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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Apr 05. 2024

살아야만 한다면, 잘 살고 싶어서.

제5장. 오빠가 내게 남겨준 것들(2)

떠나간 이들을 위하여, 남겨진 이들에게

초안, 날 것 그대로의 문장들

오빠. 가끔은 어처구니없는 생각이 떠오르곤 해. 상실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이 오빠가 아니라 나여서 차라리 다행이라고.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고민했던 2019년, 내가 만약 죽음을 택했더라면 내가 겪고 있는 아픔을 오빠가 겪고 있겠지. 차라리, 내가 아파서 다행이야. 그리고, 가끔 삶에 파도에 잠겨버릴 때마다 다짐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래오래 살아서 우리의 원가족들에게는 더 이상 상실의 아픔을 안기지 않겠다고.

살아야만 한다면, 잘 살고 싶어서.


남겨진 이들의 고통을 알아버렸다.

 나는 언제나 목숨이 아깝지 않은 사람이었다. 삶의 의지가 별로 없었다. 살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었지만, 그렇다고 죽을 용기조차 없는 겁쟁이였다. 죽음을 처음 염원했던 초등학교 6학년 때 이후로, 지금 당장 사고가 나서 삶을 마감한 대도 한 치의 아쉬움조차 없었다. 그리고 대학생 때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한 시도가 여러 번 있었다. 그 결심 속, 내 죽음 이후 남아있는 이들이 받을 상처는 안중에도 없었다. 내 삶의 고통이 내겐 전부였다.  그때의 나는 그저 내 삶을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너무 벅찼기에, 남아있는 이들을 생각할 여유 따위 없었다. 그렇기에 언제나 죽음을 꿈꿨다. 하지만, 나는 겁쟁이였다. 완전하게 목숨을 끊을 만한 용기는 없었기 때문에 내 삶이 끝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만을 호시탐탐 노릴 뿐이었다. 남아있는 이들의 아픔을 제대로 알지 못했기에 부릴 수 있었던 욕심이었다.

 오빠의 죽음 이후, 남겨진 이들의 슬픔을 뼈저리게 알게 되었다. 소중한 이의 죽음이, 남아있는 사람들의 삶을 얼마나 철저히 무너뜨리는지 알아버렸다. 나의 삶에 대해서는 지독하리 만큼 모진 사람이었지만, 소중한 이들이 받을 아픔과 나로 인해 그들의 무너질 삶을 모른 척할 만큼 모진 사람은 되지 못했다. 오빠의 죽음을 통해, 나는 남겨진 이들의 고통을 알아버렸다. 오빠의 죽음을 겪은 후 꽤나 오랫동안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했던 가족들. 그리고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아파하는 가족들. 여전히 사랑하는 오빠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의 악몽 속 살아가고 있는 가족들. 내가 만약 이 세상을 떠난다면, 한껏 약해져 버린 두 다리로 겨우 땅을 지탱하며 서있는 가족들은 재기가 불가할 정도로 무너져버릴 것이었다. 그리고, 만약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졌을 때 친구라는 이름으로 맺어진 내 소중한 가족이 받게 될 아픔은 상상하기도 싫었다. 귀하고 좋은 것만 주기에도 모자란 그 아이들에게 이 지독한 고통을 떠넘기고 나 혼자 편해질 수가 없었다.

 사랑하는 이를 상실한 사람들의 절망을 두 눈으로 목격하고, 온몸으로 체험했다. 그렇기에 내 삶에서는 죽음이라는 선택지는 사라져 버렸다. 내 삶이 아무리 고단하고 힘겨워도, 나는 도망갈 수가 없다. 진흙탕 속에서 처절하게 구르더라도 나는, 살아야만 했다. 내게는 내 고통보다는 내가 사랑하는 이들의 고통이 더 중요하기에.

선택지가 사라졌을 때, 비로소 강해졌다.

 

 죽음을 꿈꿀 수 있었을 때는, 언제나 여분의 비상 버튼이 하나 주어진 느낌이었다. 도저히 견디기 어려울 때, 숨이 막힐 때, 그 버튼을 누르면 편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기에 언제나 시련과 고통을 회피하기만 했다. 버거울 만큼 힘겨운 순간이 찾아오면, 다 놓아버린 채로 혼자만의 동굴 속으로 숨었다. 그리고 숨을 골랐다. 이렇게 숨을 골라도 해결되지 않는다면, 가쁜 내 숨이 버겁다면, 이 숨을 끊어놓아야지. 내 숨이 끊어진다면, 나를 괴롭히고 있는 이 모든 것들도 별거 아닌 일이 되겠지. 그렇게 언제나 문제를 덮어놓고 외면하고, 회피하고, 도망쳤다. 언제나 나는 내 삶에서 비겁한 도망자였다.

 그렇기에 인생에 거센 폭풍이 몰아칠 때면, 그냥 몸을 한껏 웅크리며 폭풍을 온몸으로 받아냈다. 온몸으로 받아냈다는 건, 직면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저 폭풍에서 달아날 용기도, 그렇다고 폭풍을 이겨낼 용기도 없었다. 그저, 겁쟁이처럼 그 자리에 ‘있었다.’

폭풍이 빨리 지나가길 바라며. 혹은, 드디어 이 폭풍이 내 목숨을 앗아가 줄까 일말의 기대를 하며. 그러다 폭풍이 지나가면, 폭풍을 대비할 생각은 하지 않은 채로 그저 폭풍이 오지 않기만을 바랐다. 그리고 다시 찾아올 폭풍이 남기고 갈 상처를 두려워만 했다. 언제나 잔뜩 상처 입은 채로, 두려워만 했다. 폭풍으로 인한 상처는 하나둘 늘어갔다. 시간이 흐르며 상처가 하나둘 늘고, 숱한 폭풍을 맞아도 강해지지 못했다. 시련이 찾아왔을 때를 대비하지 않았고, 시련을 이겨내려 하지 않았고, 시련을 통해 무언가를 배울 생각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저, 상처만 하염없이 늘어갔다.

 오빠의 죽음 이후로, 내 삶에서 죽음이라는 선택지는 사라져 버렸다. 그렇기에 나는 예전처럼 웅크리고만 있어서는 안 됐다. 여전히 두려웠지만, 나를 덮쳐오는 폭풍을 마주 대해야만 했다. 내게 다가오는 폭풍의 정체를 밝혀야만 했다. 근원을 알 수 없는 우울, 잘해야만 한다는 강박, 억눌린 마음의 소리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불안과 두려움, 무기력까지. 두려워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던 것들을 직면하고, 그 원인들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그 폭풍들을 이겨낼 방법을 찾아야 했다. 언제나 든든한 도피처였던 죽음이라는 선택지는 사라져 버렸으니까. 살아야만 한다면, 언제까지나 이 폭풍을 두려워하고만 있을 순 없었다. 맞서야 했다. 그래서 버텨내야 했고, 이겨내야 했고, 강해져야 했다.

 매일 이른 새벽에 눈을 떠 내 마음을 고요히 들여다봤다.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건 무엇인지,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내가 두려워하는 것의 정체는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들은 어디서 왔는지. 그것들은 왜 내게 찾아왔는지 이유를 찾아야 했다. 정체와 이유를 바탕으로 해결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도망칠 수 없고, 무너질 수도 없었기에 이겨낼 방법을 찾아야 했다. 처음에는 스스로에게조차 솔직해질 수 없었다. 작고 연약한 나를 마주 보기가 싫었다. 내 나약함을 인정하고 거기서 해결방법을 찾아내기까지, 쉽지만은 않은 시간들이었다. 내 안의 겁쟁이는 도망치라고, 여태껏 그랬듯 외면해 버리라고 속삭였다. 익숙지 않은 일이었고, 불편한 일이었다. 하지만, 내게는 도피처가 없었다. 내가 서있는 불편하고 어색한 이곳만이 내가 있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외면할 수도 없고, 도망칠 수도 없는 삶의 끝에서 매일매일 아슬아슬하게 한 발 한 발을 내디뎌야 했고, 마음을 단단히 먹으며 강해져야 했다.

살아야만 한다면, 잘 살고 싶어서.

 그렇게 외면하지 않고 마주 보며 하루하루를 버텨갈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살아야만 하는 삶이라면, 막다른 선택지가 없이 꼭 살아야만 하는 삶이라면, 잘 살고 싶다고. 나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잘 살고 싶다는 욕심이 지나쳐 스스로를 우울의 수렁으로 밀어 넣을 만큼.

 하늘에서 지켜볼 오빠를 위해서라도 잘 살아야만 했지만, 어차피 살아야 할 삶이라면 잘 살고 싶었다. 내가 살아보고 싶은 삶을 살고 싶었다. 행복한 오늘, 기대되는 내일이 있는 삶을 살고 싶었다. 어서 지나가길 바라는 오늘과 두려운 내일만이 존재했던 지난날의 삶은, 오빠의 화장터에 같이 태워버리기로 다짐했다. 그리고, 죽음이라는 선택지가 없어진 지금의 삶은, 오빠가 새롭게 선물해 준 삶이라고 여기기 시작했다. 새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삶을 여겼다. 살아보고 싶은 삶을 살아가고 싶었다.

 조그마한 네모가 오밀조밀 모여있는 만다라트 표를 채우며, 꽤나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꿈들을 꺼내보았다. 어떻게 해야 살아보고 싶은 하루를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며 플래너를 펼쳤다. 살아보고 싶은 삶이 단순한 허상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 목표에 관련한 책을 읽었다. 그리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온라인 강의를 결제해서 수강하고, 꿈꾸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커뮤니티에 가입했다.

 그러나 보니, 언제나 모노톤이었던 삶에 하나둘 색채가 생기기 시작했다. 아무런 희망이 없었던 삶에 작은 기대가 싹트기 시작했다. 살아보고 싶은 삶이 생기고, 그 삶을 위해 꿈꾸던 오늘을 살아가기 시작했다. 그런 나를 보며, 주변 사람들은 ‘갓생’을 산다고 말했다. 어떻게 그렇게 부지런히 살 수가 있냐고. 원래부터가 부지런한 성격이냐고. 침대에 누워있는 시간이 제일 행복하고, 쉬는 날이면 하루의 반을 잠으로 보냈던 나였지만, 변할 수밖에 없었던, 변하게 만들었던 계기는 그냥 마음에만 담아내며 그냥 웃고 만다. 언어가 완성되었지만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글자들을 내뱉어본다.  

살아야만 한다면, 잘 살고 싶다고. 그 살아야만 하는 삶을 선물해 준 오빠를 위해서라도 나는 잘 살고 싶다고.


“우리는 이렇게 살아남았어. 나도 너도. 그리고 살아남은 인간에게는 살아남은 인간으로서 질 수밖에 없는 책무가 있어. 그건, 가능한 한 이대로 확고하게 여기에서 살아가는 거야. 설령 온갖 일들이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해도.” - 무라카미 하루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37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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