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자살 유가족으로 세상에 나아가며(3)
초안, 날 것 그대로의 문장들
오빠. 여전히 후회해. 그게 마지막인 줄 알았다면 그러지 말걸. 그렇게 매정하게 외면하지 말 걸, 그렇게 퉁명스럽게 대하지 말 걸.
그런데, 내가 후회하면서 마음 아파하면 오빠도 마음이 편치 않을까 봐 다시 마음을 다잡아. 후회하는 만큼 더 오빠를 오래 기억하자고. 웃으면서 오빠의 웃는 얼굴을 기억하고, 웃음소리를 기억하자고.
부질없는 후회
유가족으로 세상에 나아간 초기에는 ‘죽음’, ‘자살’ 같은 단어를 들으면 심장이 곤두박질쳤다. 도저히 표정관리가 안 되고, 모든 사고가 멈출 만큼.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오빠에 대한 마음과 생각을 차분히 정리해 가며 상실에 대한 슬픔은 많이 나아졌다. 이제는 제법 오빠 이야기도 웃으면서 할 수 있고, 세상을 살아가며 죽음과 관련된 것들을 마주할 때도 흔들리지만 무너지지는 않을 수 있게 되었다. 상실에 대한 아픔이 많이 좋아진 지금도, 여전히 괜찮아지지 않는 게 하나 있다. 오빠와의 마지막 기회를 놓쳐버린 것에 대한 후회.
오빠가 세상을 떠나기 두 달 전, 2020년 추석이었다. 집을 나간 채로 독기가 바짝 올라 공부를 하고 있던 나에게, 엄마와 오빠가 찾아왔다. 가족끼리 추석을 같이 보내자고 엄마에게 연락이 왔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가족에 대한 원망이 깊었기에, 그냥 공부를 하겠다고 답장을 보낸 뒤 핸드폰을 덮었다. 거절의 답장을 보낸 뒤 다시 보낸 카톡에 답장도 없고, 전화도 받지 않았던 나였지만 엄마와 오빠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내가 있던 곳까지 와서 한참을 기다리다가 다시 돌아갔다. 그리고 그날 밤, 오빠에게 전화가 왔다. 부모님이 많이 걱정하니까 가출 청소년 놀이는 거기까지 하고 그만 집으로 돌아오라고. 내게는 너무 힘든 상황이었지만 그 상황을 가벼이 여기는 오빠에게 화가 났다. 오빠가 건네오는 말에 퉁명스럽게 대답을 한 후 전화를 마무리해 버렸다.
오빠가 떠나고 나서야 그때가 살아있는 오빠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마지막 기회였다는 걸, 오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마지막 순간이었던 걸 깨달았다. 엄마의 연락에 안 가겠다고 했던 그때, 오빠에게 퉁명스럽게 말하던 그때, 그때 당시에는 내 선택에 후회가 없었다. 나는 가족이 보고 싶지 않았고, 오빠와의 대화가 언짢았다. 당연한 선택이었고, 틀리지 않았던 행동이었다. 그러나 오빠가 떠나고 난 후, 그 선택들은 내 인생에 가장 큰 후회로 남은 선택이 되었다. 그때 그러지 말걸. 오빠 얼굴 한 번이라도 더 볼걸. 통화하면서 오빠 안부를 한 번만이라도 물어볼걸.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해줄걸. 너무 보고 싶은데 더 이상 볼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리는 걸 알았다면, 그렇게 매몰차게 거절하지 않았을 텐데. 더 이상 듣고 싶어도 들을 수 없는 목소리가 되어버릴 걸 알았다면, 그렇게 무성의하게 오빠 목소리를 흘리지 않았을 텐데. 오빠가 그 어떤 허무맹랑하고 영양가 없는 말을 쏟아내더라도 하루종일 듣고 싶다. 오빠가 두 눈썹을 사정없이 구기며 삐죽하게 쳐다본대도, 그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다.
그게 마지막인 줄 알았다면, 그러지 말걸. 부질없는 ‘만약에’와 후회들이 나를 괴롭혔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후회한다고 멀리 떠난 오빠가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후회한다고 놓쳐버린 기회가 돌아오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도저히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없었다. 부질없는 후회들이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모두 내 탓 같았다. ‘내가’ 오빠와의 마지막 기회를 외면한 것만 같았다. ‘내가’ 어리석은 선택을 해서 이렇게 한스러운 후회를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때 오빠와의 마지막 기회를 놓친 ‘내가’ 용서하지 못할 만큼 원망스러웠다.
나를 돌보지 못한 채, 뒤틀린 관계가 시작됐다.
그렇게 후회 속에 살면서, 소중한 사람들을 만날 때면 언제나 불안했다. 이게 마지막이면 어떻게 하지. 지금은 이렇게 같이 있지만, 만약 돌아가는 길에 사고가 나서 이게 이 사람을 볼 수 있는 마지막이 되어버리면 어떻게 하지. ‘마지막’에 대한 불안함은 공포가 되어 나를 잠식했다. 사랑하는 이들이 내 눈앞에 보이지 않으면 언제나 불안했다. 그리고 불안한 시간들이 길어지면 공포스러웠다. 무서워, 이게 마지막일까 봐. 이렇게 헤어지고 나면 영영 보지 못하게 될까 봐. 나는 또, 마지막인 줄도 모르고 마지막 기회를 놓친 것일까 봐. 이런 공포는 유독 가족들을 대할 때 나를 거세게 흔들었다.
상실에 대한 트라우마가 내 안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오빠에 대한 상실이라는 씨앗 하나는 내 불안과 공포를 먹고 내 안에서 무럭무럭 자라났다. 그렇게 몸집을 키운 트라우마는 비정상적인 관계를 만들어냈다. 가족들과 한 집에서 살 때는, 가족이 어딘가 외출을 하기만 해도 무서웠다. ‘외출했다가 사고가 나면 어떡하지. 그렇게 영영 내 곁을 떠나버리면 어떡하지. 못해준 게 너무 많은데. 아직 못해준 말이 너무 많은데.’ 함께 시간을 보내다 각자 방으로 들어가 있을 때면, 그조차 두려웠다. 저 방 안에서 혹시, 나쁜 생각을 하고 있으면 어떡하지. 혹시, 지금 저 방 안에서 생명이 꺼져가는 중이면 어떡하지. 가족이 내 눈앞에 없을 때마다 가족을 영영 잃어버린 듯한 공포감에 두려웠다. 직장 때문에 가족과 떨어져서 살 때는 그 정도가 심해졌다. ‘부모님께 아무런 안부인사도 못 전했는데, 만약에 오늘 부모님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하며 불안했고, 본가에 갔다가 다시 자취방으로 돌아올 때면 ‘이게 부모님과의 마지막 만남이면 어떡하지. 나는 아직 해주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하는 생각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가족들이 만나자고 약속을 잡아왔는데, 그날 이미 잡힌 선약이 있는 날이면 공포는 더욱 극심해졌다. 이게 마지막 기회면 어떡하지. 내가 또 마지막 기회를 놓쳐버린 건 아닌가.
상실에 대한 공포는 가족이 옆에 있을 때도 날 괴롭혔다. 가족들과 다툼이 생길 때, 도저히 내 감정과 의견을 나타내지 못했다. 사람들은 각자만의 세계가 있고, 같이 살아가다 보면 그 세계가 혼재되어 갈등은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갈등을 겪을 때마다 나는 무서웠다. ‘만약에 내가 이 사람한테 모난 말을 했는데, 그 시간이 이 사람과 함께할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었다면 어떡하지. 그렇다면 그 모난 말을 했던 선택을 난 평생 후회할 것 같아.’ 그렇게 상실에 대한 공포를 안고 살아가며 언제부턴가 나는 절대적인 ‘을’이 되었다. 내가 원하는 것보다는 가족들이 원하는 게 더 중요했다. 내 시간보다는 가족과의 시간이 더 중요했다. 내 생각보다는 가족의 생각이, 내 감정보다는 가족의 감정이 더 중요했다. 가족과의 관계에선 언제나 나보다 ‘가족’이었다. 그렇게 비정상적으로 뒤틀린 관계가 이어졌다.
그렇게 뒤틀린 관계 속 나는 점점 지쳐갔다. 내 삶이 점점 사라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행복하게 채워가야 할 가족과의 시간들은 내게 행복이 아닌 족쇄를 채웠다. 사랑하고 싶은 사람들이 아닌, 사랑해야 하는 사람들이 되어버렸고, 같이 보내고 싶은 시간이 아닌, 같이 보내야만 하는 시간이 되어버렸다. 점점 가족이 부담이 되어갔다. 그렇지만 놓을 수도 없었다. 가족이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그렇게 나는 질식해 갔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최선을 다할 뿐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제는 상실에 대한 트라우마를 많이 극복했다. 물론 완벽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정상적인 사고가 가능할 정도가 되었다. 나와 가족 사이에 적당한 균형을 찾게 되었다. 그전에는 상실에 대한 불안과 공포는 내 모든 것들을 송두리째 날려버리는 태풍이었다. 한 번 휩쓸고 가면 내 내면은 쑥대밭이 되곤 했다. 불안과 공포는 여전히 나를 흔들지만, 그래도 적당히 불다가 그칠 바람이 되었다. 그 바람을 맞으며 점점 단단해졌고, 자라났다. 가족은 함께 ‘해야 하는’ 존재가 아닌 함께 ‘하고 싶은’ 존재가 되었다. 많은 시간 속 아파하고 고민한 끝에 나만의 결론을 내렸다. 두려워해봤자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되어있다고. 그러니, 나는 그저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한 치 앞도 모르는 세상 속 내가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라고.
첫 번째로 노력한 건 ‘담담해지기’였다. 나를 둘러싼 세상 속 일어나는 일은 두 가지로 나뉜다. 내 손안에 있는 일과, 내 손 밖에 있는 일. 내가 오늘 부모님께 전화를 드릴지, 드리지 않을지. 내가 오늘 가족들에게 감정적으로 대할지, 이성적으로 대할지. 이것들은 모두 내 손안에 있는 일이다. 하지만 오늘 부모님에게 사고가 나는 것, 언니가 큰 일에 휩싸이는 것. 이런 것들은 내가 막는다고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내 손안에 있는 일이 아닌 것이다. 내 손 밖에 있는 일을 걱정하고 두려워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내 손 안의 일뿐이다.
상실에 대한 공포가 찾아올 때면 작게 심호흡을 하며 차분하게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만약, 이게 마지막이라면 내 손안에 있는 일은 뭘까. 아무런 후회를 남기지 않는 선택은 없으니, 내가 조금이라도 덜 후회할 수 있는 선택은 뭘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그렇게 두려움과 맞서 싸워갔다. 부모님과 다정한 안부를 조금 더 자주 나누려고 하고, 언니와의 즐거운 시간을 좀 더 자주 가지려고 노력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내 손 안의 일들에 집중해 갔다.
그리고 상실에 대해 조금은 더 냉정하게 생각하려고 했다. 상실이 이리도 무서운 건, ‘내 슬픔’과 ‘내 후회’ 때문이었다. ‘내가’ 슬프니까, ‘내가’ 후회되니까. 어쩔 수 없이 또 다른 상실을 맞이하더라도 내가 그 사람과 함께 보냈던 시간들을 행복하게 추억하고, 그 사람과 나누었던 시간들을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아픈 기억이 아니라 행복한 기억이 되는 것이었다. 결국 상실에 아파할지, 담담할지는 모두 ‘내’ 선택이었다.
두 번째로는 균형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나와 가족 사이 우선순위의 균형을. 솔직히 나는, 내 삶의 우선순위 1순위가 ‘나’인 사람이다. 그 우선순위를 억지로 끼워 맞추려고 하니까 나도, 가족과의 관계도 모두 병들어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나와 가족 간의 관계가 나한테 행복이어야 가족이 소중한 존재가 될 수 있었다. ‘의무’로 점철된 관계는 행복일 수가 없었다. 나중에 돌이켜봤을 때 아팠던 시간과 행복했던 시간. 의무로 ‘엮인’ 시간과 행복으로 ‘만들어간’ 시간. 우리를 살아가게 만드는 시간은 모두 후자이다. 전자의 시간들은 우리를 병들게 만들 뿐이었다.
의무감을 벗어던지고 나를 먼저 돌봤다. 그리고 내 시간들 속, ‘가족’ 시간을 소중하게 마련했다. 그리고 그 시간 만은 가족에게 충실하려고 노력했다. 전에 비해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의 ‘양’은 줄었지만 시간의 ‘질’은 훨씬 올라갔다. 더 진실한 이야기와 마음을 나누는 시간. 가족들과 좀 더 순도 높은 시간을, 더 행복하게 보낼 수 있었다. 내가 행복해야 가족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내 삶의 무게를 거뜬하게 들 수 있어야 가족에게 힘든 일이 있을 때 그 무게를 나눌 수 있었다.
여전히 나는 담담해지려고, 균형을 찾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문제였다. 사람들은 각자 다른 ‘최적의’ 담담함의 정도, 균형의 정도를 가지고 있기에 나도 나만의 정도를 찾아가는 중이다. 나만의 정도를 찾고 나서도 흔들리는 바람에, 더해지는 삶의 무게에 담담함과 균형을 잃을 때도 있다. 그러나 다시 최적의 정도를 맞추려고 노력하고 있다. 삶을 살아가는 동안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해나가야 한다.
상실의 트라우마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두 손을 꼭 붙잡고 말해주고 싶다. 괜찮다고. 당신의 그 아픔은 잘못된 게 아니라고. 당신만의 정도를 찾으려면, 충분히 아파할 시간도 필요한 법이라고. 그 아픈 시간들이 당신에게 소중한 깨달음을 줄 것이고, 당신의 상실에 성숙이라는 열매를 맺어줄 것이라고. 다만, 당신이 그 아픈 시간을 너무 길게 이어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당신에게 딱 맞는 담담함의 정도와, 균형의 정도를 찾아가길 바란다고. 쉬운 일은 아니지만, 당신은 결국엔 찾아낼 수 있을 거라고.
오늘은, 인터넷을 보다 우연히 발견한 웹툰 속 한 장면의 대사로 마무리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