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통해 나를 본다

by 이오샘

처음 민수를 만난 것은 3월 초, 새 학년이 시작되면서 학부모 비상연락망을 작성하던 날이었다. 아이들이 한 명씩 나와 학부모 연락처를 적고 있을 때였다. 민수의 차례가 되었다. 민수는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저는 학부모가 없어요."


나는 순간 당황해서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아, 그래?... 그럼 너는 누구랑 살아? 어디에 사는데?"


"시설이요."


민수의 짧고 단호한 대답에 나는 순간 멈칫했다. '시설'이라는 단어가 낯설게 느껴졌고, 민수의 담담한 얼굴과 내가 몰랐던 그의 환경이 겹쳐지며 묘한 감정이 밀려왔다. 나는 당황해서 빨리 상황을 모면하려 했지만, 민수는 여전히 담담했다.


"아, 그럼 보호자는 있지? 시설 선생님이라든지..."


학급 아이들은 각자 떠들고 있었지만, 나는 얼굴이 붉어졌다. 시설에 사는 학생이 있다는 정보를 전해 받지 못한 나로 인해 아이가 당황했을까 봐 걱정했다. 그러나 정작 당황한 사람은 나뿐이었다. 민수는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은 채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었다.


민수는 쌍둥이였다. 민수는 1분 차이로 영수의 형이 되었다. 하지만 민수와 영수의 부모는 일찍이 두 아이의 부모 역할을 포기했고, 그래서 둘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시설에서 자라게 되었다.


민수는 영수가 세상에서 가장 싫다고 했다. 반면, 영수는 세상에서 유일한 형을 가장 좋아했다. 민수는 영수를 밀어냈고, 영수는 형에게 다가가고 싶어 했다. 그래서 둘 사이에는 가끔 싸움이 벌어졌고, 대부분 영수가 맞곤 했다.


"영수가 언제부터 싫었어?"


"쌍둥이가 된 순간부터요."


민수는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았지만, 영수에 대한 미움만큼은 숨기지 않았다. 싸움으로 인해 영수가 육체적 고통을 겪고 심리적으로 상처를 받아도, 민수는 미안한 마음이 없었다고 말했다.


"민수야, 영수가 왜 그렇게 싫은 거야?"


"쟤는 귀찮아요. 그냥 싫어요."


민수는 동생 이야기를 할 때마다 단호했다. 내가 조금 둘의 간격을 좁히려고 의도하면 민수는 내 눈을 쳐다보며 말했다.


"선생님은 몰라요. 형이라는 게 얼마나 짜증 나는 건지."


민수는 형이라는 책임이 자신에게 강요된 것처럼 느꼈다. 형이란 이유로 더 많은 것을 참아야 하고, 더 많은 짐을 짊어져야 한다는 생각은 어린 민수에게 억울하다는 감정이 들게 했다. 또 똑같이 생긴 영수를 통해 자신의 불완전함까지 마주해야 하는 상황은 어린 민수에게 감당하기에는 어려운 일이었다.


민수는 동생을 밀어냈지만, 영수는 형의 관심을 간절히 바랐다. 영수에게 민수는 유일한 가족이었다. 영수는 형의 말 한마디, 작은 미소가 간절했다. 하지만 민수는 번번히 영수에게 등을 돌렸고, 그때마다 영수의 작은 희망은 무너졌다. 그럼에도 형을 향한 영수의 애정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 학년이 끝날 무렵까지도 둘의 관계는 가까워지기보다는 오히려 더 멀어졌다. 사춘기를 겪는 민수는 자신과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영수를 점점 더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그래서 동생보다는 자신보다 더 많은 시간을 살아 온 형들과 어울리는 것을 편하게 생각했고, 형의 세계에 발을 들일 수 없었던 영수는 함께 사는 동생들과 더 가까이 지내는 모습을 보였다.


민수를 보며 나는 어린 시절 동생이 버겁고 부담스러웠던 내 자신을 떠올렸다.


초등학교 시절의 기억은 많지 않지만, 마치 어렴풋이 흐릿한 기억 중 선명한 것 하나는 내가 동생을 꽤나 싫어했다는 것이다. 당시 부모님은 맞벌이로 바쁘셨고, 가난한 시절이라 나도, 나보다 네 살 어린 여동생도 유치원 근처에는 가보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초등학교 2, 3학년을 다닐 무렵, 7살이 된 여동생은 온 가족이 집을 나간 후에야 아무도 없는 집에서 홀로 아침을 맞이했야 했다.


동생은 뒤척이다 혼자 눈을 뜬 동생은 텅 빈 집에서 <TV 유치원>과 <뽀뽀뽀>를 보며 아침 시간을 보냈다. 집안은 마치 시간마저 멈춘 듯 고요하고 적막했다. 그 어린 나이에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하루를 시작해야 했던 동생의 마음은 얼마나 외롭고 두려웠을까. 몇 술 뜬 밥은 벌써 차가웠고, TV 소리만이 적막함을 깨는 유일한 소음이었을 것이다.


결국 동생은 자고 난 상태 그대로 옷을 입고 내가 다니는 학교로 오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어린 나이에 혼자 학교를 찾아온 용기가 놀랍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동생의 행동이 부끄럽고 싫었다. 학교 운동장의 철봉 아래에서 흙장난을 하고 있으면, 수업에 집중하지 않고 창밖을 내다보던 친구 하나가 내게 동생이 왔음을 알려주곤 했다.


"저기, 너 동생 왔다."


나는 깊은 한숨을 쉬며 창밖을 내다봤다. 바람이 철봉 아래로 흙먼지를 날리고 있었고, 그곳에 앉아 있는 동생의 모습은 더 초라해 보였다. 반의 다른 친구들도 창문 쪽을 기웃거리며 지저분하고 보기 싫은 동생의 모습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 왜 또 왔지... 제발 좀 오지 마.'


나는 동생이 학교에 오는 것이 그렇게 싫고 부끄러웠다. 꾀죄죄한 내 모습은 생각도 못하고, 꾀죄죄한 동생의 꼴이 너무 보기 싫었다. 그런 날은 하교 후 집에 와 7살짜리 작디작은 동생의 등짝을 후려치곤 했다.


"학교에 오지 말라고 했잖아, 창피하다고."


"할 것도 없고, 혼자니까..."


동생은 울먹이며 대답했지만, 동생의 눈물을 흘리는 동생에게 더욱 모질게 대했다. 그 날 동생을 때리던 내 모습도, 맞으며 울고 있던 동생의 모습도 지금까지도 기억한다.


그때의 나는 동생이 나를 졸졸 따라다니는 것이 너무 싫었다. 나만의 시간과 공간이 침범당하는 것만 같아 화가 났다. 민수의 눈에도 영수가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자신과 너무 닮은 존재, 그 자체가 거울처럼 자신의 불완전함과 책임감을 비추어 보였기에 민수에게는 더 큰 고통이었을 것이다. 형을 의지하며 다가오는 영수가 어린 민수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무거운 짐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그때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동생이 아니라, 동생을 책임질 수 없었던 나 자신이었다. 어린 나이에 스스로 감당해야 했던 불안과 부족함이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고, 그 무기력은 화살처럼 동생에게 향했다. 동생은 단지 나를 의지하며 사랑을 표현했을 뿐인데, 나는 그것을 짐처럼 느꼈다. 내 안의 두려움과 책임지지 못하는 미숙함이 동생을 밀어내는 방패가 되었고, 그 방패 뒤에 숨은 나는 점점 더 작아져만 갔다. 동생을 탓하며 나 자신을 탓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 시절의 나는 알지 못했다.


민수 역시 그런 자신을 마주하고 있을 것이다. 영수가 다가올수록 민수는 점점 더 깊이 마음의 문을 닫고 거리를 두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민수가 나처럼 후회하지 않기를 바란다. 시간이 지나 영수와 함께한 시간을 떠올리며, 지나온 시간이 미움과 갈등뿐인 후회로 남지 않기를 희망한다. 형이라는 이름이 짐이 아니라, 서로를 이어주는 따뜻한 연결고리로 느껴지는 날이 민수에게도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리하여 각자의 길 위에서 서로를 응원하며 살아가며, 그 속에서 자신이 성장했음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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