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왜 그런 거야?"
격양된 내가 물었다.
지훈이는 잠시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별 생각이 없는 듯 바로 말을 꺼냈다.
"어제 학원에서 친구랑 다툼이 있었어요. 전에 그 친구가 자기한테는 모든 비밀을 말해도 된다고 해서 비밀을 말했거든요. 근데 어제 말다툼 하다가 다른 애들 앞에서 말해버렸어요. 그 순간 정말 배신당한 기분이 들었고, 너무 속상했어요. 처음엔 그냥 '별거 아니야' 하면서 넘기려 했어요. 그런데 자고 일어났는데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어요."
지훈이는 멈추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근데 오늘 그 TV 영상을 보니까... 그 아이처럼 저 정도로 힘든 상황이면 나도 그런 극단적인 생각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냥 속상해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거 아닌가 싶었어요. 그 아이는 결국 그런 상황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자살을 생각한 거잖아요. 나도 그런 상황이면, 그 아이처럼 그런 생각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싶었어요. 나도 많이 힘드니까 그래서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어요."
"지훈아, 그게 무슨...?"
나는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지훈이는 오늘 아침 자살 예방 교육 영상을 보고, 자살을 시도해 본 것이었다. 내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다. 지훈이가 영상에서 본 상황을 자기 삶에 비추어, 힘든 상황에 놓인 '저 인물이 저렇게 행동한다면 나도 저렇게 해야 하는 건가?’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떠올랐다.
그 순간의 충격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교육적 목적으로 제시된 영상이 아이에게 위험한 행동을 유도할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깜짝 놀랐다. 교육이 의도한 바나 그 메시지가 왜곡되어 전달될 수 있구나. 그렇다면 나는 이 아이에게 어떤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함이 밀려왔다.
이 사건을 겪고 나서, 나는 학교에서 실시되는 다양한 교육 영상들이 학생들에게 미칠 영향을 더 신중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자살 예방 교육뿐만 아니라, 도박 중독 예방, 마약 중독 예방, 성매매 예방, 장애인 이해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룬 교육 영상들을 학교에서는 의무적으로 방송한다. 그러나 그런 영상 속에 잠재적으로 전달되는 내용이 학생들에게 어떤 반작용을 일으킬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이 커졌다. 각 영상은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려 하지만, 그 내용이 학생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그들이 어떤 감정을 느낄지에 대한 걱정은 나의 몫이 되어버린 것만 같았다.
그러니 이런 교육 영상들이 그 자체로 중요한 정보를 전달하면서도, 그 방식이나 내용에세 학생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고려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에게 중요한 문제들을 가르쳐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그 방식이 과연 도움이 될지, 아니면 잘못된 호기심이나 의도치 않은 정보의 전달이나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줄 수 있을 것에 대한 가능성으로 인해 나는 점점 더 '프로 걱정러'가 되어가고 있다.
예를 들어, 나 역시 도박 중독 예방 교육 영상을 보면서 나름대로 새로운 정보를 얻었다. 영상 속에서는 도박이 어떻게 시작되고, 어떤 종류의 도박이 있는지, 돈을 구하는 방법까지 보여준다. 사실 처음엔 "도박? 그건 나랑 상관없지"라고 생각했지만, 영상을 보며 그 과정들이 내게도 새로운 정보가 되었다. "이런 게 이렇게 돌아가는구나..." 하면서 도박이라는 개념이 조금 더 실체화되는 느낌이었고, 나도 모르게 그 정보를 내게 적용하며 이해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나조차도 이런데 이런 정보가 학생들에게 전달될 때 혹시나 있을 부작용에 대해 걱정스럽다. 도박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건 중요하지만, 너무 구체적으로 다루면 아이들이 도박이라는 것에 대해 더 많은 호기심을 가질 수도 있지 않을까? 의도는 분명 예방이었지만, 역설적으로 더 많은 관심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이 걱정되는 것이다.
마약 중독 예방 영상에서 다루는 내용도 비슷한 걱정을 불러일으킨다. 마약이 얼마나 위험한지 경고하는 건 분명 중요하다. 마약이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그것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파괴하는지 그 사실은 반드시 알려야 한다. 하지만 영상에서는 마약에 접근하는 방법과, 마약에 점차 중독되어 가는 과정을 다룬다. 그래서 이런 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그 위험성보다는 마약 그 자체에 대해 호기심을 느낄까 봐 두렵다. 심지어는 그들이 마약을 한 번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는 현실적인 우려가 계속 떠오르는 것이다.
성매매 예방 교육도 마찬가지다. 영상에서는 성매매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그 과정에서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을 다룬다. 성매매가 예방해야 할 문제이며 아이들이 관심을 두지 말아야 할 것은 분명하지만, 성매매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그 안에서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고통을 겪는지를 구체적으로 다루는 것이 오히려 성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나 왜곡된 생각이 더욱 굳히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 것이다. 사실, 아직 청소년인 우리 아이들이 연애의 설렘만 알았으면 좋겠다. 긍정적인 성관념을 가지고, 청소년답게 연애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성매매와 같은 어른들의 불편한 이야기를 굳이 알게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성격은 조금 다르지만 장애인 이해 교육 때도 나는 걱정이 많다. 이런 영상은 주로 장애를 가진 친구들이 겪는 어려움과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자체로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려 하지만, 우리 반의 통합반 학생이 그 영상을 어떻게 볼지 걱정이 되어 매번 나는 그 아이들의 눈치를 본다. 영상 속의 ‘극복’을 통합반 학생이 어떻게 바라볼지도 걱정이고, 또 우리 반 학생들이 그 영상을 보고 통합반 학생을 어떻게 바라볼지도 걱정이 된다. 지나치게 이상화된 인물의 상황과 극복 모습이 현실과 괴리감을 주거나, 장애를 가진 학생들에게 부담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 떠오르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제공되는 영상은 여러 사람들이 고민하여 만들어낸 수준 높은 것이고 하나의 영상이 모든 문제를 고려하고 만들어 지기도 쉽지 않다. 그러니 나는 내 나름대로의 걱정과 고민의 과정을 거쳐 영상 시청 후 간단한 첨언을 덧붙여 학생들이 건강하고 중립적인 의견을 세울 수 있도록 돕는다.
이렇게 나는 나대로 또 걱정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 이러나저러나 나는 점점 더 '프로 걱정러'가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