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simjae
순장
유현숙
백년이 넘어야 나무는 목신이 깃든다는데 물속에서 곰삭은 몇백 년 된 침향목을 사포질한 다탁에서 차를 마십니다 송사리 두 마리가 그려진 백토 찻잔이 봄 개울만 합니다 곡우 무렵 초경 전 여아들이 이슬 맺힌 새 순을 입술로 물어 땄다는 여아차 세 순배, 대나무통에서 40년 숙성한 보이차 세 순배, 향으로 마신다는 철관음차 세 순배, 삼백년 된 차나무 잎을 우려낸 경인맹춘차 세 순배를 마시고 나니
향긋합니다 내가 침향목이 되었습니다
한 생을 기도와 차로 지낸 조실스님 발을 씻겨드리면 발끝에서도 향기가 난다더니
(그래서 파트리크 쥔스킨트는 향수를 썼습니다)
백 년이나 묵힌 고독이 몸 바꾸어 입안에서 설렙니다 잎이 나무가 흙이 바람이
무위자연의 전언인지요 몇 차례 되살아납니다
밤 깊도록 차를 따르던 팽주는 이 밤의 끝을, 저 근육질의 죽음을
혼자서 어찌할는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