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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서로의 방식으로 살아간다는 것>

by 청아
ChatGPT Image 2025년 11월 23일 오후 09_22_32.png AI 생성 이미지

아침 공기가 차가웠습니다.

거실과 안방 한쪽, 미처 정리하지 못한 상자 몇 개. 박스 위 얇은 먼지를 손끝으로 쓸어내렸습니다.

'이건 아직 조금 남아 있어도 괜찮다.'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편은 여전히 깔끔했습니다.


컵은 제자리에, 리모컨은 항상 같은 각도로.

저는 여전히 물건을 잠시 올려두고 다시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이런 차이가 작은 다툼이 되었겠죠. 하지만 이제는 서로의 방식에 간섭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다툼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다툼이 발생은 하지만 그래도 서로를 이해합니다. 저만의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이해를 해주는 것 같습니다.


"너는 너 방식이 있지. 나는 내가 편한 방식이 있고."

그가 어느 날 말했습니다.

그러다 쌍둥이들을 보면서 나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는 성향을 꼭 빼닮은 아들은 두번 세번 돌아보더라고요. 이렇게 거울치료가 되는 걸까요?


처음엔 남편의 말이 쓸쓸하게 들렸지만 지금은 그게 '평화'라는 걸 압니다.

모두가 같은 리듬으로 살 필요는 없다는 걸요.

점심쯤 아이들이 뛰어다녔습니다. 장난감이 금세 거실에 흩어졌죠.

예전처럼 잔소리를 하려다 멈췄습니다.

"나중에 치우자."

그 한마디가 이상할 만큼 가벼웠습니다.

남편은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지만 실소를 터트립니다.

"이제 많이 달라졌네."

"응. 항상 깨끗하지 않아도 괜찮은 것 같아. 그래도 마음에 안드는 것은 어쩔수 없네."

그가 잠시 멈추더니 대답했습니다.

"맞아. 꼭 정리돼야만 편한 건 아니지. 모든 물건을 당장 필요하지 않다고 버릴 필요도 없고."

"물건들에게도 시간을 주면 좋을 것 같아."


그 순간, 작은 침묵이 흘렀습니다.

예전처럼 어색한 침묵이 아니었습니다. 이제는 서로를 이해하는 여백 같은 침묵이 되었죠.

저는 아직도 물건을 쉽게 버리지 못합니다.
남편은 여전히 계획적(정리하면서?)으로 살아갑니다.

그 다름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이제는 그것이 우리의 균형입니다.

정리가 끝나지 않은 집. 그 안에 흐르는 서로의 리듬.

어느 날은 제가 조금 더 느리고 어느 날은 그가 조금 더 기다립니다. 삶은 그런 조율의 연속 같았습니다.

누군가의 방식이 옳거나 틀린 게 아니라 서로의 속도를 알아가는 일.

밤이 되면, 거실 조명이 벽에 부드럽게 번집니다.


빈 서랍.
남은 박스.
테이블 위에 놓인 책 한 권.


그 모든 불완전함이 이제는 우리의 일상처럼 자연스러웠습니다.

"오늘은 괜찮았지?"

남편이 불을 끄며 물었습니다.

"응. 오늘도 괜찮았어."

정리는 끝나지 않았지만 우리의 마음은 제자리를 찾았습니다.


서로의 방식으로 살아간다는 건 같이 맞추는 일이 아니라 다른 박자 속에서도 함께 걷는 일.

그 다름 속에서 우리는 조금 더 단단해졌습니다.


조용하고
단정하게
우리의 방식대로.

그리고 이제 압니다.


정리는 끝이 아니라 계속되는 삶의 일부라는 것을.

우리의 정리법은 여전히 다르지만 그 다름이 만들어내는 조화 속에서 우리는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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