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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아와 랄라 Jul 20. 2020

좋아하는 걸 줬지만 재능은 주지 않았을 때

오로지 나만을 위한 글쓰기

작가 『김미아』


쓰다  누군가에겐 마음을 정화하는 시간, 때론 돈벌이가 되기도 하지만 전혀 성질이 다르다.


현재 외주를 받아서 글을 쓰고 있다. 약간의 고료가 들어온다. 정말 약간이라서 이것만으로는 생활이 어렵다. 월세 내고 생활비에 약간 보탤 수 있을 정도. 영화를 좋아하고 글쓰기를 좋아하지만 영화 글을 쓰며 돈을 번다는 건 전혀 성질이 다른 일이었다. 누군가를 상처 줄 수도 있는 글을 써야 한다는 건 나를 때때로 괴롭게 만들었다. 글을 그만 쓰고 싶었다.


처음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던 건 초등학생 때였다. 나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일도 재밌었고, 이 안에서는 모든 게 내 뜻대로 되는 게 신기했다. 쓰다 보니 캐릭터들이 각자 살아 움직이면서 이쪽으로 가고 싶다고 외치는 것도 즐거웠다. 그래서 막연히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다. 서울예대 실기 시험을 통과했을 때, 나만큼 창의적이고 글을 잘 쓰는 애는 없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결국 등록금 문제로 인해 서울예대는 가지 못했지만 여전히 내 안에서 나는 최고로 글 잘 쓰는 애였다.


그러나 대학은 다른 물이었다. 모두 나보다 글을 잘 썼고 나는 점점 위축됐다. 학과에서 진행하는 백일장에 나갔는데, 그때 작은 상을 수상했다. 대상은 고등학생이 탔다. 과에서 제일 글 잘 쓴다고 정평이 난 선배가 고등학생에게 졌다. 순수하게 기뻐하는 고등학생과 비틀린 얼굴로 웃는 선배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한때 우리에게 글쓰기 특강도 했던 선배는 이제 글을 쓰지 않는다. 인스타그램에 남기는 짧은 글 한 줄만이 그가 쓰는 글 전부가 되었다. 피라미드의 맨 마지막에 있었던 나는 아무리 치열하게 노력해도 정상에 다다를 수 없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초등학생 때부터 간직해왔던 꿈을 그 자리에서 버렸다.


좋아하는 걸 줬으면 재능도 줘야 하지 않나요, 보이지 않는 창조주에게 항의하고 싶었다. 마치 짝사랑 같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일정한 선을 넘을 수 없는 짝사랑. 최대한 가까이 가더라도 평행선이 최선인 마음. 글쓰기와 나 혼자 열애를 했다.


글로 돈을 벌면 짝사랑도 끝날 줄 알았다. 영화 기자가 됐을 땐 드디어 이 마음에 종지부를 찍는구나, 생각했다. 전혀 아니었다. 후킹 기사를 쓰고 의미 없는 글을 쓰며 나는 글과 평행선조차 달리지 못하는 인간이 됐다. 그래서 한때 글쓰기를 접은 적도 있었지만 잔인할 만큼 글 쓰고 싶은 욕망, 그리고 그걸로 인정받고 싶은 욕망은 강렬했다. 결국 나만을 위한 글부터 쓰기로 했다.


랄라가 처음 제안했을 때, 사실 글쓰기 욕망을 해소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때로는 돈벌이 글에 밀려 나만을 위한 글이 뒷전이 될 때도 있지만 그래도 나를 정화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미아가 하는 이야기는 내 마음의 독백과도 같다.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이 만든 김미아라는 페르소나는 쓸쓸히 무대에서 혼자 이야기를 한다. 언젠가는 이 짝사랑에 종지부를 찍을 날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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