,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참 많이 했다고. 오빠의 죽음을 겪고 난 직후에는 무너지고 있는 가족들을 지탱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그 집합체를 품에 안았다. 그리고 난 뒤에는 오빠가 좋아했던 그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지키고자 했던 사명감이었다. 그런 의무감과 사명감에 똘똘 뭉친 채 가족을 대했다. 무너지지 않도록 지켜야 하는 사람들이었고, 지켜야 하는 공동체였다. 내게는 익숙지 않은 공동체를 품에 안으며, 오랜 시간에 걸쳐 오빠가 사랑했던 이 공동체의 의미를 곱씹었다.


 내가 아는 사랑은 다정함이었다. 나는, 다정함을 통해 사랑을 보던 사람이었다. 내게 사랑은, 소중한 사람이 나로 인해 웃을 수 있도록, 내 말과 행동, 마음으로 이토록 차가운 세상에서 피난처가 되어주는 것이었다. 그게 내가 아는 유일한 사랑이었다. 그렇기에 가족은, 그리고 오빠는 내게 사랑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었다. 하지만 오빠가 내게 주었던 사랑의 의미를 곱씹으며, 내가 사랑해야 할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의미를 곱씹으며 중요한 건 사랑의 형태가 아니라는 걸 여실히 깨달았다.


 중요한 건, 사랑하는 마음 그 자체였다.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 그 사람이 혹여나 힘든 길을 걷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이었고, 그 사람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없나 고민하는 그 마음이었다. 그 마음은 전해주는 사람에 성향에 따라 다르게 전달되곤 했다. 사랑이라는, 애정이라는 무형의 것은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 모습으로 관계에 나타나곤 했다. 차갑게 전해진다고 해서 사랑이 아닌 건 아니었고, 다정하게 전해진다고 모든 게 사랑은 아니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겉으로 드러나는 게 다였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게 전부는 아니었다.


 오빠가 주었던 사랑을 생각하며,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으로 그 사람의 마음을 판단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표현방식이 아닌, 그 속에 담겨있는 마음을 보자고. 하루키의 장편 소설인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너는 네가 보고 싶은 것만 볼 게 아니라 꼭 봐야 할 것을 봐야 해.” 각자 다른 표현 방식 이면에 숨겨져 있는 ‘마음’,  그 마음이 내가 꼭 봐야 할 것이었다.


 차갑고 날카로운 것들, 감정적이고 시끄러운 것들에 면역이 없는 나는, 여전히 가족들이 내뱉는 말에 베이곤 한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얼음송곳처럼 차갑고 날카로웠지만 그 속에 애정이 담겨있었던 오빠의 행동들을 떠올린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닌, 숨겨져 있는 ‘마음’을 보려고 한다. 오빠의 닿지 못한 마음들에 미안했던 만큼, 후회했던 만큼 아무리 아리게 베이고 찔리더라도 그 날카로움마저 움켜쥐고 그 속에 있는 걸 보려고 한다. 알아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후회했던 그 숱한 밤들이 물거품이 되어버리지 않도록.


 그렇게 표현이 아닌 마음을 들여다보려고 노력하며, 내가 알지 못했던 가족들의 사랑이 점점 애틋해졌다. 서로를 향한 날카로운 말속에는, 실은 상대방이 잘 되기를 바라는, 고생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숨겨져 있었다. 불퉁한 대화 속에서는, 실은 너를 위한 내 마음을 몰라주는 서운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대화 속에서는, 각자만의 삶의 무게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가족을 잘 이끌고자 하는, 가족을 위하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우리 가족은 서로 다른 표현방식과 소통방식에 얼굴을 붉히는 일들이 여전히 잦다. 예전 같으면 그들의 언행에 속상했을 테고, 속상함을 만드는 공동체를 미워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속에 담겨 있는 서로를 향한 마음이, 상대가 알아주든, 몰라주든 언제나 같은 자리에 있는 그 마음이 그저, 애틋하다.  




오빠가 존재할 수 있는 곳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회의감이 몰려올 때가 있다. 가족과의 관계를 위해 열심히 노력해 보고자 해도, 틀어진 채로 너무 멀리 와버린 관계들이었다. 틀어진 채로 너무 오랜 시간을 지나왔기에, 돌이키려면 가늠도 되지 않을 만큼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이 관계들이 이어 붙여질 수 있긴 할까. 열심히 노력해도 개선되지 않은 것 같아 보일 때면 이 노력들이 의미가 있을까, 하는 회의감에 전의를 상실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빠를 생각하면, 아무리 긴 여정이 될지라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이었다. 오빠가 좋아하던 것이니까. 오빠가 살아있을 때 좋아하던 것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색이 바래가고 있다. 오빠가 그토록 좋아하던 게임도, 그걸 좋아하던 오빠가 없으니까 의미가 없어졌다. 한 해가 다르게 오빠가 사서 모았던 게임팩의 케이스들은 선명한 색들이 바래가고 있다.  오빠가 좋아했던 그림 그리기도, 그 도구들을 사용해 줄 오빠가 없으니 그저 내 방 서랍장에서 부연 먼지가 쌓여가고 있다. 오빠가 좋아했던 사람들도, 그들의 소식을 전해줄 이가 없으니 2020년에 멈춘 채 희미해지고 있다.


 그러나 가족은 달랐다. 오빠가 좋아했던 것들 중, 그 색을 잃지 않는 유일한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도, 그것을 좋아해 줄 오빠가 없어도 선명한 색을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존재들. 그들이 있는 한, 가족을 좋아했던 오빠는 평생토록 우리 곁에 남아있을 수 있다. 오빠가 좋아했던 것들은 모두 사진 속, 서랍 속, 그 어딘가에서 생명력을 잃고 말았다. 생명력을 잃어버린 것들에서 오빠는 점점 희미해지기만 한다. 하지만 가족들에게는, 이들을 좋아했던 오빠가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오빠가 좋아하던 것들 중, 내가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가끔 가족 단톡방에는 오빠와 함께 찍었던 사진들이 올라오기도 하고, 서로 나누는 대화 속 문득 떠오르는 오빠를 함께 추억하기도 한다. 각자 가지고 있는 오빠에 대한 단편적인 조각들이, 함께 오빠를 추억하며 하나의 그림으로 맞춰지곤 한다. 아무리 살아 숨 쉬고 있어도 누군가에게 잊힌 존재는, 더 이상 살아있는 존재가 아니다. 반대로 더 이상 살아있지 않는대도, 누군가에게 기억되는 존재는 그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언제까지나 살아있다. 가족이라는 공동체는 오빠가 언제나 존재할 수 있는 곳, 머물다 갈 수 있는 곳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더 단단하게 결속되어 이 공동체를 지키고자 한다. 행여 오빠가 하늘 여행을 하다 외로울 때면, 지칠 때면  잠시 머물다 갈 곳을 만들어주고 싶다. 오빠를 기억하는 한, 우리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오빠가 쉬다갈 자리가 있을 테니 말이다. 언제나 오빠가 존재할 수 있도록, 머물다 갈 수 있는 곳을 만들어주는 것이 남아있는 우리가 오빠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일 테다.


 그래서, 틀어져 버린 관계일지라도 소중히 보듬는다. 계속해서 따뜻하게 쓸어주다 보면, 딱딱하게 굳어버린 이 관계들도 결국엔 언젠가는 보드라워질 것을 기대하며. 보드라워진 관계는 힘을 크게 들이지 않아도 원래 있어하는 방향으로 교정할 수 있을 테니까.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천천히,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그렇게 우리 가족의 관계를 따뜻한 온기로 쓰다듬어주는 중이다.




걱정은 말고, 편히 쉬기를 바라며


 신기하게도 오빠는, 우리 가족이 힘든 순간에 꿈에 나타나주곤 했다. 제일 힘들어하는, 혹은 오빠의 도움이 필요한 딱 한 사람에게만, 돌아가며. 내가 공무원 시험 준비를 했을 때, 그리고 막 입직해서 사회생활의 풍파에 흔들릴 때 주기적으로 내 꿈에 나타나 흔들리던 나를 붙잡아 줬다. 그 이후로 꿈에 안 나타나나 싶더니, 알고 보니 많이 힘들어하던 언니의 꿈에 나타나 언니를 붙잡아주고 있었다. 그런 오빠가 든든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걱정이 됐다. 오빠는, 하늘에서도 우리 걱정 때문에 편히 쉬질 못하는 것 같아서. 내가 알던 오빠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무심해 보였지만, 표현을 안 해서 그렇지 언제나 뒤에서 가족 걱정을 하던 사람이었으니까. 그리고 장남이라는 보따리 안에 가족에 대한 책임감을 가득 담아 짊어지고 가던 사람이었으니까.


 가벼운 보따리를 들고도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기 힘든 이 세상 속에서, 책임감이라는 무게를 가득 싣고 세상을 터벅터벅 걸어갔던 오빠가, 이제는 부디 그 모든 짐들을 벗어던지고 편히 쉬길 바랐다. 남아있는 이들 걱정하지 말고, 어떤 고민과 근심 없이, 그저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행복하고 평안하게 쉬길 바랐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아있는 가족들이 잘 살아야 했다. 타고난 천성 탓에, 그리고 아직은 저 밑에 가라앉아 있는 가족에 대한 응어리 탓에 여전히 가족을 알뜰살뜰 챙기는 편은 되지 못한다. 그래도 전보다는 자주 안부를 물으며 가족들을 챙기려고 노력한다. 가족들에게 지금 필요한 게 무엇인지 유심히 지켜보는 시간이 길어졌다. 때로는 따뜻한 말로 위로를 건네고, 힘이 될 응원을 건네고, 사소하지만 마음이 듬뿍 담긴 선물을 주기도 한다.



가족이라는 공동체 속에서 서로의 손을 꼬옥 맞잡고 꿋꿋하게 잘 살아내야, 오빠의 걱정이 하나 덜어질 테니. 그래야, 오빠가 평안하게 살아갈 수 있을 테니.

이전 19화 오빠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