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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마음에 남은 목소리>

by 청아
ChatGPT Image 2025년 11월 10일 오후 09_13_29.png AI 생성 이미지

오래된 휴대폰의 화면을 켰습니다.
'음성메모' 폴더. 2년 전, 3년 전, 5년 전.

손가락이 멈췄습니다. 아이들이 두 살쯤 되었을 때. 그때 녹음해 둔 목소리들이 거기 있었습니다.


'엄마~'
'안녕~'
'사랑해요~'

'아이들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들...'


재생 버튼을 누르기도 전에 가슴이 꽉 차올랐습니다.
이 소리를 들으면, 다시는 그때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눌렀습니다.

작은 스피커에서 낯설 만큼 어린 목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어눌하고 맑고, 아직 세상에 상처받지 않은 소리.

그 짧은 숨소리 사이로 그때의 공기가, 웃음이, 나의 젊은 목소리까지 함께 흘러나왔죠.

그 순간 알았습니다.
정리하지 못한 건 물건이 아니라 시간이었다는 걸요.

"뭐 듣고 있어?"

남편이 거실로 들어왔습니다.

"아이들 목소리. 옛날 거야."

그는 말없이 제 옆에 앉았습니다. 조용히 핸드폰 스피커 소리에 귀 기울였습니다.

침묵.

둘 다 숨을 죽이고 들었습니다.
화면 속 시간은 2분 17초.
하지만 그 안에는 몇 년의 시간이 압축되어 있었습니다. 밤새 아이가 울면 서로 눈빛으로 신호를 주고받던 시절. 부모라는 이름에 아직 서툴던 두 사람. 그때의 우리가 거기 있었습니다.

녹음이 끝났을 때, 남편이 천천히 말했습니다.

"이건... 그냥 놔두자. 삭제하지 말고."

"응.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그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습니다.
처음으로, 그도 버리지 못하는 게 있다는 걸 인정하는 순간이었죠.

서랍 속 메모지처럼, 이 작은 음성파일도, 영상파일도 우리에게는 정리되지 않은 마음의 한 조각이었습니다.

그날 밤, 잠들기 전에 다시 한번 들었습니다.

작은 숨소리.
웃음.
옹알이.

그 소리들이 어둠 속에서 천천히 울렸습니다.

정리란 어쩌면 잊는 일이 아니라 기억을 새로운 자리에 다시 놓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보이지 않아도 남아 있는 것들. 들리지 않아도 울리는 목소리들.
그것들이 가끔 제 마음을 두드리며 속삭입니다.

"우린 여전히 여기에 있어요."

불을 끄고 눈을 감았습니다. 소리는 사라졌지만 울림은 남았습니다.

아주 조용하고 아주 오래가는 그런 여운이었습니다.


다음화 <버리기 전, 한 번 더 안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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