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by 이오샘

처음 지후를 봤을 때, 그는 교실 맨 뒤 구석에 앉아 있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엎드린 채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무언가에 몰두하는 듯 보였다. 수업 중에도 딴생각을 하거나 팔짱을 낀 채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자는 일이 잦았다. 학업에 관심을 두는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짧은 시간 동안 내가 본 그의 모습은 무기력 그 자체였다.


하지만 점심시간만 되면 그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됐다. 축구장에서의 지후는 누구보다 빠르고 강렬하게 움직였다. 친구들과 공을 쫓으며 발산하는 에너지는 교실에서의 무기력함과는 너무도 대조적이었다. 그는 웃고 소리치며 뛰었지만, 경기에서 밀릴 때는 금세 표정이 굳어지고 목소리가 높아졌다. 축구장에서 지후는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았고, 동시에 축구장은 지후의 감정을 폭발하는 유일한 장소처럼 보였다.


그날도 그랬다. 축구를 하던 중 작은 다툼이 격해졌고, 결국 지후가 친구를 밀어 넘어뜨렸다. 그리고 주먹을 휘둘렀다. 주변 친구들이 말릴 때까지 그는 멈추지 않았다. 결국 지후는 얼굴이 달아오른 채 교실로 돌아왔고, 그 뒤로도 한동안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자리에 엎드려 있었다.


“왜 그랬어?”


“그 새끼가 계속 깝죽대면서 놀리잖아요.”


마일리지가 쌓였던 모양이다. 지후는 가끔 욱하기는 했지만 폭력적인 아이는 아니었다. 아마도 상대 아이가 지후가 참을 수 있을 만큼 계속 밀어붙였던 듯하다.


“그렇다고 주먹을 쓰면 어떡해?”


“저번에도 참았는데, 오늘은 진짜 성질이 나서….”


“이제 기분이 좀 풀려?”


“몰라요.”


“어머니를 모실까, 아버지를 모실까?”


어머니는 집에 계시고, 아버지는 근무 중이었다. 지후는 고개를 떨군 채 대답했다.


“아빠요. 엄마한테는 말하지 말아 주세요. 엄마는 제 엄마가 아니니까요.”


그 말에 잠시 멈칫했다. 지후의 목소리에는 설명하지 못한 감정들이 묻어 있었다. 직접 말하지 않았지만, 그 어조 속에는 어딘가 깊은 그리움과 혼란스러움이 섞여 있었다. 지후에게 엄마와 함께했던 시간은 여전히 선명했지만, 이제 엄마는 영영 만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갑작스러운 투병 후 엄마가 떠나고, 지후는 여동생과 서로 의지하며 지냈다. 둘만의 시간이 많았고, 그 안에서 작은 위안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새엄마가 생기고 막내 동생이 태어나면서 집안의 분위기는 점차 달라지기 시작했다. 여동생은 새엄마와 빠르게 가까워졌지만, 지후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가족 안에서 점점 소외되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사춘기니까 그렇다지만, 정말 말을 너무 안 들어요. 밥 먹으라 하면 안 먹겠다 하고, 씻으라 하면 싫다고 소리치고. 하루 종일 자기 방에 틀어박혀서 짜증만 내고요. 제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겠고,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학기 초 지후 어머니와 전화 상담을 했다. 어머니는 작은 일에도 화를 내는 지후를 이해하기 어려웠고,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몰라 답답해했다. 낳지 않은 아들과 가까워지려는 노력도 좀처럼 결실을 보지 못했다. 아버지 역시 직장 문제로 집을 비우는 시간이 많아, 어머니는 혼자서 이 상황을 감당해야 했다. 그렇게 어긋난 관계는 조금씩 더 깊은 거리감을 만들어 갔다.


“아버님, 지후가 오늘 싸움을 해서 학교에 좀 오셔야겠습니다.”


“언제 갈까요?”


“선도로 갈 것 같은데, 오늘 바로 오실 수 있으실까요?"


아버지는 잠시 망설이다가 곧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바로 가겠습니다."


그날 퇴근을 서둘러 학교로 온 아버지는 군복 차림에 피곤한 기색이었다. 지금껏 아들을 둘러싼 문제를 전혀 모르는 건 아니었겠지만, 바쁜 일상 속에서 이를 마주할 시간이 없어 보였다. 40대 초반임에도 무겁고 지친 모습은 그의 복잡한 심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듯했다.


“가정에 더 신경을 쓰고 싶어서 이사를 왔어요. 이쪽 부대는 일이 좀 수월하다는 말을 들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오고 나서 갑자기 사람이 줄고 인원이 보충되지 않으면서 일이 더 바빠졌습니다. 아이는 방에만 있으니 대화할 시간도 줄고, 주말에는 다른 가족을 챙기느라 지후에게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습니다. 아내와 지후는 성격이 워낙 달라 자주 부딪히곤 하는데, 중간에서 애를 써도 잘 되지 않더라고요.”


아버지는 바쁜 일상 속에서 지후와의 관계가 서먹해졌음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더 많은 시간을 들이고 싶었지만, 여러 사정으로 온전히 집중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아내와 지후의 갈등도 중재하려 했지만, 두 사람 사이의 간극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고, 아버지도 점점 지쳐가는 모습이었다.


그의 무거운 표정과 한숨에서 그가 얼마나 고단한지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아버지의 힘듦이 느껴지니, 나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모든 게 안타까웠다. 지후는 지후대로,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각자의 자리에서 헤매고 있는 듯 보였다.


“둘이서 카페 데이트 같은 것은 어떠세요? 축구를 같이 하셔도 좋을 것 같아요.”


“아이가 가려고 하는 고등학교 입학 설명회에 함께 가 보시는 것도 어떠실까요?”


아버지는 내 제안을 잠시 고민하더니 한번 해보겠다고 답했다. 그 후 그는 지후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정말로 애를 쓰기 시작했다. 시간이 되는 주말에는 함께 축구를 하며 대화를 시도하고, 지후의 관심사에 귀 기울이려 노력했다. 학교 설명회에 간 날, 지후는 학교를 둘러보며 아버지에게 물었다.


"이 학교에 다니면 어떨까요, 아버지?"


그 한마디로 어색했던 두 사람 사이에 대화가 시작이 되었다. 아버지는 천천히 대답하며 지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고, 그날 이후로 두 사람은 함께 진학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고, 결국 지후는 부사관 제도가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이런 과정은 지후와 아버지 모두에게 중요한 변화의 시작이었다. 단순히 진로를 결정하는 것을 넘어, 그동안 서먹했던 관계가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했다. 아버지와의 시간을 통해 지후는 점차 가정 안에서도 안정을 찾아갔다. 여전히 사춘기의 불안과 흔들림이 남아 있었지만, 그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느끼며 마음 한구석에서 편안함을 찾았다. 가족들 간의 어색했던 공기도 부드러워졌고, 어머니와도 소통의 물꼬가 트였다. 비록 새엄마와의 관계가 완벽히 좋아지지는 않았지만, 서로를 이해하려는 작은 시도가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그 변화는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학교에서도 지후는 조금씩 변해갔다. 늘 무기력하게 엎드려 있던 모습이 줄어들고, 친구들과 더 자주 어울리는 모습을 보였다. 가끔은 내 자리로 와서 먼저 말을 건네기도 했다. 수업에 조금씩 더 집중하려는 그의 태도는 지후가 이전과는 다른 마음가짐으로 자신의 삶을 대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었다.


나는 지후의 변화에 깜짝 놀랐다. 이렇게 빠르게 변할 줄은 몰랐다. 아버지의 작은 관심과 노력이 지후에게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칠 줄은 정말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동시에, 지후가 그동안 얼마나 가족의 관심과 소통에 목말라 있었을지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가족의 따뜻한 행동 하나하나가 아이에게 얼마나 큰 위로와 힘이 될 수 있는지를 지후를 통해 다시금 알게 되었다. 가족은 함께 살아가는 존재를 넘어, 서로의 삶에 깊이 스며들어 영향을 주는 소중한 존재임을 새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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