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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버림의 온도 차이>

by 청아

남편은 정리를 '결단'이라 말합니다.
버릴지, 남길지. 그 사이에 망설임이 끼어들면 안 된다고요. 그의 말에는 단호함이 있습니다. 늘 명확하죠.

반면 저는 모호합니다. 손에 쥔 물건 하나에도 오래 머뭅니다.

그 물건을 마지막으로 쥐었던 순간의 공기, 손끝의 감정, 그때의 나까지 함께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거실 한켠에서 박스를 열었습니다. 겨울 외투와 아이의 낡은 장난감이 함께 들어 있었어요.

"이건 버려야 하지 않아? 아이도 안 갖고 노는데."

남편의 목소리는 담담했습니다.

"응, 그런데 이건 좀..."

"놔두면 쓰지 갖고 놀지 않을까?"

말을 이어가다 멈췄습니다. 이유는 늘 비슷합니다. 버리지 못할 만큼의 기억이 묻어 있으니까요.

그리고 압니다. 아이가 더 이상 가지고 놀지 않는다는 것을.


그는 제 망설임을 보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정리라는 건 결국 선택이야. 계속 쌓아두면 더 복잡해지잖아."

그의 말이 틀리진 않습니다.


그런데 저는 매번 그 논리에 숨이 막힙니다.
그의 말이 너무 옳아서, 제 마음이 틀린 것처럼 느껴지니까요.


"나는 이걸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 버리면, 그때의 나까지 없어질 것 같아서."


제가 조심스럽게 말하자, 남편이 잠시 멈춰 섰습니다.

"그래도 결국 버려야지. 그래야 새로운 게 들어오잖아."

그는 웃으며 말했지만, 그 말이 제 안에서는 천천히 가라앉았습니다.



정리의 기준은 같지만, 그 온도가 다릅니다.

그는 버림으로 새로움을 만들고,
저는 버림으로 빈자리를 느낍니다.

가끔은 남편도 버렸던 물건을 찾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조금만 더 두었으면 좋았을 텐데, 작은 돈이라도 다시 사면 낭비잖아.”

그렇게 말할 때면, 저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웃습니다.

정리의 결단도 결국, 사람의 마음만큼은 완벽히 버릴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그는 깔끔함 속에서 안정을 찾고, 저는 어수선함 속에서 시간을 품습니다.


우리는 같은 집에 살지만, 서로 다른 온도의 공기를 마십니다.
그의 공간은 시원하고 명료하고, 제 공간은 미지근하고 흐릿합니다.

밤이 되면, 저는 남편이 잠든 방 옆에서 혼자 박스를 정리합니다.

버리려던 장난감을 다시 꺼내어 먼지를 닦고, 책 사이에 끼워둔 메모를 다시 읽습니다.
마치 오래된 친구에게 작별 인사를 하듯이.

버림은 그에게 결단이지만, 저에게는 긴 이별입니다.

그가 잠든 사이, 저는 조용히 중얼거립니다.


"나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어."


그 말은 남편을 향한 변명이 아니라, 나 자신을 향한 고백이었습니다.

다음화 <물건에 남은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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