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는 아빠의 취미와 놀이 취향을 신기할 정도로 그대로 물려받았다. 아빠와 딸은 내가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동물을 너무 사랑해서, 상황이 허락할 때마다 동물원과 수족관을 가는 것이 둘의 가장 행복한 취미다. 아빠가 "어디 가고 싶어?"라고 물으면 0.1초의 고민도 없이 "동물원"이라고 세 살 딸이 방방 뛰며 기뻐한다. 남편은 그런 딸을 보며, 30도가 넘는 여름 날씨에 아침 일찍 가면 괜찮다며 동물원을 데려가겠다고 한다. 나는 워~워~ 제발~ 가을까지 참으라며 진정시킨다.소용없다. 땀을 뻘뻘 흘리며 그래도 간다.
딸은 6개월부터 "아빠 아빠"를 선명하게 말했다. 하루는 영유아 검진을 받으러 갔는데, 소아발달 전문의가 아이가 언제부터 아빠라고 했냐고 묻자, 6개월부터라고 말했고, 의사는 의심의 눈초리로 "네? 6개월이요? 엄마 말고 아빠요, 아빠!"라고 다그쳤다. 나는 "6개월부터 아빠라고 수십 번을 아주 선명하게 말했는데요? 왜요, 이상한 거예요?"라고 의아해하며 되물었다.
가끔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정의로운 나를 봐도, 부처가 환생한 것처럼 차분하던 남편이, 옆에서 듣고 있더니 평소보다 2배속으로 빠르게 의사에게 대답한다.
"동영상 지금 보여드릴까요? 제 핸드폰에 증거가 있어요, 증거!"
'쇼미 더 머니' 급의 전투력과 속사포 랩이었다. 의사는 남편의 아빠 부심을 건드린 것이다!
아이가 그냥 '아빠!' 한 번 부른 것도 아니고, 낮잠을 자고 기분 좋게 일어나서, 아빠를 30번 이상 "아빠, 아빠, 아빠, 아빠~~~"라고 무한 반복으로 부르는 동영상이 한두 개가 아니다. 아기의 살인 미소와 살인 애교에 아빠가 기절을 수십 번 하는 모습을 나는 옆에서 낄낄대며 열심히 동영상으로 남겼다. 남편이 다급하게 "여보 이거 찍고 있지? 동영상으로 다 찍었지?" 하면서 증거영상을 확보하고자 하는 간절함까지도 영상에 그대로 다 남아있다.
남편에게 이 영상들은 인생의 가장 큰 자랑이고, 나에게는 우리 집 가보이다. 아이가 발달이 빠르고 말을 빨리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서툴었던 우리지만 그래도 부모로서 아이에게 신뢰를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남편은 아이의 놀이를 담당하고 있고, 나는 그런 아이와 아빠의 사랑스러운 추억을 관찰해서 글로 적고, 영상과 사진으로 남긴다. 우리 가족 이만하면 역할분담이 잘 되어 있다.)
남편의 전투력 만렙 속사포 랩에 조금 민망한 나는 의사에게 덧붙여 말했다. "아, 맞아요~ 아기가 엄마보다 아빠를 먼저 불렀어요!"라고 어색한 미소로 답했다. 의사 선생님은 증거 동영상이라는 말에 놀라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리고 의사는 아이의 발달은 아주 정상적이고, 발달이 상당히 빠르다고 말했다. 증거 동영상이 없었으면 어쩔 뻔했나 싶다.
딸의 목욕은 아빠의 몫이다. 남편은 조카 두 명(친누나 자녀들)을 이미 키워봤기 때문에 나보다 실전 육아에 능숙했다. 아빠는 목욕 후, 아이에게 쭉쭉이 전신 마사지를 해주면서 혼신의 힘을 다해 노래를 불렀다. 아기 눈가 주변이나 코를 조심히 다룰 경우, 아이의 시선을 강탈할 필요가 있을 때는 아빠가 댄스머신이 되어 아이 혼을 쏙 빼놓는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다. 아이는 '이게 뭐지! 태어나서 이런 건 처음이야! 정말 신성한 충격이야! 아빠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라는 오묘한 표정으로 아빠를 세상 신기하게 뚫어지게 바라보곤 했었다. 아이의 혼이 팔려 있을 때, 이때다 싶어 나는 아이의 코와 귀와 눈을 닦아 주었다. (아쉽게도 첫돌이 지나면서 뽀통령이 아빠의 무아지경 댄스를 이겨버렸다. 남자친구가 생긴 것도 아닌데, 남편이 살짝 서운해한 것 같았다.)
사실 4개월이 되자 아이가 "마~ 마~ 음마~ 엄마~"라고 자주 말 했었다. 승부욕이 강한 아빠는 지지 않으려고, 그때부터 아기에게 크레용팝의 <빠빠빠>를 신나게 불러주었다.
"다 같이 원! 빠빠빠빠 빠빠빠빠,
날 따라 투! 빠빠빠빠 빠빠빠빠,
소리쳐 호! 뛰어봐 쿵! 날 따라 해! 헤이!
엄마도 파파도 같이 Go! 빠빠빠빠 빠빠빠빠!"
아직 아빠라고 말을 못 하는 아기가 있다면 이 노래가 효과적이다. 조기교육을 열심히 하시길 바란다. 사실 우리 딸은 꼭 이 노래 때문은 아니다. 진심으로 아빠를 넘~~~ 흐 사랑하고 좋아한다.
보통 아이가 서럽거나, 잠자다 깨면 엄마를 찾는데, 우리 딸은 '아빠~ 아빠~~~' 하며 아빠를 찾으며 일어난다. 처음에는 자다 일어나서 침대에서 아빠를 부르면, 아빠가 쌩~하고 달려오니까 계속 누워서 아빠를 울부짖고만 있었는데, 아이가 스스로 침대에서 일어나서 거실로 나오는 연습을 시키자고 하니까, 딸바보 아빠가 거실에서 아이가 스스로 나오기를 발을 동동 구르며 안절부절 기다리고 있다. 아빠를 부르짖어도 안 오자, 자기가 직접 찾아 나서리라 결심한 듯한 아이는 밖으로 나와 다급하게 두리번거리며 아빠를 찾는다. 이렇게 딸바보와 아빠바보가 이산가족 상봉을 생방송으로 매일 찍으신다.
만 세 살이 말을 시작하는 시기이기도 하고, 귀여운 발음으로 어른들의 말을 다 따라 할 때라 가장 사랑스러운 나이라고들 한다. 우리 딸도 지금 그렇다. 보고 있는데도 더 가까이 보고 싶고, 안고 있는데도 더 꼭 안고 싶고, 내 입술을 아이 볼에 딱 붙여놓고 아예 떼고 싶지 않을 정도로 예쁘다.
나는 자기 전, 아이와 굿 나잇 인사를 할 때 아이 이름을 부르며 '우리 딸, 소중해~ 사랑해~ 행복해~ 고마워~ 잘 자요~'라고 말을 한다. 그러면 아이가 그 말을 그대로 따라 한다. 어느 날부터는 내가 깜빡해도 아이가 먼저 굿 나잇 인사를 똑같이 건네주고, 아침에 일어나서는 아빠 품에 안겨 눈을 비비며 일어나, 잠이 덜 깬 부스스한 얼굴로 부엌에 있는 엄마를 자기한테 오라고 손짓한다. 아빠를 왼쪽 팔에 꼭 안고, 엄마를 오른쪽 팔에 꼭 안고 아이가 말한다.
"아빠 조아~ 엄마 조아~ 우리 가족~ 소중해~ 행복해~ 사랑해!"
아이가'우리 가족 3뽀뽀, 우리 가족 샌드위치'라고 말하면 우리는 무슨 일을 하고 있어도 반드시 바로 그 즉시 해야 하는 일이 있다. 아이가 만든 말인데, '3뽀뽀'는 아빠, 엄마, 아이 세명이 동시에 뽀뽀를 하는 것이고, '샌드위치'는 아이를 가운데 두고 우리 가족이 힘껏 서로를 꼭 껴안아주는 것이다.
앞으로 아이가 더 크면 뽀뽀도 못하고, 안아주지도 못한다며 벌써 아이 사춘기를 걱정하는 남편이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지금의 사랑스러운 아이를 마음껏 눈에, 마음에, 글에, 사진에, 영상에, 기억에, 추억에 원 없이 담아두리라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