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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아 Oct 31. 2020

텅 빈 시간을 자주 보내시나요?

마음이 쉬지 못하는 일상

알차게 사는 기분을 좇아서

저는 책을 좋아하고, 책 읽는 직업을 가졌습니다. 뭔가를 종일 읽는 셈입니다.

책 좋아하는 사람은 어디에 데려다 놓아도 무언가 읽게 마련이에요. 눈앞에 라면스프가 있다면 분말스프 함량과 주식회사 로고라도 보고 있는다랄지. 어떻게든 마음이 가만히 못 있고 정보를 찾아 섭취하는 일에 익숙합니다.

제 마음은 오랜 세월 이런저런 생각을 즐기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몸-마음을 읽는 일에 익숙해지고 그것이 또 하나의 직업이 되면서 '생각으로 감각적 쾌락을 계속 즐기려는 욕구'를 명확하게 보기 시작했어요.

거의 습관처럼 텍스트를 따라다니며 정보를 보고, 특별한 것을 하지 않고 나름 쉬고 있다 여길 때도 머릿속으로 생각을 계속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정작 텅 빈 시간을 제대로 가지지 못함을 인지한 거예요.

계속 이렇게 살면 마음이 쉬는 시간을 갖지 못하거든요. 그러면 마음의 힘이 떨어져서 주의력을 잃기 쉽고, 자주 지루해하고 짜증을 내며, 마음은 사소한 일에도 요동칩니다.   


마음이 쉰다, 이 의미를 이해하세요?

요즘엔 다들 마음이 바쁜 상태를 좋아합니다. 빈 시간은 생각할 거리로 ‘알차게’ 채우잖아요.

웹툰, 영화, 게임, 책, 음악, 검색, 강좌 등 문화생활에서 활력을 받고 아이디어를 얻는 게 좋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누가 누가 더 알차게 시간을 채우나를 경쟁하는 것 같기도 해요.  

저도 빈 시간을 가만두지 않는 패턴 속에 오래 살았어요. 강박처럼 취향이라는 이름으로 문화적 소스를 한껏 즐겼습니다. 그 소스들이 생각을 끊임없이 일어나게 하고, 눈을 감아도 누구를 만나도 머릿속에 늘 미디어의 짬뽕 영상들이 돌아가게 하죠. 늘 그랬기 때문에 사실 그것이 문제가 있는 줄도 파악하지 못했어요.


최근에야 이 뇌의 풀가동 상태가 좋지 않다, 오히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빈 시간이 더 중요하다, 하는 연구가 알려지기 시작했어요. 이제는 유명해진 용어인 뇌의 휴식기, DMN(비집중회로, default mode network) 모드입니다. DMN 모드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을 때의 뇌신경 회로 활동을 가리키는 말이죠.

특별히 처리할 일이 없을 때 신기하게도 대뇌피질의 상당 부분은 열심히 신호를 주고받는다고 합니다. 이때의 에너지 소비량은 뇌 전체 에너지 소비량의 60~80%나 된다고 하니, 신경과학자들은 뇌가 무언가에 집중하지 않는 이런 상태가 오히려 중요한 역할(창의력과 집중력을 올리는 등)을 한다고 결론을 내렸어요.


예전에는 DMN 모드라는 이름을 몰랐지만, 제 직업 환경이 달라지면서 DMN 모드에 자주 접속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아 지금까지 정말 생각의 바다에 풍덩 빠져서 살았구나.' 하고 알았습니다. 보통 하루에 10시간쯤 책이나 미디어를 보고 앉아 있는 생활을 했거든요. 그러다가 북에디터라는 직업과 명상-요가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같이 하게 되면서, 데이터를 숨 가쁘게 바꿔가며 좇는 시간이 절반으로 줄고, 나머지 시간은 몸과 호흡을 읽는 시간으로 채워졌어요. 그렇게 수년이 지나면서 천천히 변화가 생겼어요.

빈 시간의 맛을 알기 시작했습니다. 고요함의 맛 말이에요. 언제나 좋아하는 책, 영화, 영상을 강박적으로 막 찾아서 보는 습관이 천천히 줄었어요. 생활방식이 바뀐 지 5년이 지난 이후부터는 예전의 반에 반밖에 안 되는 정보량을 머릿속에 넣고 있음을 알았어요. 7년이 지나면서는 거기에서 더 줄어들었고요.

마치 늘 허겁지겁 지나치게 과식하던 사람이 약간의 공복을 자주 경험하면서, 공복인 상태가 좋구나를 안 것과 비슷해요. 그런 경험을 반복한 사람은 이제 무심코 빵에 손을 뻗다가도 잠시 주저하는 순간이 생기겠죠. 저는 마음의 공복인 상태를 조금씩 체험하면서 공복이 좋구나, 공복으로 좀 있어 보자, 하는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몸을 많이 쓰는 날일수록, 호흡을 한동안 지켜본 날일수록, 눈과 귀로 데이터들을 덜 집어넣었어요. 호흡도 몸의 감각에 포함되니까 몸 감각 인지량과 정보 섭취량·생각량은 정말로 반비례하더군요. 그러고 보면 운동선수나 무용가, 요기처럼 몸을 민감하게 써야 하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여러 미디어들을 덜 보고, 그에 따라서 생각도 덜 일으키며 살아요.


생각이 물러나고 몸이 있는 현재에 마음이 가만히 붙어 있는 느낌을 아시나요?

그저 몸으로써 존재하는,

그런 충만한  빈 시간을 갖고 계신가요?
몸을 읽는 시간은 단지 몸에 좋은 것이 아니고,

정신건강에 무척 이롭습니다. 정신적으로 아주 고귀한 상태로 진입하는 거예요.

마음이 쉬는, 텅 빈 시간이 비로소 탄생하니까요.


루미의 세 줄짜리 짧은 시가 있습니다.

한 줄씩 따라 느껴보세요.


"

눈을 감는다.

사랑에 빠진다.

머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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