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에 의해 인간에게 여러 가지로 영향을 주는 것을 입증하는 이론. 아로마(향)+사이콜로지(심리학)의 합성어.
-네이버 지식백과-
감성의 시대, 감각의 시대.
현대 사회를 지칭하는 대표적인 단어다.
현대 사회를 이루는 모든 것이 바로 '자극'이기 때문이다.
그에 맞장구라도 치듯 인간의 감각은 안테나를 켜고
365일, 24시간 'on 상태'다.
그래서 모두가 예민하고, 아프다.
나도 그 한 사람이었다.
경쟁이 치열한 특목고에 턱걸이로 들어간 후 사춘기 끝물에서 우울증이 찾아왔다. 낙엽만 떨어져도 깔깔거린다던 고등학교 시절에 그 낙엽을 멍하니 바라보다 우는 날이 잦아졌다.
반 친구들처럼 영어 공부를 한답시고 365일 이어폰을 꽂았다. 8시에 등교해서 8시에 하교하는 살인적 스케줄에 스물도 채 안 되는 나이에 늘 캔커피를 입에 달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클래식 음악의 한 소절을 틀어주고 제목과 음악가를 맞춰야 하는 음악 시험 날에 이명이란 현상을 처음 경험했다. 그날 이후였다. 작은 소리에도 두통이 시작됐고, 쉬는 시간 친구들의 말소리가 귀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예민한 나는 그렇게 발병했다.
매일매일이 아주 높은 하늘 속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눈과 귀, 혀와 피부가 바늘 돋친 듯 날이 서 있었다.
조금만 건드려도 신경질을 내는 사람, 그것이 나였다.
고 3이 되어서는 남들 다 하는 방과 후 자습에서 빠졌다.
그것은 대학 입시를 포기하겠다는 선전포고로 여겨졌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필기 소리 말고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은 교실이 나를 오히려 자극했다. 이어폰을 낀 내 숨소리가 싫었고, 눈을 강하게 찔러대는 교실 형광등 불빛이 싫어졌다.
하지만 담임은 내 의사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나에게 학교 자습 대신 학원 자습을 한다는 일종의 대 체 학습 확인서를 제출하라고 했다.
학원이라니. 더 좁고 더 황량하고 더 시끄럽기까지 한 학원을?
나는 대신 교실이 아닌 다른 곳은 괜찮겠냐고 물었다. 형광등 빛과 이어폰을 꽂지 않아도 되는 곳이면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내가 떠올린 건 다름 아닌 방송실이었다.
나는 그 당시 학교 방송국 pd였다. 아침마다 교우들에게 들려주는 명상 프로그램을 맡고 있었고, 이를 위해 일주일에 두 어번 야간자습 대신 방송실에서 원고를 쓰고 녹음을 했다.
그때가 팍팍하고 날이 서있던 특목고 분위기에서 숨을 쉬는 유일한 순간이었다. 처음에는 공부가 아닌 소프트한 글을 쓰고 음악을 선곡하는 일 자체가 재미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옥과도 같았던 교실을 나와 문제집을 들고 나 홀로 방송실을 찾았을 때 나의 평안과 안식의 원인은 내용이 아닌 환경이란 걸 깨달았다.
특히 지하실 특유의 냄새가 방송실에 있는 내내 이유 없이 두근거리던 심장 박동이 잦아들었다. 오래된 도서관에서 나는 냄새와 흡사했는데 나는 특이하게도 그 향에 취해 매일 명상을 핑계로 방송실을 찾았다.
직장 생활 10년 차. 예민한 나는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하고, 시끄러운 소리와 강한 향을 무척이나 증오한다.
20년도 더 지난 과거의 일이었지만 나는 그때의 방송실 냄새를 여전히 잊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결국 비슷한 곳을 찾아 몇 년을 헤매었다.
그러던 중 지하 방송실과 같은 효과를 주는 평안한 곳을 아주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다.
그곳은 정말 신기하게도
지하실도 아니었고, 어둡고 쾌쾌했던 방송실과도 같은 곳이 아니었다.
나는 요즘. 백화점을 간다.
무엇을 사기 위해서라거나, 누구를 만나자고 가는 건 아니다.
백화점의 향, 냄새를 맡으러 가는 것이다.
백화점이 현재의 예민한 나를 치료해주는 곳이 된 것이다.
그리고 그 후 나는 본격적으로 나를 위한 공부를 시작했다.
아로마테라피.
향으로 심리적인 문제를 다스리는 학문이자 방식이었다.
백화점의 향에는 여유가 있었다. 풍요로움이 있었고, 편안함이 있었다.
머리가 한없이 무겁고, 손가락이 둔탁하고, 감정이 메마른 날.
백화점을 한 바퀴 거닐다 보면 코를 통해 들어오는 향기가 가슴을 가득 채웠다.
조향사의 의도가, 어쩌면 자본가의 계획이야 어찌 되었건
돈 한 푼 쓰지 않고, 적당한 힐링을 하고 돌아올 수 있는 백화점이나에게는 천국이었고, '향기 맛집'이었다.
The Scent of PAGE
교보문고도 마찬가지다. 서점을 들어서는 순간 얼굴 표면 가득히 닿는 편안하고도 묵직한 향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 향이 The Scent of PAGE 란 이름으로 판매 중이다.
'향기는 책을 깨우고 책은 향기를 품는다'
일명 이 '책의 향'의 베이스는 유칼립투스와 편백나무다.
상상이 가지 않는가. 이 조화.
유칼립투스는 두통, 신경통, 신경쇠약의 치료에 쓰이는 오일이다. 살균, 항염증, 근육통을 완화하는 데에도 쓰인다.
마찬가지로 편백나무 또한 항균과 살균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덕분에 복잡함에 지친 사람들이 한적한 서점에 와 책 한 권에 여유로움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을 터였다.
향기로 사람을 치료한 역사는 오래되었다.
고대 중국 및 이집트에서는 동물과 식물에서 채취한 향기 물질을 치료에 사용했다.
손가락 감각, 시각적 경험보다 코로 흡입하는 그 짧은 순간이 사람의 감정이나 정서에 가장 빠르고 영향을 준다는 것을 일찍이 깨달은 것이다.
최근에는 서양 의학이 스트레스나 만성질환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논문과 함께 향기의 효과가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다는 과학적 실증 자료까지 쏟아지고 있다.
20대의 남자에게 아령을 들게 해 스트레스 상황을 만든 후, 아무 조건도 없는 그룹과 시트러스 계열의 향기를 맡게 한 그룹을 비교했을 때 면역계의 회복력에 차이가 있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프랑스의 병리학자 R.M. Gattefosse
르네 모리스 카트포제.
이 사람이 아로마콜로지의 창시자이다. 아로마테라피의 가장 대표적인 식물인 라벤더의 효능을 가장 처음 발견한 사람도 바로, 이 사람이다.
내가 조향 공부를 시작한 것은 순전히 나 때문이었다.
어느 순간 월급의 절반 이상을 향을 모으는데 쓰기 시작한 나를 발견했다. 처음에는 향수, 그다음에는 바디워시, 그리고 페브릭 퍼퓸과 샴푸, 디퓨저, 이제는 핸드워시도 추가됐다.
선택 기준은 단 하나, 향이었다.
그저 가슴을 가득 채워 줄 향이 필요했다.
머리 말고, 가슴. 지식 말고, 아무 말하지 않는 어떠한 존재가 고팠다.
조향을 공부하면서 알게 됐다.
사람의 뇌는 단순해서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문제가 원천적으로 해결되지 않았더라도 어느 특수한 자극을 받게 되면(물론 그 자극이 긍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켰을 때) 스트레스가 감소하고 심적 압박감도 떨어진다는 걸 말이다.
그 자극이라는 것이 나에게는 향기였던 셈이다.
코 끝으로 흡입되는 '특정 향'이 머리를 맑게 했고, 기분을 밝게 했다.
더 알고 싶어 졌다.
어떤 사람에 대한 호감이 증가하면 그(녀)의 취향과 입맛과 스타일이 궁금해지듯 이 놈의 '향' 정체가 미친 듯이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