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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Jul 05. 2024

우리는 무엇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었던 걸까

나의 미정이에게 프롤로그


 <나의 해방일지>, 드라마가 종영된 지 거의 2년이 다 되어 간다. 한때 ‘추앙해요’ 열풍을 일으켰던 이 드라마가 한창 붐이었을 때는 손이 안 갔다. 어렸을 때부터 유명하거나 남들이 다 하는 것들은 청개구리 심보처럼 피하던 내 성향 탓이었다. 드라마가 방영되었던 2022년, 주변에서는 만나기만 하면 이 드라마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엄지를 치켜올리며 추천했다. 괜히, 사람들이 너무 추천하니까 보기가 싫어졌다. 사람들이 밥 먹듯이 말하는 ‘추앙해요’. 온전히 좋아하기도 힘든 연인 관계에서 ‘추앙’한다니. 괜스레 시니컬해졌다. 한낱 드라마 때문에 ‘추앙’이라는 단어가 너무 쉬이 쓰이는 것 같아 마음에 들지 않기도 했다.


 그렇게 많은 이들의 ‘추앙’을 받았던 <나의 해방일지>가 끝나고 1년 뒤, 유튜브를 통해 우연히 나의 해방일지 클립 영상을 봤다. 2분 남짓한 짧은 영상이었다. 표출되었던 제목은 ‘하루 5분만’. 5분이 무슨 의미일까, 하며 무심코 영상을 틀었다.


“하, 인생이 이래.

좋다 싶으면 바로,

하루도 온전히 좋은 적이 없다.”


씁쓸해하는 남자 주인공(손석구 님)에게 여자 주인공(김지원 님)이 덤덤하게 말했다.


“하루에 5분, 5분만 숨통 트여도 살만하잖아.

편의점에 갔을 때 내가 문을 열어주면 ‘고맙습니다’하는 학생 때문에 7초 설레고,

아침에 눈 떴을 때 ‘아, 오늘 토요일이지’ 10초 설레고,

그렇게 하루 5분만 채워요.

그게, 내가 죽지 않고 사는 법“


이거다.


 하루를 버텨가는 게 버겁기만 한 시기였다. 자기 전에는 일어나면 또, 버거운 하루가 시작되겠구나, 하는 부담에 쉬이 잠에 들지 못했다. 꿈으로 덧입혀진 새벽이 씻겨 내려가도, 버거움만은 내게 꼭 달라붙어 있었다. 모두가 잠들어있는 깜깜한 새벽에 일어나 45분 동안 필사적으로 부정적인 생각을 덜어내고 긍정적인 생각을 덧입혀야 그나마 하루를 버텨낼 용기가 나던 시절이었다. 물론 그렇게 필사적으로 덧입힌 용기는 직장에서 눈 녹듯 사라져 버리곤 했다. 그런 버거운 시기를 꾸역꾸역 살아내던 내게, 저 대사는 작은 희망이었다.


 하루를 온통 행복으로 가득 채우라고 하면 너무 힘든 일이어서 도전도 못 해볼 것 같았다. 하지만 한 번에 5분도 아닌, 찰나의 몇 초들을 모아 5분 정도는 채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를 스쳐 지나가는 찰나의 행복들을 세어 보았다. 따뜻한 햇살에 괜스레 웃음이 지어지는 삼초. 출근 준비를 하며 본 영상에서 우연히 들은 문장을 곱씹으며 위로를 얻었던 십 초. 곧 퇴근한다는 설렘으로 5시 59분에 카운트를 하던 60초. 드디어 아무도 나를 힘들게 하지 않는 나만의 공간으로 들어간다는 생각에 즐거운 마음으로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던 십 초. 별 볼 일 없는, 크게 불행하지도 않지만 딱히 행복할 것도 없는 하루라고 생각했던 무미건조한 일상들에 생각보다 행복의 순간들이 많았다.


 그렇게 찰나의 행복들을 움켜쥐기 시작하자 어제와 다를 것 없는 하루가, 어제와는 다르게 따뜻해졌다. 매서운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겨울, 주머니 속에 있는 핫팩 한 개가 온몸을 따뜻하게 데워주진 못한다. 하지만 손안에 느껴지는 온기로 인해 매서운 추위가 조금은 더 버틸 만 해지곤 한다. 야금야금 채워나간 5분의 행복이 그 핫팩 같았다. 나를 에워싸는 시련을 모두 막아주진 못하지만, 고작 손만 데워줄 뿐인 그 5분이 삶을 살아갈 따뜻한 용기를 주었다.


 신기했다, 그리고 궁금했다. 이런 대사를 쓸 수 있는 작가가 만들어내는 세계는 어떤 세계일까. 이 작가가 만들어낸 주인공들은 어떤 인물들일까. 과연 16편의 세상 속에서 작가는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있을까. 그 주, 주말 동안 몰아서 봤다. 각자의 무언가에서 해방하고자 하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에서 내가 보였다. 특히, 본인이 속한 집단에, 사회에, 그리고 본인의 삶에까지 온전히 들어가지 못한 채 부유하는 여주인공 염미정에게 내가 겹쳐 보였다. 남들에게는 차마 말하지 못했던 내 모습을, 내 내면을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본성을 꾹꾹 누른 채 사회가 원하는 모습의 가면을 쓴 채로 살아가고 있었다. 내가 조금만 더 시니컬한 사람이었다면, 내가 조금만 더 사회적 관계와 사회적 시선에 얽매이지 않는 용기가 있는 사람이었다면 염미정 같은 사람으로 살아가지 않았을까. 억지로 웃지도, 억지로 밝은 척을 하지도 않고, 억지로 내 존재감을 드러내려 애쓰지 않고.   


 나도 모르는 나를 알고, 나도 온전히 사랑하지 못하는 나를 온전히 사랑해 주는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선물을 보내왔다. 대본집이었다. 드라마도 다 보고, 드라마 클립 영상도 종종 돌려보는지라, 드라마 내용은 다 안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대본집으로 다시 보는 는 다른 느낌이었다. 영상은 수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연출 기법, 배우들의 연기, 배경 음악 등. 작품에 몰입하기는 좋지만, 그 작품 속 대사에만 집중하기에는 쏟아지는 정보가 너무 많았다. 하지만 대본집은 온전히 텍스트만 있기 때문에 대사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작가가 대사를 통해 전하고 싶었던 의미가 더 깊숙이 내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등장인물들 각자 본인을 막고 있는 무언가를 돌파하며 해방하는 과정을 그린 드라마 속 대사 중 울림이 깊은 것들이 많았다. 불편한 부분이 있지만 어디가 불편한지 몰라서 불편한 상태로만 계속 지내던 내게, 나의 해방일지는 ‘너 이 부분이 불편했던 거야’라고 말해주는 듯했다. 공감되는, 그리고 곱씹어보고 싶었던 대사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 대사를 붙잡고 글을 쓰고 싶었다. ‘맞아, 맞아’ 공감만 하고 끝내고 싶지 않았다. 어떤 부분에서 공감이 되었는지, 왜 공감이 되었는지, 그간 나는 어디가 불편했는지 살펴보고 싶었다.    


 무엇이 나를 구속하고 있는지 아는 것에서부터 해방은 시작된다. 그래야 거기서 벗어날 방법을 찾을 수 있으니까.

나는, 그리고 우리는 무엇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었던 걸까.


내 안의 미정이에게 묻고 싶었다.

무엇이 너를 속박하고 있어서 끈덕지게 달라붙은 가면을 쓰고 살아가고 있냐고.

무엇이 너를 얽매고 있어서 너는 그리도 답답함을 느꼈던 것이냐고.

그리고 그 ‘무엇’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 너는 어떻게 행동할 것이냐고.


미정, 기정, 창희, 구 씨, 현아 등  속 인물들의 해방을 시청자로서, 그리고 독자로서 지켜봤다.

 그리고, 이제는 내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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