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1시. '삐삐 삐삐 삐리릭~'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에 깜짝 놀라 나가보니 딸아이가 들어오며 와락 안겨 펑펑 운다.
"너 뭐야~"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엉엉~~~."
이 날 오후는 올해 12살이 된 딸아이가 모처럼 같은 아파트에 사는 친구 집에서 잔다고 잠옷을 챙겨간 날이었다. 오랜만에 친구 집에서 자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기에 흔쾌히 허락을 했고, 아이는 상큼한 인사를 남기고는 쌩하니 나갔다.
집이 텅 빈 것 같았다. 분명 딸아이만 없는데. 집은 조용했다. 항상 옆에서 종알거리며 나에게 행복을 전해주는 존재. 때론 나를 귀찮게도 하는 존재가 딸이었다.
조용한 틈을 타 노트북을 켜고 내일 해야 하는 일을 저녁에 다하자 했다.
시곗바늘이 밤 12시를 넘어서서야, 잘 준비를 했다. 가만히 누워 눈을 깜박깜박했다. 아이가 없어서였을까. 쉬이 잠이 들지 않았다. 그렇게 1시간 가량이 흐르고, '삐삐 삐삐 삐리릭~' 소리가 들린 것이다. 어찌나 놀랐던지. 밖으로 뛰어나가니 아이는 나에게 뛰어와 와락 안겼다.
아이가 말했다. 친구와 놀다가 자려고 누웠는데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다고. 친구에게 그렇게 말하니 자신도 그런 적이 있었다며 위로를 해줬다고. 한데 시간이 지나도 잠은 오지 않고 엄마 얼굴만 계속 생각이 나더라는 거였다. 결국은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 눈물이 와르륵 쏟아졌다고. 그걸 본 친구 엄마가 집으로 데려다준 것이었다. 이 무슨 민폐란 말인가? 같은 아파트여서 다행이었지. 아이가 먼저 자고 싶다고 해놓고서 엄마 보고 싶다고 우는 경우라니. 아이는 울면서 계속 죄송해요.라고 되뇌었다. 친구한테도 미안하고 친구 엄마에게도 미안하고, 그리고 나에게도 미안하다며. 그런데 자신은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어쩔 수가 없었다고 말이다.
그럴 때가 있다. 다 큰 나도 갑자기 엄마가 어딘가로 사라질 것 같고, 지금 당장 봐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아이도 그런 느낌이었을까? 우는 아이를 꼭 안아서 달래고는 침대에 누워 다 큰 아이 등을 토닥토닥해주었다.
엄마란 도대체 어떤 존재일까? 뭐 그리 잘해준 것도 없는데 내가 뭐라고. 아이 볼을 비비며 사랑한다고 할 때도 있고, 손등에 뽀뽀를 하며 네가 있어 너무 감사하다고 할 때도 있지만, 투정을 부리는 아이에게 버럭 할 때도 많다. 그런데도 아이는 돌아서면 나에게 와 안긴다. 엄마라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아이들은 엄마를 사랑한다. 어떤 행동을 해도 아이들은 금새 엄마를 용서하고 언제 혼낫냐는 듯 다시금 웃어보인다.
모든 것이 서툴었던 나를 아무런 조건없이 사랑해준 아이. 힘들 때 우울할 때 아이의 미소 하나로 웃음 지을 수 있었다. 아이의 존재 자체로도 감사하고 행복하고 또 눈물이 난다. 아이의 무한한 믿음과 사랑으로 엄마로서 부족한 나였지만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깜깜한 방 안. 희미하게 아이의 윤곽이 보였다. 더듬더듬 아이의 얼굴을 만져보고는 잠든 아이의 이마에 살짝 뽀뽀를 했다. 갑작스레 옛날 아이에게 잘 못해 주었던 일들이 스쳐 지나갔다. 항상 뒤돌아서면 후회할꺼면서 왜 막상 아이 앞에서는 억척스러워지는걸까? 나의 화난 모습을 가장 많이 본 사람. 하지만 웃는 모습도 가장 많이 본 사람. 그 사람들이 바로 나의 아이들이다.
언젠가는 시간이 지나 한 번 더 바라봐줄 걸 조금 더 귀 기울여줄걸 이라며 후회할 수도 있다. 항상 옆에 있을 것 같지만 벌써 이렇게 커버린 걸 보면 옆에서 종알거릴 날도 얼마 남지 않았을 것 같다.
나의 아들과 딸로 와줘서 고맙다. 너희에게 엄마라는 존재가 될 수 있음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