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 마음 맑음 Jan 11. 2024

실수는 좋은 거야!

EBS 다큐에서 초등학생 상대로 했던 실험을 본 적이 있다.  역할극을 하는데 아이들이 부모 역할을 하는 내용이었다. 어떤 안 좋은 상황이 발생했는데, 부모 역할을 하고 있는 아이들이 어떻게 대답하는지 보는 실험이었다.


예를 들어, 제작진이 "나 오늘 친구들하고 다퉜는데 선생님이 나만 혼냈어."라고 말을 하면, 초등학생 아이들이 부모의 입장에서 그 질문에 답변을 하는 것이다. 아이들의 답은 다양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니까 친구들이 너를 괴롭히고, 선생님이 너를 혼냈겠지"

"그러니까 친구들한테 좀 잘하고, 선생님 말 좀 잘 들어! 넌 왜 맨날 사고만 치니?"

"네가 행동을 바르게 해야지!"


제작진의 다음 질문은 "나 오늘 우산 잃어버렸어"였다. 아이들이 부모 입장이 되어 다양한 말투로 충실하게 역할에 임했다.  


"이그, 제발 좀 덤벙덤벙 대지 말고 정신 차리고 다녀!"

"너 몇 번째 우산을 잃어버리는 거니?"

"또?(한숨)..."


이번에도 비난의 말투가 먼저 나온다. 역할극 반응을 지켜보던 전문가는 아이들이 이렇게 말을 하는 이유는 지금까지 부모에게 이런 식의 말을 들어왔기 때문에 부모와 똑같이 말하는 것이라고 다. 동일한 질문으로 아이들 부모에게 인터뷰를 하자, 놀랍게도 부모들도 아이들과 비슷한 말투로 비슷한 내용의 답변을 했다.


여기서 핵심은 부모의 말투, 표정, 언행 등 비언어적인 것과 언어적인 모든 것들을 아이들은 그대로 흡수한다는 것이다. 이 실험이 보여주고 싶은 것은, 부모 아이를 대하듯 아이가 자기 자신을 대하게 되고, 더 나아가 그 방식 그대로 타인과 세상을 대하게 된다는 것이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그것을 자신뿐만 아니라, 자식에게 또 대물림한다.


이 다큐에서는 몇 가정을 선정해서 가족 프로그램을 실시한다. 합숙을 하면서 가족들이 여러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는데, 특히 역할극이 핵심이다. 서로 상대의 입장을 경험해 보는 역할극을 하면서 부모는 자녀를 이해하고, 자녀는 부모를 이해하는 눈물과 반성의 시간을 갖는다. 다양한 부모 교육과 자녀 교육뿐만 아니라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시간도 갖는다(함께하는 시간이 없는 가족이 대부분이니까).


마지막에는 집에 돌아간 후 시간이 흘러 가족의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는데, 언행이 부드러워지고 많이 변화된 모습을 인터뷰하며 다큐를 끝맺는다. 5년 전 봤던 다큐인데 아직도 인상 깊게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출처 Pixabay


우리 아이는 블록놀이를 좋아하는데 만 2세 때만 해도 블록을 쌓다가 넘어지면 울거나 짜증을 냈었다. 만 3세 때는 블록이 넘어지거나 놀이가 망가지면 '으앙~ 망했어!'라는 말을 기도 했다. (우리 집에 '망했어'라는 단어를 쓰는 사람은 없어서 유치원 친구들에게 배운 것 같았다. 유치원에 외국 친구도 있는데, 가끔 외국어도 배워온다. 와우!)


나는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놀이를 하는 과정자체가 재미있으면 된 것'이라는 메시지를 아이 마음에 심어주기 위해 아이가 실수할 때마다 매번 이 내용을 해줬다.


하루는 아이가 "엄마, 저는 실수를 많이 해요"라며 시무룩해 있었다.

나는 웃으면서 "괜찮아, 실수는 좋은 거야, 엄마도 매일 백번 실수해! 근데 실수하면 많은 걸 배울 수 있어. 실수를 많이 하면 다음날 더 멋진 사람이 될 수 있어! 실수 많이 해도 괜찮아. 새로운 것을 배웠다면 그것만으로 아주 훌륭해!"라고 말했더니, 씨익 웃으면서 나에게 안긴다.


놀고 있던 장난감이 흐트러져서 아이가 울고 있으면,

"실수는 좋은 거야. 그럴 수도 있어. 넘어졌으면 다시 하면 돼. 또 쌓으면 재밌잖아! 엄마 말  따라 해 봐. 실수는 좋은 거야!"라고 말하면 아이는 울면서도 엄마 말을 따라 했다.


우유를 엎질러서 아이가 좌절하고 있으면,

"실수는 좋은 거야. 실수하면 새로운 걸 배울 수 있잖아! 우유는 엎지르면 닦으면 되고 다시 따라서 마시면 돼. 직접 닦아볼래? 닦으니까 괜찮아졌지? 아무 일도 없지? 자, 따라 해 봐, 실수해도 괜찮아." 그럼 아이가 그대로 따라 한다.


이런 대화를 수십 번을 했지만, 실수하면 좌절하거나 자책하는 아이의 습관을 개선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렇다면 이런 대화를 수백 번 수천번 하리라 마음먹고, 아이의 입에서 이 말이 나올 때까지 하겠다는 다짐을 하며, 아이가 실수하면 기회가 왔다는 듯이 '실수는 좋은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내가 실수하면 자책하는 성격인지라 아이에게 미안했고, 이런 나의 성향이 혹 아이에게 간 것이 아닐까 싶어, 나부터 진심으로 '실수는 배울 수 있어 좋은 것'이라는 생각으로 긍정적으로 관점을 바꾸기 위해 내 생각과 언행에 깨어있으려 노력했다. 무의식적으로나 습관적으로 실수하고 나서 자책하는 나의 모습이 나오지 않도록 말이다. 내가 먼저 변화된 후에, 아이에게 꾸준히 '실수해도 괜찮다'라고 말해주는 것이 맞는 순서라고 생각했다.


만 4세가 되니 승부욕이 생겨서 1등을 하고 이기는 것에 집착을 했다. 나는 아이가 경쟁이 아닌 함께하는 즐거움을 배우기를 희망했고, 1등 하는 것과 행복과는 관계가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이것도 될 때까지 수천번 알려주리라 마음먹었다.


"놀이는 잘하려고 하는 게 아니야. 놀이는 재미있으려고 하는 거야. 친구랑 놀 때는 친구를 이기려고 노는 게 아니야. 친구랑 사이좋게 놀고, 같이 재미있었으면 그럼 그걸로 된 거야. 그게 제일 중요한 거야"



출처 Pixabay


우리 아이는 역할놀이를 참 좋아한다. 장난감을 가지고 캐릭터를 설정해서 나와 아이가 같이 역할놀이를 할 때도 있고, 아이가 혼자서 인형놀이를 할 때도 있는데, 인형들 사이에서 대화가 오가면 나는 안 보는 척하면서 유심히 듣고 있는다. 아이의 생각이나 심리 상태를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요즘 아이가 혼자서 역할놀이를 하는 것을 듣고 나는 드디어 안심했다. 1년 넘게 수차례 말해주었던 것을 드디어 아이가 스스로 말해주고 있었다.


인형놀이를 하다가 상대 인형이 뭔가를 실수했나 보다. 아이는 말한다.

"괜찮아, 실수할 수 있어. 실수는 좋은 거야. 배울 수 있잖아. 걱정하지 마, 내가 도와줄게"라고 말한다.


아이가 최근에 달리다가 넘어졌는데 울지 않고 앉아서 스스로에게 혼잣말을 한다.

"괜찮아? 응, 괜찮아."

"다치지 않았어? 응, 다치지 않았어." 하면서 혼잣말로 자기 자신과 대화를 한다.

"괜찮아 넘어질 수 있어. 씩씩하게 일어나면 되지"라고 말하며 웃으면서 일어나는 아이를 보고 입을 쩍 벌리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높게 쌓은 것이 무너지거나 놀이가 망가져도 혼잣말로 "실수해도 괜찮아, 실수는 좋은 거야. 배우고 다시 할 수 있잖아"라고 말하는 아이를 보았다. 더 놀라운 은 엄마인 내가 실수를 해도 똑같이 말해준다. "엄마 괜찮아요. 실수는 좋은 거예요. 다시 하면 되잖아요."라고 말해준다. 동네 친구와 놀다가도 이렇게 말해주는 걸 보고, 엄마가 안 볼 때도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겠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놓였다.


항상 어린아이로 남아있을 것 같은 딸이 갑자기 한 단계 더 성장한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때의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아이에게 심어주고 싶었던 가치를 마음에 잘 새겨주어서 정말 감사했다.


아이의 언행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나를 먼저 돌아보며 반성한다. '나의 이런 성향을 닮았구나. 내가 이 성향을 반드시 고쳐야겠다'라고 생각하고, 나부터 언행을 바꾸려 부단히 노력한다. 엄마의 안 좋은 언행이나 습관이 바뀌면 아이도 자연스럽게 바뀐다. 엄마는 그대로면서 아이만 고치려고 하면 절대 변화는 생길 수 없다. 부모를 그대로 모방하고 흡수하는 것이 아이의 습성이기 때문이다. 특히 영유아 때부터 초등학생 때까지, 부모는 모든 것을 모방하는 아이에게 모범이 되어주어야 한다.


아이가 마음으로 받아들여서 언행으로 나올 수 있을 때까지 부드럽게 수백 번 수천 번 반복할 각오를 다. 보통 수십  번이면 행동 개선이 있지만, 마음으로는 수천 번 한다고 생각해야 고작 세~네번 해놓고 안 바뀌면 아이 화내고 호통치는 일이 없다. 그리고 아이가 잘했을 때 진심으로 격려해 주고 인정해 준다.


가끔 아이가 짜증 내는 말투를 할 때가 있는데, 이것도 나를 닮은 것이라고 생하고, 내 말투를 고치고자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내 언행과 생각에 매 순간 깨어있는 연습을 하면서 무의식적으로, 나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언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언행을 하는 순간에 깨어있어, 말하는 내용을 자각하고 목소리와 말투를 부드럽게 말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것이 될 때까지 수천번 연습한다고 각오한다.


최근에 아이가 나에게 말했다.

"엄마, 이기는 것은 중요하지 않아요. 그리고 실수하면 많이 배울 수 있으니까, 실수는 좋은거에요!" 

한참 아무말 없이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너무 빨리 커버린 것 같기도 하고, 엄마 말을 잘 기억해주어서 고기도 했던, 오묘한 감정이 든 순간이었다.


아이는 매일 자기 전 나에게 말해준다. "우리 가족은 서로 사랑하고, 행복하고, 소중하고, 고맙고, 감사해요"라고 말해주면 마음이 뭉클하다. 앞으로 자라면서 많이 시도하고, 많이 실수하고,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고, 많이 배워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신만의 길을 걸어갈 우리 아이의 미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아이는 이렇게 하나하나씩 인생을 배워간다.

아이 덕분에 부모는 이렇게 하루하루 성장해 간다.

그래서 아이가 부모의 스승이란 말이 있나 보다.


출처 Pixabay



이전 04화 아빠와 딸의 둘만의 은밀한 대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