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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버리기 전, 한 번 더 안아보기>

by 청아
ChatGPT Image 2025년 11월 10일 오후 09_27_26.png AI 이미지 생성

손바닥보다 작은 신발이 제 손에 들려 있습니다.

옷방과 베란다 한쪽에 쌓여 있던 오래된 상자들.
여름엔 선풍기 받침으로, 겨울엔 난방기 옆 탁자로 쓰였던 상자들.

오늘은 정말 버려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이건 이제 진짜 버리자."


남편의 말이 틀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제 숨이 한 박자 멈췄습니다.

박스 안의 작은 신발. 아이가 처음 걸음을 떼던 날의 신발이었습니다.

흙 묻은 밑창을 어루만졌습니다.


그날 저녁, 이 작은 신발을 씻으며 '이제 시작이구나' 생각했던 지난 기억.
그때의 떨림이 손끝에 그대로 살아났습니다.

"이건 좀..."

말끝이 흐려졌습니다.

남편이 제 표정을 보고 조용히 웃었습니다.

"괜찮아. 버리기 전에, 한 번만 더 봐."

"이제는 애들도 사용할 수 없는 것들이야. 추억은 추억으로 남겨."

그 말이 맞는 말인데도 쌀쌀 맞으면서 참 이상하게 따뜻했습니다.


처음으로, 그가 제 속도를 기다려주는 느낌이었죠.

그래서 정말 한 번 더 봤습니다. 그에게는 이 기다림이 속이 터질 것입니다. 그냥 버리면 그만인 것을.

그래도 말 없이 기다려 주었습니다.

아기의 신발. 낡은 모자. 색 바랜 편지. 첫 낙서가 그려진 종이.

하나씩 손으로 쓰다듬었습니다.
그때의 공기와 냄새, 손끝의 온도가 그대로 돌아왔습니다.

이건 단순히 '물건을 버리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시간과의 작별이었고, 그 시절의 나와의 인사였습니다.


한참 동안 그대로 앉아 있었습니다.

작은 신발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두 손으로 감쌌습니다.

버리기 전, 그 시절의 나를 한 번 더 안아보는 순간.

"이제 괜찮아?"

남편의 목소리가 부드러웠습니다. 나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최선을 다해 참아주는 것이었습니다.

"응. 이제 괜찮아."

그는 제 손에서 조심스레 신발을 받아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보더니,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도 알았나 봅니다. 이 작은 신발 속에 담긴 시간의 무게를.

원래는 미련 없이 그냥 쓰레기통으로 직행을 하지만 저를 배려한 것이라는 것을 압니다.


정리란 결국 그런 것 같습니다.

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떠나보내기 전에 한 번 더 품기 위해서.
놓아주기 전에 한 번 더 안기 위해서.

밤이 되어 불을 끄고 누웠습니다.

낡은 물건들이 하나씩 떠올랐습니다.
그 안에 있던 기억들이 빛처럼 스며드는 느낌이었습니다.

이제야 알겠습니다.


비운다는 건 잊는 게 아니라 안았던 것들을 천천히 내려놓는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오늘, 오래된 상자를 버렸습니다.

하지만 그 속의 시간들은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습니다.


보이지 않지만
따뜻하게.
영원히.

재시도


다음화 <비워진 공간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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