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오빠가 내게 남겨준 것들
초안, 날 것 그대로의 문장들
오빠. 오빠가 떠나간 이후, 가족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고, 보듬으려고 노력하고 있어. 각자만의 방법으로 오빠에 대한 속죄를 하고 있는 걸지도 몰라. 오빠가 이 땅에 있었을 때는 마주 보며 웃기보다는 인상을 찌푸리거나 시선을 피했던 우리였지만, 다시 만날 때는 꼭 웃으면서 보자. 어떤 모습으로 있든, 그 모든 것을 인정해 주고 사랑해 줄 수 있는 성숙한 사람이 되어 찾아갈게.
미움도 결국은 사랑의 다른 말이었음을.
언제 언니가 물은 적이 있다. ‘너는 왜 그렇게 오빠를 싫어해?’ 그때는, ‘그냥, 나랑 성격이 너무 안 맞아.’하고 얼버무렸던 것 같다. 그때는, 너무나도 오랫동안 싫어했던 오빠였고, 감정의 골이 깊었던지라 내가 왜 오빠를 싫어했는지 돌아볼 생각조차 없었다. 얽혀 있는 매듭을 풀 생각을 못했다. 그저, 원래의 모양새가 그렇게 얽혀 있는 것인 줄만 알았다. 오빠가 떠나고, 오빠의 사랑을 알게 된 이후로는 내가 오빠를 싫어했던 이유를 찾아 헤맸다. 앞선 내용에서도 언급했듯, 비뚤어진 존경심이었다. 동경하는 사람에게, 내가 주는 마음만큼 인정받고 사랑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흘러나온 마음이었다.
내가 조금 더 어렸을 땐, 오빠를 향한 반듯한 마음이 일직선으로 뻗어나갔다. 그 마음이 오빠에게 닿았을 때, 마음을 꿰어낼 수 있는 구멍을 찾지 못하면 찾을 때까지 이리저리 훑었다. 위, 아래, 왼쪽, 오른쪽, 그것마저 안 되면 대각선을 향했다. 그렇게 오빠와 내 마음이 맞는 홈을 찾을 때까지 마음을 뻗었고, 결국에는 맞는 구멍을 찾아 고운 마음을 하나둘 꿰어냈다. 내가 조금 더 자라날수록, 꿰어지지 못한 마음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다. 마음을 뻗어냈는데 단번에 알맞은 홈을 찾지 못하면 마음은 구불구불하게 내게 다시 돌아왔다. 손에 잡히는 실을, 눈에 보이는 바늘구멍에 단번에 꿰어내는 것도 어려운데. 손에 잡히지 않는 마음을 눈에 보이지 않는 상대방의 홈에 단번에 꿰어내는 건 얼마나 큰 욕심인지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한 번 두 번, 구불구불하게 마음이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또다시 뻗어지는 마음과 아직 다 돌아오지 못한 마음이 얽히기 시작했다. 살살 풀어내야 할 것을, 힘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말로, 생각으로, 감정으로 힘껏 잡아당겼다. 그렇게 하면 얽힌 마음이 풀릴 줄만 알았다. 풀리기는커녕, 꼬여있던 마음에 하나둘 복잡한 매듭이 지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매듭이 하나, 둘 늘어가자 시작과 끝이 어디인지도 알 수 없는 미움 덩어리가 되고 말았다.
실은 내 경우, 사람에 대한 호불호가 거의 없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불호가 거의 없다. 타인이 가지고 있는 모서리에 예민하기는 하지만, 그 날카로운 부분에 나를 부딪히기보다는 흘려보내는 편이다. 정사각형 석고상 모서리 부분에 손가락을 꾹 누르고 있으면 부드러운 살결을 파고들어 자국을 내기 마련이다. 하지만 누르지 않고 면과 면을 훑고 지나가면 제 아무리 날카로운 모서리를 가졌더라도 손가락에 작은 흠집하나 내지 못한다. 누군가와 깊은 관계를 맺는데 신중한 편이기도 하고, 타인에게 별로 관심이 없는 편이다. 그래서 그런지 손가락 사이를 파고드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때 누군가가 다른 이에 대한 불만을 내비치면 그 때야 아, 그런 면도 있었어? 할 정도로 타인에 대한 불호가 없는 편이다. 그런 내가 타인을 향해 ‘불호’의 감정을 내비치는 경우는 딱 두 가지였다. 치졸한 마음이긴 하지만, 내가 정말 열심히 했지만 이뤄내지 못한 것들을 해낸 사람에 대한 질투와 열등감, 애정을 갈구했지만 충족되지 못했을 때의 서운함.
오빠는 그 두 가지에 다 해당되는 사람이었다. 오빠는 워낙 능력치가 좋은 사람이었다. 내가 간절히 노력해도 이뤄내지 못한 것들을 오빠는 척척 해내곤 했다. 그런 오빠가 부러웠다. 부러움이 차곡차곡 쌓이다 보면 케케묵은 감정이 되어 열등감이 되곤 했다. 아마, 오빠에 대한 질투와 열등감은 언제나 내 마음속에 있었을 듯하다. 그리고, 동경하는 오빠에게서는 ‘내가 원하는 만큼’의 애정이 충족되지 못했다. 질투와 결핍에서 오는 허기짐은 언제나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오빠를 미워했다. 나라는 사람에게 미움은, 애정이 없다면 생겨나지 않을 마음이었다. 내게 미워한다는 감정은 애정이 비뚤게 자란 결과물이었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사람에 대한 동경, 그리고 그 동경이 옳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다 보면 그건 질투가 되어버렸다. 누군가에게 애정을 갈구하는 마음조차도, 그 사람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가능하지 않을 일이었다.
내겐, 미움조차 사랑의 다른 말이었다.
그걸 깨닫고부터 내가 미워했던, 그리고 미워하는 사람들을 곰곰이 곱씹어 봤다. 나는 왜 그 사람을 그리도 미워했던가. 내가 그 이에게 가졌던 마음의 뿌리는 무엇이었을까.
저마다의 사정이 있었을지도
내가 좋아했던 오빠는, 딱 스무 살 때까지의 오빠까지였다. 그때도 역시나 까칠했다. 하지만, 초등학생 동생과 함께 본인의 PMP로 영화를 봐주는 고등학생이었고, 유치하기 짝이 없는 내 분홍색 플라스틱 리본핀을 머리에 꽂아달라며 재롱을 부려주던 스무 살이었다. 까칠하긴 했지만 다정했던 오빠를, 그때의 난 서먹해하면서도 좋아했다. 어느 순간부터 오빠가 까칠을 넘어 날카롭게 변했다. 상처 주는 말을 서슴없이 하고, 배려 없는 행동을 했다. 그런 오빠의 말과 행동에 상처받던 나는, 서서히 오빠에게 멀어졌고 미워하기 시작했다. 오빠에 대한 미움의 절정은 오빠가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부터였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을 하던 오빠였다.
공무원 입직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깨달았다. 변해버린 오빠의 모습도 어쩌면, 사회에서 버티기 위한 몸부림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오빠는, 똑똑하고 이성적인 사람이었지만, 대쪽 같은 순수함이 가득했던 사람이었다. 엄마가 네 교복은 네가 빨라고 잔소리를 하자 욕실에 기술과 가정 교과서를 펼쳐 놓고는 책에 나와있는 대로 손빨래를 하고(우리 집에 세탁기가 멀쩡하게 있는 대도 말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육교에서 굴러 팔이 부러지자 119도 아닌, 엄마에게 전화를 하는(엄마는 뭐든 척척해내는 해결사여서, 지금의 상황도 엄마에게 전화를 하면 엄마가 해결해 줄 거라고 믿었단다) 그런 엉뚱한 순수함을 가진 사람.
사회에 나가보니 알게 되었다. 순수함을 간직한 채, 그리고 그걸 그대로 내보인 채 사회에 나아간다는 것은 사람들의 표적이 되기 십상이라는 것을. 어느 순간부터 계산적으로 행동하고, 가족과의 관계에서 마저도 셈을 하는 오빠를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내 추측일 뿐이지만, 오빠는 이런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엉성하기 짝이 없는 갑옷을 만들어 두른 건 아니었을까. 뒤집어쓴 여우탈이 그대로 보이는 곰이었다. 여우탈을 쓰며 알랑거리는 오빠를 미워했다. 하지만 그 탈은, 세상에서 이미 너무 많이 상처를 입어야 했던 곰이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뒤집어써야만 했던 탈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생각하자, 사람들에게는 저마다의 사정이 있음이 절실히 와닿았다. 저마다의 사정으로, 저마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각자의 두터운 탈을 쓰고 세상에 나아간다. 내게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나와 맞지 않는 탈을 뒤집어쓰고 다가오는 사람을 그저 흘려보내면 된다. 하지만 그 사람이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쓴 탈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왜 그 탈을 뒤집어쓸 수밖에 없었는지 그 사정을 들어줘야 했다. 그리고 그 탈 속에서 답답해하는 그 사람의 본모습을 봐줘야 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문득 아빠가 떠올랐다. 고집이 강한 아빠, 당신은 언제나 옳고 당신과 다른 사람들이 틀린 거라고 말하던 아빠. 가부장적인 아빠. 권위적인 아빠. 언제나 내 마음에 마뜩잖은 아빠의 행동을 보면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그럼 그렇지, 하며. 오빠의 일이 있고 난 후로는 그런 아빠의 모습을 피하기만 하지 않고 그 속에 숨겨져 있는 본모습을 보려고 노력했다. 그러자 아빠의 탈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까이서 볼 땐 몰랐지만, 세 발자국 떨어져서 보니 아빠가 쓰고 있는 탈이 보였다. 그리고 그 탈 속에 숨어있던 본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30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쳐오며 배어버린 권위적인 말투. 가부장적인 조부모님 세대의 가정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배어버린, 그리고 다섯 명의 삶을 잘 이끌어야 한다는 책임감에 배어버린 가부장적인 태도. 밤낮없이 일하느라 가족과 보낸 시간이 얼마 없기에 가족 사이에서 밀려버린 입지에서 오는 소외감. 힘겨웠던 삶이기에 자식들만큼은 당신보다 편하게 살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
아빠를 시작으로 엄마, 언니. 남은 가족들을 하나하나 살폈다. 평소에는 그저 그들의 말과 행동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유심히 들여다보니 각자 저마다의 사정이 있었다. 이해되지 않던 행동과 말들이, 각자만의 사정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생각하니, 감히 부정적인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어떤 모습이든,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기
내게 이런 생각의 변화가 있는 동안, 가족들도 저마다의 깨달음이 있었던 듯하다. 예전에는 서로의 마음을 할퀴고 생채기를 내며 그대로 돌아섰다면, 요즘은 그 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고 마지막은 서로를 보듬어주려고 한다. 너무 멀리 돌아왔지만, 우리 가족은 오빠의 죽음을 통해 서로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 주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수십 년을 살아온 방식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기에, 천천히, 그렇지만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중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조금씩 더 단단해지고 더 결속하고 있다.
사랑은 양날의 검이다. 사랑하기에 서로를 위해 희생하고 보듬어주지만, 사랑하기에 기대하고, 사랑하기에 배신감을 느끼며, 사랑하기에 미워하는 감정이 생긴다. 아무리 깨닫고 다짐한다고 해도, 본능의 힘은 강하기에 피어나는 감정은 어쩔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본모습을 봐주고,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오빠는 내게 사랑의 의미를 알려줬다. 미움조차 사랑의 다른 말이라는 것을. 사랑의 힘은 강하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은 유한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