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2화 <정리되지 않는 집>

by 청아

2년 전 서울로 이사 오던 날, 우리는 많은 것을 버렸습니다.


남편은 정리의 기회라며 상쾌해했고, 저는 마음속 어딘가가 조금씩 비어 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오래된 책과 인형, 깨진 컵들을 내놓으며 '다시 시작한다'는 말 대신 '조금씩 사라진다'는 감정을 느꼈어요.

그때는 몰랐습니다.
마음을 비운 만큼, 그 자리에 또 다른 공허가 자리 잡는다는 걸요.


이사한 집은 구조가 달랐습니다. 거실은 넓어졌지만, 책장이 들어설 자리가 애매했죠. 책들을 줄였는데도 여전히 자리가 모자랐습니다. 거실 앞, 뒤가 확장이 된 집이지만 24평의 오래된 아파트에서는 그렇게 넓어진 것이 아니죠. 짐을 정리한다는 건 단순히 물건을 놓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것들을 보이지 않는 곳에 숨기는 일이었죠.


주인 바뀐 책상의 운명

남편은 이번에도 빠르게 정리를 끝냈습니다. 상자에 숫자를 붙이고, 물건의 위치를 정하고, 책상 위에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어요. 그의 공간은 깔끔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빈 책상을 볼 때마다 손끝이 차가워졌습니다. 모든 게 제자리에 있어도, 어딘가 낯설고 텅 빈 느낌이었죠.

처음의 깨끗했던 책상은 주인이 바뀌면서 책상 위의 공간은 빈 공간이 없이 빼곡히 채워졌습니다. 그런 책상과 주변을 본 남편의 반응은 경상도 사투리로 "왜 이리 쑥신하노. 정리해."

"나는 정리한 거야."

두 사람은 이렇게나 다릅니다.


며칠 뒤, 저는 박스 하나를 열었습니다.

아이가 그린 그림.
찢어진 달력 조각.
오래된 다이어리.
포스트잇에 적힌 오래된 문장.

그건 '정리하지 않은 짐'이 아니라, '정리하지 못한 나의 시간'이었습니다.


"이건 언제 버릴 거야?"


남편의 목소리는 무심했지만, 제게는 '왜 아직 못 놓아?'라는 질문처럼 들렸습니다. 대답할 수 없었어요. 버리지 못한 이유가 너무 많아서, 설명하기엔 너무 사소해서요.

그냥 그 박스를 다시 덮었습니다. 그렇게 2년을 다시 묵혔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박스는 집 안의 감정의 무게 중심이 되었습니다.

보이지 않지만, 늘 거기 있었죠. 옷장 깊은 곳에, 침대 밑에, 그리고 제 마음 한구석에.


정리되지 않은 집은 결국 정리되지 않은 저였습니다.


밤이 되면 남편은 불을 끄고 말합니다.
"이제 다 정리됐네."

저는 고개를 끄덕이지만,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상자 하나가 열려 있습니다. 2년 전에도 지금도 남편은 저의 정리력에 혀를 끌끌 찹니다. 또한 마음에 안 들기도 할 테고요. 하지만 저에게는 나름의 이유가 있답니다.

그 안에는 버리지 못한 말들과 아직 꺼내지 못한 감정들이 조용히 숨 쉬고 있죠.

정리란 결국, 비워내는 일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이 집에서, 이 삶에서,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보낼지.
저는 여전히 그 사이에서 흔들립니다.


다음화 <버림의 온도 차이>

keyword
이전 02화1화 <감정의 방, 이성의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