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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첫, 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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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재 Dec 02. 2024

700년의 약속

-by simjae

 

 

 700년의 약속 


 유현숙


  당신에게 가져 갈 서책 한 권과 모필 한 자루와 연적 한 점과

  미완의 악보를 베고

  물밑에 가라앉은 폐선에서 잤습니다


  몸에 물결무늬가 돋습니다

  칠백 년을 칠백 겹으로 접은 물주름입니다

  늑골 사이에 바람이 찬 심해어들     


  숨소리가 깊습니다


  아직도 기다리고 있는지요

  낡은 모국어로 지금도 바다의 휘파람을 받아 적는지요

  칠천 오백 리 뱃길이 닳고

  앞섶에 놓은 자수가 헤졌습니다


  잃은 것이 기억 속에 가라앉은 항구인지 모국어인지

  휘파람이 지나간 긴 행인지


  주름 진 물속에 누워 당신을 꿈꾸지 않은 날

  칠백 년의 잠에서 나를 깨웁니다

  물주름 파인 몸 껍데기를 천천히 당신 앞으로 돌려 세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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