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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a Feb 26. 2024

나는 엄마가 싫다...

Mia엄마의 보호자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평범한 날이었다.

2022년 6월 어느 날,

출근을 하고, 일에 치여 사는 직장인처럼 하루를 보내고, 

내가 좋아하는 중국어 수업을 듣기 위해 강남역으로 갔다.

비가 매몰차게 내리는 6월 장마의 날씨에 바지가 젖어 수업시간 내내 찝찝했다.

이렇게 까지 중국어를 배우러 가야 하나 싶었다.

그날도 그렇게 내 일상이 흘러갔다.

밤 9시가 넘은 그날 저녁,

수업이 끝난 후 무거운 몸을 이끌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남편(지금은 전남편)에게 걸려 온 전화는 내 34년 인생의 모든 판을 한 번에 뒤집어엎었다.

'장모님이 좀 아픈 것 같아, 큰 병원에 가보래'




나는 어릴 적에 치과가 너무 무서워서 입을 벌려보라는 의사에게 진절머리 나게 반항한 후로

병원 주변은 얼씬도 하지 않았다.

물론 엄마도 먹고살기 바빠 그 흔했던 건강검진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렇게 키운 병이 '난소암'이다.

단어도 낯설고, 어디에 생겨먹은 병인지, 어떻게 생기는 병인지 알지도 못하는데

한 순간에 나는 '엄마의 보호자'가 되었다.

그것도 암을 함께 이겨내야 하는 그런 보호자...

빽빽하게 앉은 진료실 앞의 간이의자에서 엄마는 한없이 울었다.

엄마의 보호자 딱지가 붙은 나는 울 수 조자 없었다.

울어야 하는지, 이겨낼 수 있다고 파이팅을 외쳐야 하는지... 나도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어쩌지, 어떻게 해결해야 하지,...

눈앞이 막막하고, 현실에 닥친 모든 것들이 걱정되었다.

그렇게 수술이 잡혔고, 수술의 결과는 이미 '말기'였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엄마가 큰 수술을 이겨내었고, 회복을 했고,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하지만 순항 중이었던 내 삶에 엄마의 병으로 브레이크가 걸린 것은 너무 감당하기 힘들었다.

내가 꿈꾸었던 내 삶의 한 페이지에는 이런 내용은 없었더랬다.

누가 쓴 지 모르는 가혹한 페이지는 찢어버릴 수도 없고, 

누가 이런 장난을 쳐놨는지 알 수도 없다.

그저 나가는 수밖에..

그저 페이지를 넘겨내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내 하루하루에 브레이크가 걸리게 한 엄마의 모든 게 싫었다.

가난 밖에 물려줄 것이 없다고 혼자서 알아서 잘 살라고 독하게 내뱉었던 어린 시절 엄마의 말은

성인이 되어서도 늘 가슴 한편에 남아있었다.

나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고, 그렇기에 엄마가 유일한 가족이었다.

어린 시절 엄마와 나는 참으로 가까웠다.

하지만 내가 사춘기를 거치고, 엄마가 청소부 일을 시작하면서 일에 지친 엄마는 나에게 독한말을 많이 했다.

엄마는 늘 '일찍 죽어야겠다'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그냥 나에게 더 이상 짐이 되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겠지만

유일한 기족이었던 엄마가 나를 두고 일찍 죽는다고 말하는 게 어린 시절 늘 상처가 되었다.

혼자 남겨지게 되는 거니깐...


쿰쿰한 냄새가 나는 엄마 옷도,

본드가 다 삭아서 떨어진 엄마 신발도,

알지도 못하는 브랜드가 적힌 엄마 가방도,

화장끼 하나도 없는 엄마 얼굴도,

마주하는 게 힘들었다.

딸이 돈을 적게 버는  것도 아닌데, 

내가 사준 좋은 옷과 신발 그리고 가방 모두

먼지가 뽀얗게 쌓인 채로 골방에 처박혀 있었다.

왜 저렇게 궁상맞게 살까

왜 저렇게 자기 몸하나 못 챙길 정도로 놔뒀을까

독하게 내뱉을 때는 언제고 

말기 암환자가 되어서  환자복을 입고 기운 없이 누워있는 엄마의 모습을 보니

분수처럼 눈물이 터졌다.

소독약 냄새가 진하게 퍼지는 화장실에서 숨죽여 울면서 생각했다.

'나는 엄마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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