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mjae
사회면에 깔리다
종각역 지하 통로에서 남자가 깡소주를 털어 붓는다
남자의 슬관절 앞으로 종로의 한데 바람이 굴러와 뒹군다
깔고 앉은 골판지가
알코올에 찌든 골 깊은 한 생애와 맞물리는 저녁
한때는 윤기 도는 삶의 부품들을 채워 넣던, 품 넉넉하고
든든한 박스였을 저 남자다!
몸체에 덧댄 굵은 철심을 물어뜯자 얼룩진 단면들이
와르르 무너진다
골판지와 신문지 사이에서 남자는 불어터진 컵라면처럼
납작하게 깔렸다
골판지 전신에 새겨놓은 알록알록 당의정 같은 과거들
흥건하게 취한 남자의 곁에 와서 눕는다
울툴불퉁한 사방四方과 하늘을 가리지 않은 종로의 바람이
압정처럼 남자 위에 꽂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