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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Apr 17. 2024

자랑스러운 동생이 될게

제5장. 오빠가 내게 남겨준 것들

떠나간 이들을 위하여, 남겨진 이들에게

초안, 날 것 그대로의 문장들

오빠. 가끔, 내게 주어진 삶이 버겁지만, 이 삶을 포기할 순 없어서 간신히 붙들고만 있을 때가 있어. 그럴 때면, 힘겹게 쥐고 있는 것들을 다 놓아버릴까, 그냥 나 편한 대로 엉망진창으로 살아볼까, 그렇게 생각해곤 해. 그러다가도, 동생 자랑을 하고 다녔다는 오빠 생각을 하며 마음을 다시 고쳐먹어. 오빠한테 자랑스러운 동생이 되고 싶어서. 살아생전 그랬던 것처럼, 하늘에서도 내 자랑 좀 하고 다녔으면 해서.


자랑스러운 동생이 될게


서로를 향한 믿음

 어렸을 때부터 오빠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우리 오빠는 뭐든 잘 해낼 사람이라고. 오빠가 고3 때 수능을 볼 때도, 그리고 그 수능에서 아쉬운 결과가 나와 재수를 할 때도, 군대를 갈 때도, 취업 준비를 할 때도, 직장 생활을 할 때도. 오빠를 좋아할 때도, 오빠를 미워할 때도, 사이가 좋을 때도, 사이가 멀어졌을 때도. 마음 한편에는 언제나 ‘어련히 잘하겠지’라는 굳은 믿음이 있었다. 그 마음은 냉소적인 무관심이 아닌, 굳건한 믿음이었다. 언제나 잘해왔던 오빠이기에, 언제나 그랬듯 잘 해낼 거라고. 본인은 만족하지 못할지라도, 오빠가 해낸 것들은 다른 이들이 보기엔 언제나 대단한 것들이었기에.

 오빠가 세상을 떠나고, 오빠가 남긴 자취를 훑어가며 오빠 또한 나를 굳게 믿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넌 잘 해낼 거야.’, ‘널 믿어’와 같은 낯간지러운 말은 오빠에게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하지만 타인에게 듣는 오빠는, 언제나 나를 믿어주고 있었다. ‘우리 동생은 뭘 해도 잘할 애라고’. ‘알아서 잘할 애니까, 쟤는 별로 걱정이 안 된다고’.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오빠가 날 믿고 있을 거라고는. 오빠에게서 듣는 말은 칭찬보다 비판이 더 익숙했다. 그래서, 오빠가 내가 이뤄낸 것들을 인정해 주고, 내가 이뤄낼 것들을 믿고 있었다는 걸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다.

 오빠가 떠나간 뒤에서야 알게 되었다. 우리는 서로를 향해 같은 믿음을 품고 있었다는 것을. 나도 오빠도, 낯간지러워서 서로를 향해 ‘믿어’라는 그 두 글자를 내뱉지 못했지만 마음속에서는 그 누구보다 서로를 인정해 주며 믿고 있었다는 것을. 오빠를 동경해 왔던 내겐, 오빠에게 그토록 인정받고 싶어 했던 내겐, 오빠의 믿음이 너무나 크게 다가왔다.

 너무 늦게 알아버렸지만, 날 향해 그렇게 굳건한 믿음을 보내주던 오빠는 떠나갔지만, 남아있는 나는 여전히 그 믿음을 지키고 싶었다. 어디서든, 무엇을 하든 잘 해낼 애라는 오빠의 그 믿음을. 그리고 여전히 믿고 있다. 우리 오빠는, 언제나 잘 해왔듯 거기서도 잘하고 있을 거라고.



오빠를 자랑스러워했던 나와, 나를 자랑스러워했던 오빠.


 내게 오빠는, 언제나 자랑스러운 사람이었다. 누군가 오빠를 물어온다면 괜스레 어깨가 으쓱해져서는 ‘우리 오빠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자랑하곤 했다. 언제나 자랑스러웠다. 오빠는 이런 대학의 이런 학과를 나와서 지금은 어디서 일하고 있다고. 그리고 이런 것도, 저런 것도 해주는 오빠라고. 오빠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언제나 고개를 끄덕이며 오빠를 칭찬했다. 그리고 나는 그 칭찬을 들으며 괜히 어깨가 으쓱해지는 철부지 동생이었다.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만한 가족으로 인해 내 가치를 높이려는 욕심 따위가 아니었다. 그저 순수한 마음으로 오빠가 이뤄온 것들이 자랑스러웠다. 내가 자랑스러워하는 오빠를, 누군가 같이 칭찬해 주는 것 자체가 좋았다. 부러 어디에 꺼내보이지 않아도 자랑스러운 오빠였고, 어디에 꺼내 보여도 자랑스러운 오빠였다. 오빠가 싫든 좋든, 그 감정을 떠나 오빠는 언제나 내 자랑거리였다.

 내 기억 속 오빠는 무뚝뚝하기만 했다. 그리고 누구를 칭찬하고 자랑하는 걸 본적이 드물다. 타인을 평가할 때 기준도 높고 꽤나 냉정했던 오빠였다. 그래서 오빠 눈에 비친 내 모습은, 언제나 부족한 동생인 줄만 알았다. 부러 남들 앞에 꺼내 보일 일이 없는, 꺼내 보여도 자랑스러울 만할 게 없는 그런 동생. 그러나 내가 보지 못했던, 몰랐던 오빠는 밖에 나가서 동생 자랑도 하고 동생을 자랑스럽게 여기던 오빠였다. 처음 알게 된 건 오빠의 장례식 장이었다. 차마 빈소에서는 마음 놓고 울지 못해 비상구 쪽에서 울분을 쏟아내고 있는 내게 오빠의 동료분은 두 손을 붙잡아주며 말했다. 오빠가 동생 이야기를 참 많이 했다고. 참, 동생을 기특하게 여겼다고. 동생 자랑을 할 때 오빠가 참 뿌듯해 보였다고. 오빠의 동생 칭찬은, 당사자인 내 귀에 가장 늦게 들어와 버렸다. 관심도 없는 줄 알았는데, 내가 피땀 흘리며 일군 것들이 오빠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줄 알았는데, 자랑은커녕, 욕이라도 안 하고 다니면, 한심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여겼는데. 고맙다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나를 자랑스럽게 여겨줘서 고맙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은데, 마음을 전하고픈 오빠는 이미 세상을 떠난 후였다. 고맙다고 말하면, 낯부끄러워 무심하게 툭 내뱉을 오빠가 없었다. 그저 하늘을 향해, 그리고 내 마음속에 살아가고 있는 오빠에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오빠의 반응은 오로지 내 상상에 맡긴 채. 내게 오빠가 자랑스러운 사람이었듯, 나 또한 오빠에게 자랑스러운 사람이었다. 이 또한 서로는 모르는, 같은 마음이었다.

지난날들처럼, 오빠는 또 내가 안 보이는 곳에서 내 자랑을 하고 다니는 중일까.

여전히 오빠는 내 자랑이듯, 나도 여전히 오빠의 자랑이길.

 오빠가 떠난 지 3년이 지났고, 그동안 내 가족사항을 묻는 숱한 사람들을 만났다. 여전히 내게는 몇 초의 정적이 필요하다. 오빠가 있다고 말하기에는, 그들에게 오빠가 머물다 간 자리를 설명하고 싶지 않아, 마치 오빠가 어딘가에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숱한 거짓말을 해야 한다. 그리고 오빠가 없다고 말하기에는, 내가 오빠의 존재를 지워버리는 것 같다. 이에 대한 숱한 고민을 했고, 숱한 대답을 했다. 3년이 지난 지금도 언제나 망설이지만, 언제나 내 선택은 같다. 오빠를 지워버릴 바에는 거짓말쟁이가 되기로. 처음에는 그렇게 떠나간 오빠를 살아있는 사람처럼 말하고 나면 죄책감이 밀려왔다. 때로는 비참하기도, 미안하기도 했다. 나는, 오빠의 죽음이 부끄러운 건가. 언제나 내 자랑이었던 오빠가, 이제는 내게 부끄러운 존재가 되어버린 건가.

 결론을 먼저 적자면, 오빠는 여전히 내게 자랑스러운 존재이다. 오빠가 사회에서 터부시 하는 자살을 했다고 해서 부끄럽지 않다. 오빠는, 언제나 그랬듯, 여전히 내게 자랑스러운 존재이기만 하다. 내가 망설였던 이유는 오빠의 마지막 선택이었던, 자살이 부끄러워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내가 그들에게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아무것도 모르는 그들이 오빠가 내리는 선택에 이런저런 판단을 내리는 게 싫어서, 아무것도 모르는 그들이 나를 동정의 눈으로 쳐다보는 게 싫어서 그러는 것일 뿐이었다.

오빠가 생에 마지막으로 내린 선택이 자살일지라도, 난 여전히 오빠가 자랑스럽다. 오빠가 30년 동안 이 세상에서 일구어 온 것들도, 그리고 오빠가 30년 동안 오빠의 안에서 일구어 온 것들도. 오빠의 졸업장도, 오빠의 명함도 자랑스럽고 오빠의 가치관도, 오빠의 생각들도, 오빠의 취향도, 오빠가 남긴 삶의 자취도 여전히 내게는 너무 자랑스럽기만 한 것들이다. 감히 내가 좋다, 싫다, 혹은 옳다, 그르다 가치판단을 하지 못할 정도로. 여전히 오빠는 내 자랑이다. 오빠의 선택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를 하며 오빠의 마지막 선택을 더럽히지 않을 사람을 만난다면, 오빠의 자살 또한 부끄럽지 않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오빠는 여전히 내게 단 한 점의 부끄러움조차 없는 사람이다. 조심스러운 이야기이지만, 그리고 오빠의 선택을, 자살을 미화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내일이 무서웠지만 그렇다고 오늘이 마지막 날로 만들 용기조차 없던 내겐 오빠의 선택이 단호함과 용기로 비칠 뿐이다. 더럽혀질 바엔 아픈 순수로 남기를 택한 사람, 휘어질 바에는 단단하게 부러지길 택한 사람. 본인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고통스럽기보다는 본인이 모든 짐을 짊어지고 떠나기를 택한 사람.


 오빠의 죽음은 내게 커다란 상처였고, 그 상처는 평생 지울 수 없는 커다란 흉터로 남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오빠는 내게 자랑스러운 사람일 뿐이다.


 오빠의 죽음을 겪고, 남아있는 사람들의 고통을 알아버려 내 삶에 죽음이라는 선택지는 없어졌다. 죽음이라는 선택지가 없어져서 인지, 삶이라는 고해는 조금 더 짙어졌고, 깊어졌다. 그 고해 속 여전히 헤맬 때가 많다. 여전히 삶은 내게 너무 어렵고, 버겁기만 하다. 그럼에도 이 고해를 버리고 떠나갈 수 없어서 가끔은, 그 고해 대신 내 손에 쥐고 있는 것들을 다 내던지고 싶을 때가 있다. 믿음직스러운 팀원으로서의 직장인, 든든한 막내딸로서의 가족 구성원, 내 생계는 내가 꾸려나가야 하는 어른으로서의 나. 내 앞에 붙는 형용사들을 모두 내던지고 그저 내 이름 석자의 명사로 존재하는 삶. 세상이 내미는 잣대는 집어 던지고 그저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사는 삶. 그런 삶을 살면 지금보다 자유롭지 않을까, 지금보다 행복하지 않을까, 하며 쥐고 있는 모든 것들을 내던지는 삶을 꿈꿀 때가 있다.

 그러다가도 결국은 손에 쥐고 있는 것들을, 내 이름 앞에 붙는 숱한 형용사들을 놓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여전히 오빠는 내게 자랑스러운 사람이듯, 나도 언제까지나 오빠에게 자랑스러운 동생이 되고 싶어서. 내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를 믿으며 내 자랑을 하고 다녔던 지난날의 오빠처럼, 하늘에서도 나를 믿어주며 내 자랑을 하고 다닐 것 같아서. 그리고 오빠가 그래주길 바라서. 오빠에게 언제까지나 자랑스러운 동생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하나를 붙잡고 묵묵히 고해를 헤엄쳐 갈 뿐이다. 구명조끼 마냥 그 마음 하나를 붙잡으며. 하늘에서 오빠가 내려보기에 미소 지을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어서, 하늘에서도 주변 사람들에게 내 자랑을 해주길 바라는 마음에, 여전히 나라는 부족하기만 한 사람을 믿어주길 바라는 마음에.

수고했어요.

정말 고생했어요.

그댄, 나의 자랑이죠.

              - <하루의 끝>, 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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