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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May 02. 2024

<떠나간 이들을 위하여 남겨진 이들에게>를 마치며

남겨진 이들에게 보내는 마지막 진심

떠나간 이들을 위하여 남겨진 이들에게

초안, 날 것 그대로의 문장들


오빠. 오빠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첫 번째 브런치북을 마무리했어. 카페에 앉아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쓸 때마다 울었어. 오빠가 애틋하고, 오빠의 죽음이 비통하고, 오빠와 관련되어서는 너무도 못났던 내가 미안해서 무거운 발걸음으로 카페를 향했어. 참으려고 해도 새어 나오는 소리 없는 울음을 쏟아내며 글을 쓰고, 눈이 새 빨개진 채로 카페에 나오곤 했어. 하지만 회차가 쌓일수록 점점 단단한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는 나를 발견했어. 눈물을 흘리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 많아졌어. 아마, 이 글을 적으면서 나는 이리저리 엉켜있던 마음을 정리할 수 있었나 봐. 그리고 늘어나는 회차 속에서 나는 오빠를 잘 보내주는 과정을 밟아갔나 봐.


고마워 오빠. 서툴고 부족하기만 한 내 글솜씨로는 차마 브런치라는 플랫폼에서 ‘작가’라는 귀한 정체성을 얻지 못했을 거야. 오빠 덕분에 이렇게 글을 잘 쓰고, 글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플랫폼에서 한 명의 ’작가‘로서 글을 쓸 수 있었어. 그리고 이곳에 글을 쓰면서 ’작가‘라는 오랜 꿈에 다가설 수 있었고, 내 삶에 글쓰기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깨달을 수 있었어. 모두, 오빠가 아니었다면 손에 쥘 수 없었던 것들일 거야. 오빠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토록 간절하게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었을 테고, 여전히 그저 ’작가‘를 막연한 꿈으로서만 여기며 무의미한 하루하루를 살아갔을 거야. 정말 고마워 오빠.


 안녕하세요. 윤슬입니다. 제게는 너무나도 소중한 첫 브런치 북인 <떠나간 이들을 위하여, 남겨진 이들에게>가 마무리되었습니다. 마지막 화였던 25화, ‘자랑스러운 동생이 될게’를 발행하기 전까지는 25화를 끝으로 <떠나간 이들을 위하여, 남겨진 이들에게>를 완결 내려고 했어요. 정식으로 출판한 책도 아니고, 누군가에게는 ‘고작’ 브런치 북일뿐인데, 거기에 거창하게 ‘마치는 글’로 끝내는 게 낯부끄럽더라고요. 그런데, 25화를 발행하고 나서 결심이 들었어요. ‘마치는 글을 써야겠다.‘ 부족하기만 글솜씨로 서툴게 연재를 해나간 이 글을 읽어주는 소중한 독자분들께, 그리고 혹시라도 이 글을 읽고 있는 남겨진 유가족분들께 꼭 드리고 싶은 말이 있었거든요.


일단 먼저, 한없이 부족한 제 글을 읽어주신 독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처음에는 큰 기대 없이 브런치 연재를 시작했어요. 먼저 떠나보낸 오빠에 대한 이야기는, 제게는 너무도 간절히 세상에 하고픈 이야기였어요. 그러나 다른 누군가가 보기에는 가볍게 읽기에는 너무 무거운, 그리고 아픈 감정이 가득한 글이라고 생각했어요. 글을 잘 쓰시는 분들이, 흥미로운 주제에 관하여, 이목을 끄는 제목으로 발행하는 글들이 쏟아지는 이 브런치라는 플랫폼에서 제 브런치 북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글이었어요. 그래서 독자들의 반응에 일희일비하지 말자, 내가 그토록 간절하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것에 집중하자, 매회마다 다짐했던 생각이었어요. 브런치북 제목을 지을 때도, 매회차 제목을 정할 때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 만한 자극적인 제목보다는, 어떤 단어가 오빠에 대한 내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어요.


 <떠나간 이들을 위하여, 남겨진 이들에게>. 제 브런치 북의 제목은 어떻게 보면 심심하기 그지없어요. 제목만 봐서는 자살 유가족의 에세이를 다룬 이야기인지 드러나지도 않고요. 그러나 ‘조회수’라는 자기만족을 위해 오빠를 먼저 떠나보낸 제 아픔을, 그리고 사랑하는 이들을 먼저 떠나보내야만 했던 자살 유가족들의 아픔을 자극적인 단어로 포장하고 싶지 않았아요. 오빠의 자살을 겪으면서도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한 명의 공직자로서 살아가는 제 이야기에, 세상 사람들이 흥미를 끌만한 제목들은 많았어요. 하지만, 먼저 떠나간 이들을 위해서라도 남겨진 이들이 잘 살아야 한다는 제 생각을 가장 잘 표현한 이 제목을 선택했어요. 많은 이들의 선택을 받지 못할지라도, 남겨진 이 단 한 명이라도 이 글을 통해 용기를 얻고 위로를 얻는다면 이 글은 그 가치를 다 한 것이라는 생각에서요.


단 한 회차도 쉬이 써진 글이 없었고, 가벼운 마음으로 쓴 글이 없었어요. 오빠를 향한 진심과 떠나보내고야 깨달았던 사랑을 꾹꾹 눌러 담았던 글이었지만, 투박하기 그지없었어요. 유명한 소설가의 글을 읽다가, 문득 욕심이 났어요. ‘나도 저렇게 아름다운 문장을 적고 싶다.’ 물론 글을 잘 쓰시는 분들은 아름다운 문학적 표현으로 감정을 진하게 전달할 수 있겠지만, 글쓰기 초심자인 제게는 유려한 문장을 쓰려고 할수록, 아름다운 문장을 쓰려고 욕심부릴수록 진심이 덜어지더라고요. 문학적으로 아름다운 문장을 만들어내려고 할수록 제 감정을 꾸며내려고 하고, 유려한 글을 쓰려고 할수록 사건을 미화하려고 드는 절 발견했어요. 그렇게 완성한 글은 제가 처음 적어 내린 글보다는 완성도가 높을 순 있더라도, 이 글을 쓰려고 했던 진짜의 목적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어요. 그래서, 아름다운 문장에 대한 욕심이 생겨 꾸며내고 미화한 부분들은 단호하게 지워냈어요. 투박하더라도 그때의 감정을 그대로, 그때의 사건을 진솔하게 적어내려고 했어요. 거칠고 투박한 글이라도 오빠에 대한 진심을 투명하게 담아낼 수만 있다면, 남겨진 이에게 조금의 울림이라도 줄 수 있다면 그걸로 이 글의 목적은 달성한 거였으니까요.


 지표에 대한 욕심을 내려놨기 때문일까요. 독자님들이 남겨주시는 흔적들이, 숫자로 보이지 않고 한 명의 사람으로 보였어요. 구독자 수가 ‘1’ 늘어난 것이 아니라, 내 글에 공감을 해주는 사람이 ‘한 명’ 늘어났구나. 라이킷 수가 ‘20’을 돌파한 게 아니라, 내 글을 읽고 나서 공감을 해주고, 응원을 보내주는 사람이 ‘스무 명’이나 되는구나. 조회수가 ‘40’이 아니라, 자그마치 ‘마흔 명’의 사람들이 내 글을 읽어주었구나. 브런치가 보여주는 숫자는 성과나 성적이 아닌, 독자님들의 공감과 응원으로 다가왔어요.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긴 호흡으로 달려본 적이 없는 제가, 자그마치 26개의 글을 지치지 않고 적어 내릴 수 있었던 건, 독자님들의 크고 작은 응원들 덕분이었습니다. 여태껏 <떠나간 이들을 위하여, 남겨진 이들에게>를 읽어주시고, 라이킷을 남겨주시고, 구독해 주신 독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겨진 이들에게 애틋한 진심을 전합니다.


사랑했던, 그리고 소중한 이를 잃고도 여전히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남겨진 이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씩씩하게 버티는 하루를 보냈든, 떠나간 이가 사무쳐 무너지는 하루를 보냈든 정말 고생 많았다고. 이기주 작가님의 <언어의 온도>라는 책에서 이런 말이 나와요. ‘아파 본 사람만이 더 아픈 사람을 알아본다고.‘ 남들 눈에는 똑같아 보이는 하루일 테지만, 누군가를 떠나보낸 이들에게는 그 똑같아 보이는, 무탈한 하루조차 무너진 세상을 살아가는 것일 테죠. 떠나간 이를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절망감에 허우적거려도, 사무치는 그리움에 숨이 막혀와도, 더 잘해주지 못한 죄책감에 몸부림쳐도 괜찮아요. 무언가를 상실했을 땐, 충분한 애도 기간이 필요하니까요. 얼마나 아프고, 얼마나 힘든지 남겨진 이들의 상처를 아니까 힘내라는 말이 쉬이 나오지 않아요. 너무 힘들 땐, 힘내라는 말조차도 버겁게 느껴지니까요. 남겨진 당신이 두 다리로 씩씩하게 서 있든, 두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아있든 괜찮아요. 이미 너무 아픈 상처를 가지고 있는 스스로를 너무 다그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다만, 짧든 길든 우리 곁에 머물다가 준 떠나간 이들의 ‘상실’보다는 그들과 함께했던 ‘추억’을 기억했으면 해요. 내 손에 만져져야만 함께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떠나간 이들에 대한 추억과 함께라면, 언제 어디서든 그와 함께 있을 수 있으니까요. 언제까지나 우리와 함께 있으면서, 함께 늙어갈 수 있으니까요. 떠나간 이들을 남겨진 우리가 기억하는 한, 언제까지나 우리의 마음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그들을 위하여 마음속 한 공간을 마련해 두기로 해요. 쉬운 일은 아니지만, 마련해 둔 공간이 눈물로 가득 차기보다는, 사랑으로 가득 차길 바라요. 떠나간 이가 내 마음속에 머문다면, 그가 머무는 공간이 아프기보다는 따뜻한 공간이기를 바라니까요.


이 글을 적으면서 단 한 번도 잊지 않은 말로 이 글을 마치려고 해요. 떠나간 이를 상실한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무척이나 고된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웃으며 오늘을 채워갔으면 해요. 떠나간 이들이 마음 편하게 지내기 위해서는, 남겨진 우리가 씩씩하게 웃으며 살아가야 할 테니까요. 남겨진 우리가 잔잔한 미소를 띠며 오늘을 살아가야, 떠나간 이들도 잔잔한 미소를 띠며 우리를 바라볼 수 있을 테니까요. 떠나간 이들을 위해서라도, 남겨진 우리의 삶을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떠나간 오빠를 위해, 떠나간 이름 모를 사랑하는 이를 위하여

남겨진 나에게, 그리고 남겨진 우리에게


윤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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