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simjae
700년의 약속
유현숙
당신에게 가져 갈 서책 한 권과 모필 한 자루와 연적 한 점과
미완의 악보를 베고
물밑에 가라앉은 폐선에서 잤습니다
몸에 물결무늬가 돋습니다
칠백 년을 칠백 겹으로 접은 물주름입니다
늑골 사이에 바람이 찬 심해어들
숨소리가 깊습니다
아직도 기다리고 있는지요
낡은 모국어로 지금도 바다의 휘파람을 받아 적는지요
칠천 오백 리 뱃길이 닳고
앞섶에 놓은 자수가 헤졌습니다
잃은 것이 기억 속에 가라앉은 항구인지 모국어인지
휘파람이 지나간 긴 행인지
주름 진 물속에 누워 당신을 꿈꾸지 않은 날
칠백 년의 잠에서 나를 깨웁니다
물주름 파인 몸 껍데기를 천천히 당신 앞으로 돌려 세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