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든 여성들, 그 무한한 가능성
지난 10월 30일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Terminator Dark Fate, 2019)가 개봉했다. 이번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는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시작을 알린 <터미네이터>(The terminator, 1984)의 아놀드 슈왈제네거와 린다 해밀턴이 돌아왔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그중에서도 특히 흥미를 끄는 점은 린다 해밀턴이 연기한 ‘사라 코너’ 캐릭터이다. 터미네이터 시리즈를 계속 보아온 사람에게도 사라 코너의 변신은 놀랍겠지만, 터미네이터를 전혀 보지 않은 사람에게도 백발의 노년 여성이 무표정한 얼굴로 대포를 쏘는 모습은 생경하게 느껴질 정도로 새롭다. 할리우드를 비롯한 연예계에서 여성 배우들은 나이가 들수록 ‘엄마’나 ‘할머니’ 외에 새로운 배역을 맡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총 쏘는 할머니'라는 말은 코미디처럼 들리기도 한다. 이는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20대 때는 뛰어난 연기로 각광받다가 결혼 혹은 출산 후 ‘엄마’가 되어버린 수많은 중년 여배우들을 떠올려 보자. 그들에게 '나이'는 단순한 숫자가 아닌 실재하는 '제한선'으로 느껴질 것이다. 할리우드 역사상 최고의 배우 중 한 명으로 불리는 메릴 스트립조차 중년의 나이가 되자 '마녀 역할만 들어왔다'면서 ‘마치 어떤 신호를 받은 것 같았다’라고 인터뷰하기도 했다. 메릴 스트립이 받은 ‘신호’라는 것은 아마 ‘네가 연기로 내보일 가능성은 이제 없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사라 코너를 연기한 린다 해밀턴도 처음에는 ‘누가 나이 든 사라 코너를 보고 싶어 하겠어요?’라고 말했으니, 그 ‘신호’라는 것이 비단 특정 개인에게만 작용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
‘나이’라는 것은 사실 누구에게나 제한점으로 작용되어왔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나이’는 곧 ‘생산 가능 여부’로 번역된다. 20대 때 열심히 사회운동에 참여하고 국가나 기업, 혹은 가정을 위해 노동하던 사람들은 지금 모두 ‘틀딱충’이 되었다. ‘노동을 할 수 있는 청년’으로 존재할 때는 ‘우리 시대의 미래’, ‘청춘’으로 불리다가, 나이가 들어 생산력이 없어지고 건강이 안 좋아지자 순식간에 부양해야 할 ‘짐’, ‘민폐’가 되어버린 것이다.
‘나이’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여성’에게 향할 때 더욱 빨리, 더욱 많이 제한되게 된다. ‘여자 나이는 크리스마스 케이크’라는 말은 그저 옛말이 아니다. ‘여자는 25살 이후로는 버려질 케이크 처지’라는 인식은 지금도 유효하다. 이는 아이돌, 배우를 비롯한 연예계에서 두드러진다. 연예계에서의 ‘나이 든 여성’에 대한 제한 및 배제는 우리 사회가 여성의 나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보여준다. 서른이 넘어가면 여성은 그저 누군가의 ‘아내’, ‘엄마’, ‘할머니’로만 인정받는다. 나이 든 남성 배우들은'아버지', '할아버지'가 아니더라도 조직의 보스도 되고 기업의 총수도 되고 독립군이나 매력 있는 악당이 될 수도 있지만, 여성은 해당사항이 없다. 이렇듯 '성장할 가능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누가 나이 든 나를 보고 싶어 하겠느냐’는 자기 인식은 자연스럽게 생길 수밖에 없다. <아이언맨> 시리즈의 ‘페퍼 포츠’ 역할을 맡았던 ‘기네스 펠트로’ 배우 역시 “아이언맨 슈트를 입기에 나는 너무 늙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나이 든 여성’이 능력을 보여줄 기회는 주어지지 않고, 아무도 ‘할 수 있다’고 말해주지 않는 사회에서 여성들은 자신의 가능성을 믿지 못하게 된다. 수많은 여성들이 그런 식으로 사라져 왔고, ‘본받을만한 존재’의 부재는 여성들에게 ‘나이 듦’에 대한 두려움을 심어준다. 나이를 들어도 무언가를 계속해나갈 수 있다는 믿음과 기대가 없기 때문에 어떻게 나이를 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 역시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좋은 어른이 많은 사회’는 ‘나이 듦’에 대해 개개인이 깊이 있는 성찰을 할 때 가능해질 수 있다. 그리고 그 성찰은 ‘나이 듦’을 부정하고 배제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일을 멈출 때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터미네이터: 타크 페이트>의 ‘나이 든 사라 코너’가 반가운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린다 해밀턴은 이번 영화를 통해 사라 코너를 연기하면서 기존의 ‘나이 듦’에 대한 인식을 버리고, ‘나이를 먹는 것이 새로운 패션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멋진 어른’의 존재는 젊은 세대들로 하여금 ‘나이 듦’을 두렵지 않게 하고, 나이 든 자신의 모습을 마음껏 상상할 수 있도록 돕는다. 백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확보한 유튜브 채널 ‘박막례 할머니 Korea Grandma’ 역시 좋은 사례다. 박막례 씨가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삶을 즐기는 모습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나이 듦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능하게 한다. 노년이 되어서는 그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누군가를 위한 무엇’이 되어 희생하기만 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게 아니라, 노년이 되어서도 여전히 ‘나’로 존재하며 죽을 때까지 성장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믿음, 그 믿음은 ‘늙으면 끝’이라는 생각 대신 전혀 다른 삶과 사회를 상상할 힘을 준다. 나이가 들면 대충 아무거나 입고 아무거나 먹고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어야 하는가? 쭈글쭈글해졌다고 해서 자식과 손자의 삶에만 기대를 걸면서 살아야 하는가? 그렇다면 억울한 소리다. 우리에게는 이미 총 쏘는 할머니도 있고, 백만 유튜버 할머니도 있지 않은가. 이렇게 멋진 할머니들이 멋진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지 않은가. 당신은 또 어떤 멋진 할머니, 할아버지가 될 수 있을지 마음껏 기대해볼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