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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사랑을 나눠 주세요>

by 나무엄마 지니


요즘 근거리는 버스를 이용하거나 걸어서 간다. 버스 정류장에 섰다. 막둥이 보물 2호나 큰둥이 보물 1호와 종종 이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주차하기가 사나운 곳에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놀러 간 기억이 났다.


막내가 알려준 앱으로 버스노선도 파악됐다. 옆에서는 몇 번 버스가 온다고 말을 해주는 게 여간 신기하고 고마웠다. 와 세상 진짜 좋아졌다.


..


곧 버스가 오겠지. 조금 더 기다리자. 요즘은 배차시간도 빠르지. 그래서 더 좋아. 맞아.



아주 천천히 걸어오시는 할머니와 그 옆을 할머니 속도와 맞춰서 걸어오는 강아지(반려견)는 내 눈에 낯이 많이 익었다. 우리가 10년이 넘도록 키운 강아지 애니와 애니 딸들과 똑 닮아 있었다. (다음에는 진짜 우리 애니 사진을 찾아서 올려봐야겠다.)


할머니가 내게 하고 싶은 말들이 있으신지 나를 보며 버스 정류장 의자에 앉으셨다. 그러며 나와 할머니 그리고 귀엽고 앙증맞게 생긴 맴매랑 한참을 이야기 나눴다. 그러다 보니 나는 버스를 4-5번이 뭐야. 처음 보는 할머니와 20-30분을 넘게 이렇게 이야기한 것 같다.


이번처럼 길에서 만난 할머니들과 이야기를 나눈 지 벌써 저번달 이후로 세 번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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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3대째 같은 반려견을 키우신다. 할머니와 맴매 엄마는 똑똑해서 TV에도 출연했다고 한다. 그러며 할머니는 몇 화에 나오는지까지 서슴지 않고 설명하셨다. 외우셨나 보다. 얼마나 자랑스러우셨으면. 한참 지난 거 같은데.


듣고 보니 그 강아지는 꽤 똘똘하고 할머니에게나 주변에 좋은 추억을 많이 남겨 준 것 같았다.


그런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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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이야기를 듣는데 뭔가 여간 이상했다. 저번 달에도 다른 할머니와 강아지 이야기를 했던 터라 아이가 몇 살에 무지개다리를 건넜는지 여쭈었다.


그런데 맴매 할머니도 10살에, 맴매 엄마도 10살에 죽었다. 맴매는 7살인데 그럼 얘도 10살에 죽는 거냐고 물었다.



"할머니 좀 이상해요. 보통 장수하는 강아지들은 17년을 넘게 산다고 하던데 7년 더 살 수 있었는데 아쉬워요",라고 말했다.



할머니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할머니:

응. 여기도 안 좋고 저기도 안 좋고 그렇대. 간수치도 안 좋고 관절도 안 좋고.



나:

엥? 할머니 누가요? 누가 그래요??



할머니:

병원에서.



나:

나이 들면 다 아프죠. 안 그래요? 목욕탕 가도 허리에 철심 박은 할머니도 계시고 아닌 분도 계시잖아요. 나이 들면 다 그렇죠.

근데 어떻게 둘 다 10살에 죽었어요? 마음이 많이 아프셨겠어요.. 건강식으로 잘 먹이면 17년도 넘게 산다고 하던데, 저희 다른 강아지도 17년 살았어요.



할머니:

내가 한우만 먹였어..

병원에서 안락사 시키래서 시켰어.

이번에는 원장이 없었는데 안락사 시키래서 시켰다가 돈이 30만 원이나 나왔어. 옛날에는 만원 냈는데 말이야.



나:

할머니. 안. 락. 사.

안락사요?? 왜 그런 걸 하셨어요? 왜요??



그러며 나의 말은 시작되었다. 안락사를 시키라는 우리 집 애니가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해. 내 말을 듣고는 신기하게 맴매는 내게 다가와서 안겼다. 내가 맴매를 위해서 하는 말인지. 맴매 엄마 이야기를 하는지 내 마음이 손바닥만큼 작은 맴매에게도 전해졌나 보다.


..


할머니는 맴매가 자기 엄마를 얼마나 으르렁 그리고 덤볐는지 설명하셨다. 나는 할머니가 이렇게 편애를 하시는데 맴매가 모든 사람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엄마가 야속하고 가끔은 얄미웠겠죠.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나는 그냥 이렇게 말했다.



나:

그래서 이름이 맴매예요? 할머니 당연하죠. 당연한 거예요. 맴매한테도 사랑을 나눠 주셔야죠~ 맴매 엄마한테 하셨던 것처럼 말여요~~ 맴매 엄마한테 하셨던 것처럼 맴매도 많이 많이 사랑해 주세요. 앞으로요~~



"그의 형들은 아버지가 자기들보다 요셉을 더 사랑하는 것을 보고 요셉을 미워해 그에게 다정한 인사말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창세기 37:4]


"When his brothers saw that their father love him more than any of them, they hated him and could not speak a kind word to him."

[Genesis 37:4]



..


할머니와 안락사 내용은 다음번(2주) 후입니다. 다음 주는 <네 부모 시리즈>가 나갑니다. 연재를 하니 이런 게 재미있네요. 시리즈라는 단어를 제가 쓰다니 말여요,, 제가 글을 쓸 줄이야. 사람 일은 알다가도 모른다더니 정말 그런가 봅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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