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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 마음 맑음 Jan 18. 2024

실패했지만 재밌었고, 실수했어도 사랑한다

아이는 내가 하는 말을 그대로 따라 하기 때문에 아이가 하는 에서 나를 . 내가 더욱 성숙한 어른이 되고자 노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른 것에 대해서는 하지 않아도 만큼, 아이는 지금 이 나이 스스로 있는 일들의 모든 것을 잘하는데, 정리정돈에 대해 습관화하는 것이 어려운 나이임은 분명하다. 아이가 어려워하는 것이 있으면 내가 어렸을 때를 떠올려 보면 된다. 나는 초등학생 때까지도 정리정돈을 못했던 것이 기억난다.


만 5세 아이를 가진 부모가 이 시기쯤 달라지는 것이 있다면, 지난 5년과는 달리 아이에게 기대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전에는 밥 잘 먹고, 잘 자고, 안 아프고 건강하기만 하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고, 응가만 잘해도 칭찬 세례를 받았던 시기에서, 5세쯤 되면 의사소통이 잘 되기 때문에 이제는 스스로 자기 일을 잘했으면, 엄마 말을 잘 들었으면, 엄마 마음도 좀 이해해줬으면 하는 기대가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한다.


각 나이 때 발달에 맞춰 아이가 잘 커가고 있다면 그 이상을 기대하거나 바라면 안 된다. 이를 잘 알면서도 내 마음을 컨트롤하지 못하는 날에는 아이에게 기대하는 마음이 나를 이기고 만다. 아이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아이를 지금 그 나이 때의 아이로,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금세 기대하는 마음이 커져버린 내 마음의 문제인 것이다.


놀 때는 실컷 놀라고 아이 놀이방을 만들어 주었고, 그 방은 어지럽히든 말든 손님이 오는 경우가 아니라면 터치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집의 '룰'은 놀이방에서는 실컷 어지럽히면서 놀되, 거실은 가족 공동으로 생활하는 곳이니 이곳을 장난감으로 어지럽히면 안 된다는 (내가 만든) 규칙이 있다. 하지만 아이는 어디까지나 그 나이에 맞게 행동하는 그냥 아이일 뿐, 가끔 거실이 엉망이 될 때도 있는 것은 당연하다.


정리정돈을 습관화하는 것도 중요한 교육이라 생각하며 조금씩 아이에게 실생활에서 정리정돈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놀 때는 재밌게 놀더라도, 놀고 나면 정리정돈을 잘하는 것도 놀이의 일부라는 것을 5세 아이가 이해하기는 아직 어려운 개념인 것은 틀림없다. 정리정돈은 그냥 하기 싫은 거지 이게 어떻게 놀이가 될 수 있겠는가?


다 떠나서, 놀고 나서 정리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말했지만, 성인도 어려운 것을 5세 아이에게 기대하는 것은 내 욕심이라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래도 '어렸을 때부터 습관화'라는 명분으로 꾸준히 내가 직접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아이에게 정리정돈을 어떻게, 왜 해야 하는지 말해 주었는데, 하루는 아이가 가만히 듣고 있더니 나에게 말했다.


"엄마, 지금 잔소리하는 거예요?"


앗, 뜨끔했다. '그나저나 잔소리라는 단어는 또 어디서 배웠지?' 풉, 하고 웃음이 나올뻔하다가도 5세 아이에게 벌써 잔소리를 하고 있는 나를 보며 아차 싶었다. '짜증 날 것 같고 화날 것 같으면, 그 즉시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내 나름의 교육관을 갖고 있다. 아무리 좋은 교육이라도 그걸 짜증 내면서 한다면,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이에게 화를 안 내는 것이 가장 좋은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아이의 성장을 위해서 하는 훈육과 내 감정을 못 이겨서 화를 내는 것은 분명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며칠 후 아이가 만화를 보는데 옆에서 듣고 있으니 TV 속에서 '엄마, 잔소리 좀 그만해!'라고 소리치는 것이다. 만화에서 배운 것이 틀림없었다. 다시 생각해 보니, 아이의 뉘앙스가 '엄마, 잔소리 좀 그만해!'라 짜증 내는 뉘앙스였다기 보다는, '엄마, TV에서 잔소리하는 엄마를 본 적이 있는데, 지금 이 상황이랑 좀 비슷한 것 같은데, 혹시 엄마도 지금 나한테 잔소리하고 있는 거예요? 이건 좀 잔소리 같은데요?'라는 식의 억울함과 의문이 살짝 깔린 뉘앙스였던 것 같아 피식 웃음이 났다. 이렇게 마음이 사랑스러운 아이에게 내가 더 이상 바랄 것이 무엇이랴...


요즘 우리 집은 잔소리 금지구역이 되었다. 내가 스스로 나에게 만든 룰이고, 나만 잘 지키면 된다. 그래서 잔소리를 하지 않고 같이 정리하는 가족 문화를 만들었다. 저녁 식사 후, 모두 같이 식탁을 정리하고, 신나는 정리 동요를 틀어놓고 가족 모두 함께 정리하는 시간을 놀이처럼 만들었더니, 아이도 적극적으로 기꺼이 신나게 임한다. 나이에 맞게 잘 커가고 있는 아이에게 고마웠다. 더 바랄 것이 없었다.  



아이는 실수를 하면 숨는 버릇이 있었다. 아마 내가 놀라는 모습을 보면서 자기가 큰 잘못을 했다고 느꼈거나, 옳고 그름에 대해 아이가 꼭 알아야 하는 사실이 있다면 또박또박 알려주는 엄마의 모습에서 자기가 혼난다고 생각한 것 같다. 이 나이 때 아이는 갈수록 호기심도 많아지고 창의력도 폭발하면서 다양하게 시도해 보는 것들이 많기 때문에, 당연히 내가 놀랄 일도 많아지고, 하면 안 되는 것에 대해 제지하는 것도 많아졌다. 그래서 아이는 요즘 자신이 많이 혼나고 있다고 느꼈던 것인지, 스스로 판단했을 때 엄마가 놀랄만한 실수라고 생각하면 조용히 숨어있었다.  


나는 아이의 언행에서 늘 나를 돌아보게 된다. 옳고 그름에 대해 알려주는 것이 훈육이긴 하지만, 필요 없는 부분까지 너무 많은 제지를 하면, 아이의 창의력이나 자율성까지 제지하고 있지는 않은지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몸과 마음 편하자고 하는 잔소리와, (아이가 한 인격체로서 성숙해 가는 데 있어) 진정으로 아이의 행복과 성장을 위해 하는 훈육의 경계를 현명하게 잘 구분할 수 있어야 하며, 내 마음이 편하기 위해 하는 잔소리와 짜증은 반드시 경계해야 한다.


부모도 늘 자신의 언행에 깨어있으면서 현명한 언행을 하면 좋으련만, 사실 엄마라는 존재도 아직도 커가고 있는 불완전한 존재이고, 항상 현명한 언행을 구분해서 한다기보다, 지금까지 살아온 습관대로 말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평생 형성된 자신의 습관을 절제하고 통제하면서 아이에게 어른다운 언행을 하는 데는, 수많은 시간 동안 마음 수행이 필요하다.


실수했다고 생각해서 숨어있는 아이를 몇 차례 밖으로 나오게 했고, 더 이상 숨지 않아도 된다고 알려주었다. 아이가 거짓말을 하거나 숨는 다면 이는 아이 잘못이 아니라, 아이에게 어떤 행동이 나쁘다는 인식을 부모가 각인시킴으로 인해, 그런 행동을 하는 자신을 숨기는 것이다. (자신과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일이라면) 부모를 안심시키기 위해, 부모에게 혼나지 않기 위해 아이가 숨거나 거짓말을 하지 않도록, 심리를 억압하지 않고 아이의 선택과 자율성을 좀 더 자유롭게 인정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아이가 거짓말을 하거나 숨는 행위가 나쁜 것이 아니라, 아이가 거짓말이나 숨는 행위를 할 필요가 없도록 자율적이고 편안한 가정의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어. 실수는 좋은 거야. 실수를 하면 배울 수 있잖아. 그리고 다음부터 조심하면 되는 거야"


"엄마는 매일 실수해. 엄마는 매일 열 번, 백 번 실수해. 근데 그래도 괜찮아. 실수하면서, 배우면서, 지금의 엄마가 된 거야. 너도 실수하고, 배우면서, 지금 이렇게 많이 크고 자란 거야. 실수는 누구나 다 하는 거야. 그렇게 우리가 크는 거야"


"실수해도 숨지 않아도 돼. 실수하면 '엄마, 도와주세요' 이 말 한마디만 하면 돼. 그럼 엄마가 도와줄 거야. 아무 문제없어. 이것 봐, 엄마가 도와주니까 다 괜찮아졌지?"


이렇게도 저렇게도 말해보았는데 그 당시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에게 안겼지만, 그 후로도 자기가 실수했다고 생각하면 숨는 것을 반복했다.


"너는 엄마가 실수하면 엄마 사랑하지 않아?"

"아니, 엄마 사랑해..."

"엄마도 네가 실수해도 변함없이 언제나 널 사랑해. 네가 실수해도 엄마가 널 사랑하는 건 절대 변하지 않아. 알겠지?"

"네..."


아이는 여느 때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나에게 안겼고, 잘 이해한 듯 보였다.



하루는 아이가 그림을 그리고 있는 책상 옆을 급하게 지나다가, 내가 실수로 아이 책상을 치는 바람에 아이 그림이 흐트러졌다. 놀라며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바로 말했다. 그림이 망가져서 속상해하며 화낼 만도 한데 아이는 나에게 말했다.


"엄마 괜찮아요. 누구나 실수할 수 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엄마가 실수해도 나는 엄마를 변함없이 언제나 사랑해요."


그러고 보니 요즘 아이가 숨는 행동이 없어졌다. 내가 어떤 말을 해도 스스로 납득이 되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 어떤 상황에서도, 아무리 실수를 해도, 엄마는 변함없이 언제나 널 사랑한다'는 이 말에서 자신도 충분히 납득할 만한 이유를 발견한 것 같았다. 때로는 엄마가 혼내고, 엄마도 아이처럼 실수를 하고, 언제나 엄마가 백 프로 아이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자기도 엄마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걸 보면, 엄마도 같은 마음이라는 것을 이해한 것 같았다.   


최근 아이가 자전거를 타다가 코너에서 핸들을 틀자 자전거가 기울면서 바닥에 넘어졌다. 1년 전만 해도 넘어지면 바로 눈물을 터트렸는데, 후다닥 벌떡 일어나더니 "괜찮아요, 괜찮아요, 다치지 않았어요" 하면서 엄마를 먼저 진정시키고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 시켰다. 스스로 옷을 털고 손을 터는데 손에 작은 돌멩이들이 박혀있었다. 놀라면서 손을 털어주었는데, "괜찮아요, 하나도 아프지 않았어요"라고 말하며 다시 자전거에 올라탔다. 언젠가부터 자전거를 탈 때면 엄마가 잡거나 도와주는 것을 못하게 하는 것을 보며 아이가 더 컸구나 싶었는데, 오르막길이 올 때마다 스스로 "영차, 힘내"라고 말하며 자전거를 타는 아이의 모습이 감동으로 다가왔다.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집에 도착하자 자전거에서 내리며 말했다. "엄마, 저 잘 탔죠? 실패했지만 그래도 재밌게 잘 탔어요" 라며 뿌듯해했다. 나는 더 이상 실패에 대해서도, 실수에 대해서도, 무엇이 정말 중요한지에 대해서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가끔 어쩔 수 없이 넘어지기도 하지만 넘어진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넘어졌다고 해서 그것이 실패가 아니라, 재미있게 잘 탔으면 그걸로 된 거라고 아이는 스스로에게 말해주고 있었다.


보상을 받으려고 육아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예상치 못한 시점에서 이렇게 큰 선물이 다가오면 말로 표현하기 힘든 벅찬 감동과 행복을 느낀다. 이렇게 나도 조금씩 아이와 함께 성장해 간다. 처음에 이 책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아이의 성장일기를 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니 나의 성장일기를 쓰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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